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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10. 2022

각방 쓰기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중년 이후 쓰게 된 각방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서 우리 집에 빈 방이 생겨버렸다.   


처음에는 이 공간이 아까와서 내 방으로 쓰겠다 하고 컴퓨터와 잔잔한 내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다.  저녁에 남편과 잠드는 시간이 다르니 혼자 드라마 한 편 보다가 슬쩍 그 공간에서 따로 자기 시작했다. 작은 애들 싱글 침대가 안방의 큰 침대보다는 불편하지만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아주 크다.  


그러다 보니 안방은 자연스럽게 남편 차지가 되었다.  화장실 딸린 안방에 남편 책상을 넣어주고 얼마 전 아마존으로 오더 한 작은 스피커까지 가져다 놓으니 너무 훌륭한 공간이 되었다.  자기를 위해서 내가 안방을 양보한다고 생색은 있는 대로 내었지만 실은 내가 사용하는 공간이 더 많다.  안방을 제외한 부엌, 거실이 다 내 것이다.  


이렇게 각방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서 엄마가 오신다든지 토론토에 있던 애들이 연말에 휴가차 와서 몇 주 지내다 가든지 하면 다시 합방이다.  그래도 나만의 책상은 필요하다 싶어서 거실 구석에 내 공간은 또 만들어놓는다.  따로 또 같이하는 시간이 적절한 아주 이상적인 생활 패턴이다.


하지만 요즘 이 이상적인 패턴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    

시작은 부부싸움이었다.   꽁냥 꽁냥 사이가 너무 좋아 캠핑 다니며 '우리만 너무 행복해서 어쩌지, 세상 사람들한테 미안해서...'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발언을 해가며 재미난 중년을 보내다가도 몇 달에 한 번은 꼭 부딪히는 사건이 있다.  




이번에도 싸움의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에 안 하던 말꼬리 잡기까지 하면서 제대로 갱년기 객기를 부리게 되었다.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별것 아닌 것에 더 기분 나쁘고 더 서운하고, 지나온 내 삶이 억울해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내가 왜 이 사람이랑 결혼했을까부터 시작해서 온갖 자기 연민에 빠져버렸다. 


자존심이 워낙 강한 남편은 아무리 자기가 잘못했어도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싸움을 끝내고 싶은 순간부터는 행동으로 표현한다.  시종일관 너무나 부드러운 말투로 나를 아주 세심하게 살핀다.  커피를 타고 빨래를 개는 등 자잔한 일까지 자기가 다 발 빠르게 해 준다.  그러면 며칠 입이 나와서 퉁퉁거리다가 나도 못 이기는 척하고 웃으며 이 싸움을 끝내 왔다.  


하지만 뭐 때문인지 이번엔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몸도 안 좋으니 더 서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차가운 공기를 유지하며 몇 달이 흘렀다.  물론 그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힘드니 몸까지 더 아프고, 일은 계속 꼬여서 제대로 되는 게 없고...   몇 달이 지속되니 신혼도 아니면서 갑자기 웬 기싸움?  하면서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게다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딸이 집에 와서 한 달 정도 함께 있을 예정이다.  오기 전에 무조건 풀어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이제 슬슬 풀어야겠는데 이상하게 이게 쉽지가 않다.  


여기서 드는 생각이 바로 각방의 문제점이다.  예전 같으면 서로 삐쳐있다가도 침대 위에서 다리라도 스치면 장난스럽게 다시 툭 치면서 풀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화해가 힘들어진 것이다.  자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드는 시간조차 없으니 서로 간 섭섭한 감정만 계속 더 쌓여간다.


손님방 준비하듯 딸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침대 시트도 다 빨고 깨끗하게 방을 다시 꾸몄다.  침대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안방에서 같이 잤다. 근데 은근히 이 상황이 좋다.  남편도 이 기회를 살려 자연스럽게 팔베개를 내어준다.  그동안 자존심 세우면서 버틴 시간들이 우리 둘 다 엄청 피곤했던 것이다.

어차피 남은 인생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데 사랑하며 살아가자 다짐을 한다.


그래서 다시 고민이다.  

딸이 토론토로 돌아가고 나면 저 방이 비는데, 다시 각방 생활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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