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펼쳐 놓은 듯
길쭉한 몸통 위로 머리를 활짝 펼쳐 하늘로 뻗어있는 나무들을 보니 로마에 온 것이 실감났다.
그래. 나무 하나도 평범하지 않은 곳.
로마는 그런곳이었지.
신혼여행에서 콜로세움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다시 보는 감동이 더 크다.
처음 왔을 땐 아무것도 모른 채 겉모습만 보고 사진한장 찍고 간게 전부였지만
이번엔 직접 내부관람도 해가며 고대 로마시대 여기서 어떤일이 벌어졌는지를 공부하고 눈 앞에서 상상해 보았다.
짧은 상상만으로는 그 십분의 일조차 실감할 수 없는 경이로운 콜로세움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여기
10년의 세월을 버티고 함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남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잘 몰랐을 때보다
더 잘 알게된 지금
그때보다 아끼는 사이가 되어 옆에 있을 수 있는 관계란
어쩌면 지금 바라보고있는 콜로세움보다 더 경이로운 기적이 아닐지.
트레비분수앞은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이곳에 동전을 한번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온다고한다.
10년 전 동전을 던졌던 우리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두번째 동전을 던졌다.
두번째 동전은 영원한 사랑을 이루어준다고한다.
로마에서 제일 유명한 에스프레소를 마셔보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평소 아메리카노도 즐기지 않는 내가 아주 기분좋게 마셨으니 말 다했다.
이후로도 계속 생각나서 한번밖에 마시고오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했다.
마시기 전 에스프레소 대신 좀 더 익숙한 카푸치노를 마셔야할까 고민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적어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익숙하지 않은 도전에 익숙해져가는 중이다.
로마 일정을 잠시 멈추고 토스카나로 넘어가는 날
치비타디반뇨레조라는 작은 마을에 들렀다.
멀리서 보는 마을이 동화같이 예뻤으나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엄청난 계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올라가야했다.
막상 들어갔더니 마을이 너무 작아 볼만한 것도 없었다.
이 동화같은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은 길지도 않았다.
'못살 것 같아.'
그러고보면 예쁘고 화려하다고 꼭 다 좋은것도 아니다.
토스카나를 한바퀴 돌았다.
남편은 전혀 기대없이 들어선 토스카나의 매력에 어느새 푹 빠진 모양이다.
그는 스위스보다도 아름다운 이 곳에 언젠가 꼭 다시 와볼거라고 했다.
어딜봐도 같은 풍경의 토스카나
그래서 어딜봐도 그림이었던 곳
이 나라 사람들은 천국을 아주 가까이 하고 사는 듯 해 부럽다.
토스카나에서 마음 한가득 평화로움을 품고 다시 로마로 출발한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잠시 휴게소에 들른사이 전방에서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여기선 사고발생 시 수습될 때까지 전 차선을 막아버렸다.
그 바람에 한시간을 꼼짝없이 제자리에 정차해 있으면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애가 탔다.
로마에서 차를 반납하고 타야 하는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은 우리가 휴게소에 들른 탓에 어쩌면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었던 앞선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거라 생각하자며 나를 위로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사람의 긍정과 여유가 이런 순간마다 빛을 발하지 못하고 매번 나의 조급한 성격에 부딪혀 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아마도 나와 똑같은 인간을 만나지 않은데는 다 그만한 신의 뜻이 있을 것이라 위로하며 얼마 남지 않은 기차 시간을 향해 도로를 달렸다.
20분을 남기고 렌터카 회사에 도착해 차를 반납하려는데 이번에는 또 주차장을 잘못 찾아왔다.
직원을 불러서 상황을 설명하고 제발 여기서 차를 반납하게 해달라고 거의 울부짖었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고성이 오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차를 겨우 반납하고 짐을 챙겼더니 겨우 15분이 남았다.
기차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희망을 잃은 발걸음으로 주차장과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그만 너무 놀라고 말았다.
내가 내린 곳은 이미 기차역 선로 중간
내가 타야할 기차가 반대편에 보인다.
엘레베이터 한번으로 주차장에서 기차역 플랫폼까지 마치 영화처럼 순간이동을 한것이다.
기차를 타고나니 무려 6분이나 남았다.
2시간 반거리를 5시간만에 도착한 마지막 피날레였다.
남부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또 일이 생겼다.
씻고 있는데 남편이 밖에서 큰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보니 캐리어를 묶어두었던 도난방지 자물쇠가 고장나 캐리어를 풀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제 별일이 다있다.
급하게 호텔 프론트 직원에게 절단기를 문의해보았으나 헛수고였다.
일단은 놔두고 여행을 나갔다.
사실 남부여행을 오기 전 내심 바라던일이 있었다.
10년 전 바티칸투어를 할 때 만났던 가이드와 여기서 마주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가이드는 우리에게 조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이었고 때마침 남부투어를 진행중인듯했다.
그래도 설마..하며 포지타노를 구경하던 중
어느 전망대에 도착해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내가 설마했던 그 상황을 결국 맞이했다.
연예인을 만난 소녀처럼 방방뛰며 나는 그 가이드에게 우리를 소개했고 같이 여러장 사진을 찍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말하는대로'라는 노래의 가사가 꼭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이 반가운 인연은 내 기억에 강렬한 추억으로 다시한 번 쌓여
인생이 말하는대로 이루어질거라는 마법같은 주문을 내 인생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닐것이다.
포지타노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배안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신가봐요.
여기오니 한국인들을 많이 보네."
알고보니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셨던 70대 할머니가 홀로 해외여행 중이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한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본인의 형제자매들은 아버지에게 건물을 한채씩 물려받았고
건강보험료로 한달에 160만원씩을 내는것이 너무 분했으며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시다 얼마전에 교수도 역임하셨고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있는 재산 다 쓰고 죽자는 심정으로 여행을 다닌다고 하셨다.
본인의 남동생은 대기업 전무이사인데
나이 60이 넘어서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셨단다.
아이가 안생겨서 없다는 나에게 마리아 병원을 추천해주셨고
앞으로 사업을 한다면 어느나라에 주목해야 할 것인가도 설명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었다.
꼬이고 꼬인 나였다면
꼰대를 만났다고 할 것이었지만
나이드신 분의 바이브쯤으로 여기고
이야기에서 캐치할만한 것들을 찾다보니
이 또한 여행의 일부요
귀한 만남이란 생각이 든다.
호텔로 돌아와보니 아침에 못보던 직원이 보여 다시한번 절단기를 부탁해보았다.
우리의 캐리어 사진을 보더니 단번에 이해했다며 어디서 쇠톱을 가져와 팬티가 다 내려가도록 열심히 톱질을 해준덕에 무사히 캐리어를 살릴 수 있었다.
이날 아침
너무 빨리 실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남부 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기차 안
일찍이 예약을 한 덕에 1등석 비지니스 칸을 저렴하게 샀다.
문제는 이곳에 짐칸이 보이지 않았고 짐을 들고 탄 일행은 우리뿐이었다.
탈 때부터 부산을 떨었던 탓에
누군가 우리의 소란이 불편했었나보다.
자리에 앉아서 겨우 정비를 마치고 남편과 이야기하는 내게 누군가 시끄럽게 하지 말라며 주의를 준다.
알고보니 이 칸은 특별히 사일런스 존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사람이 말 해주지 않았다면 또 몰랐을 일.
아...이번 여행 너무 어렵다.
이탈리아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강렬했던 우리의 여행이 끝났다.
나는 이번 여행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지만
아마 금방 까먹고 말것이다.
내 모든 여행이 늘 그랬듯
내 모든 삶이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