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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May 24. 2022

소심한 중년의 나 홀로 여행 준비


큰 언니가 일 년 살기를 하고 있는 파리에 다녀오기로 했다.  언니가 있을 때 한 번쯤은 가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토론토에 있는 둘째 딸아이 졸업식 날짜가 잡히면서 구체화됐다.  


일단 남편은 일을 해야 하니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전체 일정은 3주 정도.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뼛속까지 보수적인 남편이 나 혼자 여행을 3주 간다고 하면 강력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 리가 없다.  위험해서 혼자 가면 안 된다고 말은 하지만 그냥 싫은 것이다.  자기를 집에 혼자 두고 나 혼자 오랫동안 어딘가를 간다는 그 자체가.  타고난 성격을 지금 와서 탓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싸움을 하면서까지 굳이 혼자 여행을 계획한 적이 결혼 후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가족이 있는 한국 방문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로 이유가 있는 여행이기에 강력히 추진했고 남편도 별 무리 없이 동의했다.  테니스를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챙겨보는 둘째 언니도 이 즈음 파리 여행을 계획했다고 들었다.  프랑스오픈 테니스 경기가 이때 파리에서 열린다고 경기장 직관을 위해 모든 예약을 끝내 놓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때 가서 오랜만에 세 자매가 만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내가 20년 넘는 캐나다 이민 생활을 하다 보니 오롯이 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딸의 졸업식 참석을 위해 어차피 토론토를 가야 하니 동쪽으로 조금 더 가서 언니들이 있는 파리까지 갔다 오는 것이다.  그것이 좋긴 좋은데 아무리 자매라도 작은 아파트에서 3명이 일주일 이상 같이 있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일주일만 있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거기까지 가는데 파리에서 일주일만 있다가 오는 것은 좀 아까운 것 같아 중간에 살짝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넣었다.  파리에서보다 바르셀로나에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가 현저히 쌌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파리는 언니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일주일, 토론토는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일주일.  그 중간에 낀 바르셀로나는 온전히 나 홀로 여행을 위한 일주일이다.  너무 훌륭한 계획 아닌가.  엔도르핀이 수직 상승하는 순간이다.      




몇 년 전에 남편과 프랑스 여행을 3주간 구석구석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관광보다는 동네 빵집을 어슬렁거리며 여유를 부릴 생각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야 하는 바르셀로나 공부가 급하다.  짧은 일정이기도 하고,  꼭 유명한 관광지를 다 가볼 필요는 없으니 여행 일정 짜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또 혼자 다니면서 뭘 그렇게 먹으러 다니겠나 싶으니 맛집 검색은 할 필요도 없다.


숙소 예약이 제일 문제였다.  코로나로 인한 여행 제약이 완전히 풀리기 전에 비행기 예매를 했기에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전 일정 비행기 티켓은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기 있는 여행지인 바르셀로나 다운타운의 숙박비는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조금 비싸고 좁아도 웬만한 곳은 걸어서 가볼 수 있는 다운타운으로 하느냐, 조금 멀어도 교통편 연결이 잘 돼있는 저렴하지만 깨끗한 외곽의 숙소로 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생각해보니 저녁에는 괜히 혼자 나가기 무서워서 일찍 호텔로 돌아오게 될 것 같았다.  그럴 바에야 굳이 비싼 다운타운에 있을 필요가 없다.  


폭풍 검색 끝에, 전철역 가깝고 20분이면 다운타운 도착, 호텔 바로 앞에 큰 마트가 있는 착한 가격의 깨끗한 비즈니스호텔로 골랐다. 며칠 호텔에서 지내려면 마실 물도 필요하고 마트에서 살야 할게 꽤 많을 텐데 무거운 것을 들고 오래 걸어야 한다면 그것만으로 지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나에겐 마트가 가까운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이런 순간은 분명 남편이 엄청 그리워질 것이다.




오십견인지 뭔지 알 수는 없으나 몇 달 전부터 오른쪽 어깨와 손목, 손가락이 많이 아프다.  팔을 뒤로 돌릴 수도 없고 힘을 쓸 수도 없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닐 엄두가 안 나서 작은 핸드 케리 가방 하나 들고 가기로 했다.  그래도 여자가 3주 여행을 하는데 그렇게 짐을 안 가져가도 되나 싶지만 내 몸이 노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출발 날짜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대충 옷을 꺼내놨는데, 쳐다보면서 계속 하나씩 빼고 있다.  종이 한 장 무게라도 줄여야 하기에.  


어제는 이미 파리에 도착해 있는 둘째 언니가 자신이 짠 스케줄 표를 보내줬다. 여행을 갈 때마다 철저한 공부와 계획으로 늘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언니다.  이번에도 역시 빈틈없는 일정을 보고 감탄을 했다.  내가 합류한 후 며칠간도 언니가 짜 놓은 대로 그냥 따라다니면 될 것 같다.  한 가지 걱정은 나보다 체력이 좋은 언니와 계속 함께 다닐 경우 내 무릎과 다리가 과연 버텨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타이트한 파리 일정을 마치고 혼자 바르셀로나로 간 후 어쩌면 며칠 동안 호텔 안에서 꼼짝도 안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뭐.  그런 게 다 여행이지 뭐.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신나긴 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중년이 되면서 몸이 따라주지 않으급격히 떨어진 자신감.  그러나 어찌어찌 부여잡고 기분 좋게 한번 출발해보려 한다.  그까짓 3,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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