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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l 29. 2022

졸업식 같지 않은 졸업식을 마치고

둘째 딸의 졸업식이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의 표면적인 목적은 우리 딸 졸업식의 참석이었다.

남편이 못 가게 하는 건 아니지만 괜히 혼자서 유럽까지 갔다가 토론토 갔다가 3주나 혼자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괜스레 미안해져서 내 여행의 정당성을 찾은 것이다.   오는 길에 딸의 졸업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그래서 꼭 이 기간에 이렇게 일정을 짤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우리 때와는 달리 졸업식이나 입학식 같은 행사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딸들은 다들 안 간다는 말부터 했었다.  작년 큰딸 졸업식 때도 안 간다고 하는 걸 내가 부탁 부탁해서 가기로 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이 취소됐다.  그래서 스튜디오 가서 졸업모자 쓰고 사진이라도 찍으라고 하니 쓸데없는데 돈을 쓴다고 투덜거리며 안 찍는다고 우긴다.  그때도 날 위해서 제발 가서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시간도 없는데 가깝지도 않은 지정 스튜디오 가서 우스꽝스러운 졸업 가운과 모자를 쓰고 그 비싼 돈을 내고 꼭 찍어야겠냐며 버티더니 결국은 고맙게도 날 위해서 사진을 찍어줬었다.  반년 정도 지난 후에 내 손에 들어온 졸업 사진을 보고 난 아주 만족했었다.   당연하지, 대학 졸업식에 이런 사진이라도 없으면 무효지!!  하면서.


올해 둘째 딸 졸업식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코로나 상황이 조금 좋아져서 다행히 졸업식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기는 상 받는 것도 없고 한데 몇 시간이나 하는 그 따분한 졸업식에 왜 가냐고 한다.  게다가 졸업식 참석을 위해서는 참석 인원수만큼 티켓을 사야 하는데 그 돈이 너무 아깝다고 안 산다는 것이다.   그런 것에까지 돈벌이를 하는 학교에게 장단을 맞춰주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였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직이 되는 바람에 몇 과목을 늦게 수강하느라 친구들보다 한 학기가 늦은 졸업식이어서 함께 할 친구가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꽃 들고 와줄 남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워낙 크니 단과별로 졸업식 날짜가 각각 달랐다.  졸업식장에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당일에 가서 꽃 들고 사진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결국에는 꾸미고 나섰다.   나의 치밀한 계획 하에 졸업식이 끝날만한 시간에 그 건물 앞으로 도착했다.  가는 길에 과 사무실 가서 가운을 빌려오라고 보냈더니 또 빈손으로 그냥 나온다.  한 시간 빌리는데 $75을 내라고 했다며 기가 막힌다고 펄펄 뛴다.   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어서 오케이 그럼 그냥 찍자!!


졸업식 현수막이 걸린 건물 앞에서, 졸업 가운을 입고 사진 찍는 인파에 섞여서 우리도 꽃을 들고 이리저리 포즈를 취했다.  우리 딸들은 그저 자기들이 예쁘게 나오는 것만 중요해서 뒷 배경은 별로 보지도 않는다.  

마침 시간이 맞아서 함께 갔던 언니도 열심히 우리 모습을 찍어줬다.  예쁜 꽃 선물도 해주고.   


한 30분 정도 졸업식장 마당에 머무르며 기분만 냈다.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 이렇게 내가 우기지 않았으면 이 사진마저도 없을 뻔하지 않았는가.  나중에는 분명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이제 뒤풀이를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근처 고급 레스토랑은 너무 비싸서 예약을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쏜다는데도 이렇게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주는 애들이 고맙긴 한데, 그래도 어딘가 가긴 가야 하는데 막막하다.  아이들이 생각해놓은 곳은 차 타고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예약을 받지 않는 캑터스 클럽이었다.  모처럼 꾸미고 나왔으니 아주 비싸지는 않지만 분위기는 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고른 것이다. 나름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웬걸 퇴근 시간을 생각 못했다.  퇴근시간과 겹치면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 줄이 어마 어마하게 길었다.  워낙 큰 건물에 3층 전체가 레스토랑이니 자리가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토론토에 비하면 완전 시골인 밴쿠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혼잡이다.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이게 토론토 다운타운 매일매일의 모습이겠지.  


아무튼 높은 힐까지 신고 더 이상 여기저기 헤매고 다닐 수도 없고, 앞으로 2-3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직원을 말을 듣고 무작정 줄을 서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위에 지치기도 했고 배도 고프고 해서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그냥 집 근처로 가서 시원한 치맥이 어떨까??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시 우버를 타고 이동을 했다.  여기는 사람도 별로 없고 딱 좋다.  분위기는 별로 고급지지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흥을 돋우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충분했다. 


아무 이벤트 없이 지나갈 뻔 한 졸업식에 그래도 사진이라도 찍고 치맥이라도 먹었다.  딸들 기억 속에 졸업식 장면이 이렇게 하나라도 남아있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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