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서양화가 이중섭 그림, 왜관성당 부근
안녕하세요. 호곤 별다방입니다. 호곤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노래가사(어린이날 방정환, 황소그림 중섭)에 나오는, 두 위인을 <방정환 글 이중섭 그림 호곤 엮음>으로 연결합니다. 어린이날의 창시자 소파 방정환과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대향 이중섭의 공통점은 어린이를 많이 표현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아동문학가 소파(小波) 방정환 Bang Jeong-hwan(1899.11.09. ~ 1931.07.23. 향년 31세)
서양화가 대향(大鄕) 이중섭 Lee Jung-sub(1916.09.16. ~ 1956.09.06. 향년 39세)
산드룡의 유리구두(CINDERELLA, THE LITTLE GLASS SLIPPER)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라는 동화입니다. 방정환이 살아생전 만든 책 '사랑의 선물'에 수록된 번안동화 중 하나입니다. <사랑의 선물>은 방정환이 직접 번안해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동화집입니다. <사랑의 선물> 수록작은 10개로 난파선(이탈리아 동화), 산드룡의 유리구두(프랑스 동화), 왕자와 제비, 요술왕 아아, 한네레의 죽음, 어린음악가, 잠자는 왕녀, 천당가는길, 마음의 꽃, 꽃속의 작은 이가 있습니다.
문화평론가 김시아에 따르면 방정환은 일본어본을 통해 신데렐라 이야기를 번안했다고 해요. 원본에 충실하기보다 주체적으로 각색했다고 전해집니다.
동화로 시작해서 무서운 이야기로 끝나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신데렐라형 고전소설이야기 먼저 듣고 가실게요.
1. 신데렐라
신데렐라(영어: Cinderella) 또는 유리구두(영어: The Little Glass Slipper)는 부당한 학대와 시련 속에서도 주인공 신데렐라가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적인 해피 엔딩을 맞는다는 신화적 요소를 담고 있는 설화이다. 신데렐라는 1697년 샤를 페로가 《교훈이 담긴 옛날 이야기 또는 콩트》라는 모음집에 다른 작품들과 함께 수록하여 출판하였다. 정확한 제목은 《상드리용 또는 작은 유리신》(Cendrillon ou la petite pantoufle de verre)이다. 그림 형제 또한 1812년 이 이야기를 자신들의 작품집에 〈Aschenputtel〉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17세기 초에 출판된 잠바티스타 바실레의 민화집 《펜타메론》(Pentamerone)에도 체네렌톨라(Cenerentola)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2] 이외에도 세계 각국에 신데렐라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존재하고 특히 9세기의 중국의 민담집인 《유양 잡죠》에 섭한이라는 신데렐라형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 연구자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판으로는 콩쥐팥쥐가 이에 해당한다. 비슷한 내용으로 콩쥐팥쥐전(조선후기 고전소설), 유양잡조(9세기 당나라 기록), 소공녀가 있다.
2. 콩쥐팥쥐전
콩쥐팥쥐전은 지은이와 연대 미상으로 조선의 유명한 가정소설 중의 하나이고 신데렐라계의 전래동화이다. 국문 고전소설 형식의 활자본으로 대창서원본(大昌書院本, 1919년판) · 태화서관본(泰華書饍本, 1928년판) 등이 전하고 있다. 콩쥐팥쥐전 소설의 가치를 따져보자. 콩쥐팥쥐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신데렐라형의 설화이다. 이러한 소재를 소설화하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콩쥐팥쥐전의 줄거리를 보자면 사또나 세자를 등장시키고 잔칫집 가는 중 신발을 잃어 주인을 찾으며 귀인과 혼인한 뒤 의붓동생의 흉계로 연못에 빠졌으나 연꽃과 구슬이 나타나서 사건전개의 단서가 되는 점, 결말에 가서 팥쥐와 계모에 대하여 철저한 응징을 가하는 점이 비슷한 유형이다.
특히 설화를 소재로 하면서도 설화와 구별된 이 소설은 신데렐라계 설화의 대부분이 주인공의 혼인으로 끝나는 데 비하여, 콩쥐팥쥐 소설에서는 혼인 이후의 사건을 더 흥미롭게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콩쥐팥쥐 소설의 가치는 악한 인간에 대한 응징과 선한 사람에게 보상을 주는 권선징악의 참다운 모습에 최대한 효과를 높여 단순한 설화를 윤리적인 주제로 재창조하였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소설 <콩쥐팥쥐전>은 한국 전래의 <콩쥐팥쥐설화>에서 유래한 소설로 보게 되는 이유이다.
콩쥐팥쥐로 전해오는 이야기
조선시대 중엽 전라도 전주 근방에서 최만춘이라는 퇴리(退吏)와 부인 조씨, 딸 콩쥐가 즐겁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부인이 병을 얻어 죽자 과부 배씨를 후처로 맞게 되었다.(왜 배씨일까 ㅠㅠ 나 배씨임) 그 뒤 배씨는 팥쥐라는 딸을 낳게 되었는데 배씨는 갖은 방법으로 마음씨 착한 콩쥐를 학대했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콩쥐는 뒤에 선녀의 도움으로 감사의 후실이 되었는데, 이를 질투한 배씨와 팥쥐는 흉계를 꾸며 콩쥐를 연못에 밀어넣어 죽게 했다. 그리고 팥쥐가 대신 콩쥐 행세를 하게 되었는데 한동안 이 사실을 모르던 감사는 기어코 자기 아내가 콩쥐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 음모도 밝혀지게 되었다. 감사가 연못에 빠진 콩쥐의 시체를 찾아 내자 콩쥐는 되살아났다. 감사는 궁궐에 가서 모든 사실을 임금님께 알렸다. 임금님은 신하들에게 어명을 내려 계모와 팥쥐는 사약을 받았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지금도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콩쥐팥쥐전의 원전에서는 팥쥐에게 사약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팥쥐를 해형에 처하게 해 팥쥐를 죽여 젓갈로 만들고 그 젓갈을 팥쥐 엄마에게 팥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먹였다. 그 젓갈을 먹은 팥쥐의 엄마는 미쳐서 죽게 된다.(동화는 원래 무서운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또 밝혀지네요. 현실은 무서워요.)
3. 유양잡조 전해오는 이야기
9세기 당나라의 《유양잡조》에는 신데렐라형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기록상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한반도 곳곳에서도 신데렐라와 꼭 닮은 ‘콩쥐팥쥐’ 설화가 약간씩 변이된 형태로 채록되는데, 조선 후기 고전소설 <콩쥐팥쥐>로도 형상화됐다. 신데렐라의 원조를 두고 최근 《유양잡조》의 이야기가 서양에 전해졌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참고로 신데렐라는 17세기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가 쓴 민담집 <옛날 이야기>의 한 편인 <상드리용>이 영역본에서 <신데렐라>로 옮겨지면서 그 이름이 유명해졌는데, 《유양잡조》를 보면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동 · 서양이 공존하는 민담인 것을 알 수 있다.
4. 《소공녀》(일본어: 小公女, A Little Princess)는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이다. 1888년 'St. Nicholas'라는 잡지에 《Sara Crewe or What Happened at Miss Minchin's》라는 제목으로 연재로 발표된 후 1903년 연극으로 각색하면서 《A Little Princess》로 제목이 바뀐다. 1905년 《A Little Princess》는 책으로 출판하게 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소공녀”(小公女)의 제목은 원제를 일본식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소공녀 작품에는 기숙학교 교장으로 상징되는 어른의 위선과 어린이의 순수성을 대비시켜 동심을 찬양하고 있다. 작가의 섬세한 필체는 소설의 매력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많은 작품이 제작되었다.
소공녀 줄거리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장교의 딸인 세라 크루는 아버지 랠프 크루 대령의 뜻에 따라서 영국의 기숙사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행복의 절정에 있어야 할 11번째 생일날,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아버지가 참여했던 광산업의 몰락으로 세라는 돈 한 푼 없는 무산자가 된다. 학교에서 가장 좋은 방에서 살고 있었던 세라는 하루아침에 다락방으로 쫓겨나고 그동안의 수업료 및 자신에게 들었던 비용을 갚기 위해 학교에서 궂은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세라는 다락방 창문을 통해 들어온 원숭이를 원래 주인인 이웃집의 인도인 하인 람다스에게 돌려주게 되고 이 일로 람다스와 친분을 맺는다. 람다스의 고용주인 캐리스포드는 랠프 크루의 친구로 랠프가 남긴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줄곧 랠프의 상속녀 세라 크루를 찾고 있었다. 세라는 다시 공주와 같은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소공녀 플롯
소공녀는 콩쥐팥쥐나 신데렐라에서처럼 '어린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된 성장기를 보장받아야 마땅하다'는 강력한 정서적 플롯을 전제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처지를 통해 이러한 정서적 플롯을 불안정함 속에 노출시키고 점차 안정감을 되찾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고전적인 정의(Justice) 플롯을 사용하고 있다고 이해해 볼 수 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영어: Frances Hodgson Burnett, 1849년 11월 24일 ~ 1924년 10월 29일)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미국의 소설가로, 본명은 프랜시스 일라이자 버넷(영어: Frances Eliza Burnett)이다. 프랜시스는 어릴 때부터 많은 동화와 소설을 즐겨 읽었다. 1854년 철물점 주인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1865년 미국 테네시주로 이주하여 생계를 위하여 작가로 활동했다. [1] 1868년 그녀는 여성잡지와 패션잡지에 자신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편집자에 의해 그의 글이 출판되면서 작가로 인정받았다. 1873년 의사 스완 버넷과 워싱턴 D.C. 에서 결혼을 하지만 이후에 이혼했다. 1924년 10월 29일 뉴욕주에서 사망했다. 프랜시스의 주요 작품으로는 1886년 《소공자》, 1888년《소공녀》, 1909년 《비밀의 화원》등이 있다. 그의 동화들은 따뜻하고 감성이 풍부한 게 장점이지만, 평범하게 살던 소년이 우연히 자신이 귀족임을 알게 된다는 등의 허황된 이야기를 한다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 밖에 동화 27편, 소설 17편, 희곡 3편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위키피디아
예쁘고 착한 어린 색시 산드룡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살림이 더할
수 없이 쓸쓸하여졌습니다. 그나마 아버님이 매일 아침에 보시는 일로 나가
시면, 산드룡 색시가 혼자 집을 보면서, 어머님이 그리워서 날마다 날마다
울며 지냈습니다.
다행한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그 후 얼마 오래지 않아서 새 어머니가 오
셨는데, 성질이 사나우신 데다가 다른 데서 낳은 딸 두 사람까지 데리고 오
셨습니다. 그런데, 그 딸 두 색시까지 성질이 곱지를 못하여서 장난만, 심
술만 부리고 하여서 동네 사람들까지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한편에,
산드룡 색시의 마음 착하고 얌전스럽다는 소문만 점점 높아가서, 새어머니
는 몹시 성이 나셔서, 산드룡 색시를 못견디게 구박을 하기 시작하고 음식
도 옷도 좋은 것은 주지 아니하고, 하인 꼴을 만들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심
부름만 시켰습니다. 조석 상보기, 설거지하기, 물 길어오기까지 하인 대신
시키고, 아침저녁으로 방 치우고 마당 쓸고, 두 색시의 방까지 소제를 시켰
습니다. 그러면서, 데리고 온 두 색시는 철마다 좋은 비단옷을 새로 해 입
히고, 잔칫집 같은 곳에나 자랑삼아 데리고 다니곤 하였습니다.
연한 몸이 고달프기도 몹시 고달프고, 손과 발이 얼어 터지고 하여, 몹시
고생이 되는데 이름까지 예전 이름은 안 부르고, ‘산드룡, 산드룡’하고
부르는 것은 견디지 못하게 서러운 이름이었습니다.
원 이름은 예쁘고 귀여운 이름이었는데, 산드룡이라는 것은 때묻은 헌 옷
을 입고, 매일 부엌에만 있어서 몸이 숯검정투성이었으므로, 따로 놀리느라
고 지어 놓은 별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아주 산드룡이 되어 버리고, 계모의 딸 두 색시는 꽃같이
예쁘고, 볕 잘 들고 수정궁같이 깨끗한 방에서 나라의 공주와 같이 지내는
데 산드룡은 매일 그 심부름이나 하여 주고 밤이면 침대도 없이 컴컴한 부
엌 마루에 쓰러져 자곤 하였습니다.
산드룡 색시는 밤마다 컴컴한 부엌 속에서 다만 한갓 슬픈 신세를 생각하
고 얼마나 우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새벽부터 일하여서 고단
하고 졸림이 닥쳐와서 울다가는 그냥 쓰러져 자곤 쓰러져 자곤 하면서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 후, 어느 여름에 그 나라 왕자님이 큰 무도회를 여시고 모든 사람을 초
대하시는데, 그 중에는 산드룡의 아버지가 이름난 이어서, 이 집에도 초대
가 왔습니다. 새어머님과 두 색시는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자아,
왕자님의 무도회에 가서 무도를 한다고, 두 색시는 입고 갈 옷과 보석 패물
을 장만하느라고, 매일매일 수선하게 물건을 사들였습니다. 무도회에 가고
싶은 마음은 두 색시보다도 더욱 간절하지마는 어찌할 수 없는 신세의 설움
을 가슴에 품은 산드룡은 입도 벌리지 못하고 참고만 있었습니다.
“이애 산드룡아, 장 속에 내 비단구두 꺼내다 먼지 좀 털어 놓아라.”
“이애, 내 것도 좀 털어 놔라.”
하는 소리에, 산드룡은 싫다는 수 없어 그 구두를 내어다 먼지를 털 때에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가슴이 아프기는 두
색시의 입고 갈 비단옷을 산드룡이 손으로 짓는 것이었습니다. 춤도 두 색
시보다 훨씬 낫게 추는 산드룡이 자기는 무명옷 한 벌도 입지 못하고 앉아
서 그 옷을 지어 줄 때, 눈에서는 자꾸 왕자님의 성대한 무도회의 광경이
보였습니다. 나도 갈 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에, 멈추려도 멈
출 수 없이 눈물이 자꾸 흘렀습니다.
입고 갈 옷까지, 신고 갈 구두까지 일일이 심부름을 해 주고 또 두 색시의
머리까지 빗겨 줄 때에 두 색시는 비웃는 말로,
“산드룡은 그 좋은 무도회에 가고 싶지 않으냐?”
물었습니다.
산드룡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입을 꼭 깨물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였습니
다.
“그렇겠지……. 가고 싶은들 갈 수가 있나, 옷이 있나, 구두가 있나, 보
석 패물이 있나……, 남에게 흉이나 잡혀 우리까지 부끄럽게 하게…….”
하면서들 웃었습니다. 산드룡은 견딜 수 없이 너무나 슬퍼서, 부엌에 가 혼
자 울었습니다.
무도회날이 가까워 오니까, 두 색시는 조석도 안 먹고 기뻐하였습니다. 남
보다 조금 굵은 몸을 호리호리하게 보이게 하려고, 테스를 한 상자나 사다
가 몸을 친친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온종일 체경 앞에만 서서 모양을 내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도회날이 왔습니다. 눈부시게 찬란하게 차리고, 두
색시는 어머님과 함께 나섰습니다. 산드룡은 헌 옷을 입은 채로 문간까지
나가서 가는 것을 부럽게 보고 섰더니, 한참이나 가서 길이 꺾이어 보이지
아니하게 된 후에, 그만 며칠째 참아오던 설움이 복받쳐 터져서 소리쳐 울
었습니다.
그 때,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모르게 하얗게 옷을 입은 예전 어머니
같은 선녀 같은 이가 나타나서 산드룡이 우는 것을 보고,
“산드룡아, 울지 마라, 내가 무도회에 가도록 하여 주마!”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드룡의 손목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서,
“얘, 뒤꼍 밭에 가서 네가 정성껏 기르는 그 호박을 하나 따 오너라.”
하였습니다.
산드룡은 얼른 가서 따왔습니다. 호박을 받아 가지고 그 여인이 호박 속을
모두 훑어내 버리고 나서, 그 껍데기만 놓고 무어라 중얼중얼하고, 지팡이
로 세 번을 치자, 별안간에 그 호박이 황금 마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요술 여인은 부엌으로 가서, 쥐 잡은 통을 들여다보니까, 조그만 새끼쥐 여
섯 마리가 빠져서, 이리저리 톡톡 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섯 마리를
내놓고 지팡이로 건드리자, 금시에 좋은 말 여섯 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미쥐를 꺼내서 지팡이로 건드리니, 마차 부리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장에서 작은 새 여섯 마리를 내어 놓고, 지팡이로 건드
리니까, 훌륭한 여섯 명의 마부가 되었습니다.
“자아, 이만하면 무도회에 갈 준비가 되었다. 어떠냐? 네 마음에 합당하
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산드룡은 기뻐하면서,
“네에, 합당하고말고요. 마음에 꼭 맞습니다. 그런데, 옷이 이렇게 더러
운 옷인데, 이대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옳지, 옳지. 그것도 해 주마, 염려 마라.”
하더니, 지팡이로 산드룡을 툭 쳤습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이 때까지
그렇게 더러운 옷을 입고 게을러 보이던 산드룡이 어느 틈에 이 세상 없는
보석으로 장식을 한 좋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비로소 산드룡
의 원래 어여쁜 얼굴이 나타나서, 어느 나라 공주라도 따르지 못할 선녀 같
은 색시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요술 여인은 웃으며, 좋은 유리 구두를 내 주었습니다. 산드
룡은 그 구두를 신고 황금 마차에 올라 앉았습니다. 마차가 떠나기 전에 요
술 여인은 산드룡에게 특별히 일렀습니다.
“네가 가서 무도회에 참례하되, 밤 열두 시가 되기 전에 반드시 돌아오너
라. 열두 시만 지나면, 마차는 도로 호박이 되고, 말은 쥐가 되고, 마부는
도로 새가 되느니라.”
하고 일렀습니다. 산드룡은 주의하겠다고 약속하고 떠났습니다.
그 날 , 왕자님은 많은 귀한 집 따님들과 노시다가 뜻밖에,
“알 수 없는 어느 곳 공주님이 지금 마차를 타고 오셨다.”
는 말을 들으시고, 친히 문간까지 나와 맞으셨습니다. 모르는 어느 곳 공주
의 손을 잡고, 왕자님이 안내를 하여 들어오시자, 졸지에 궁중이 조용하여
졌습니다. 음악도 그치고……, 모두 새로 오신 귀빈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
들이 황홀하여졌습니다. 그리고, 그 고요한 속에서 가는 소리로,
“에그, 잘도 생긴 색시다. 어쩌면 저렇게 잘났을까”
하고 속살대었습니다. 늙으신 나라님께서도 이 색시를 자꾸 보시더니, 황후
님 귀에 대고,
“저렇게 잘생긴 색시는 처음 보는걸.”
하셨습니다.
그 많은 귀부인들도 모두 그 색시의 아름다운 자태와 이 세상에서 보지 못
하던 의복과 모든 장식품을 보고 놀랐습니다.
왕자님은 그 색시를 제일 좋은 자리에 모셔 앉히고, 그리고 나서는, 그 공
주 같은 색시와 짝을 하여 무도 춤을 추었습니다. 산드룡 색시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곱게 춤을 추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또 놀랐
습니다.
이윽고 식당이 열리고 모두 거기 모였습니다. 그러나 왕자님은 그 색시 얼
굴만 보느라고, 음식도 못 잡수시었습니다.
산드룡은 한참 후에 자기 집 두 색시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두 색
시들은 그를 산드룡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렇게 귀한 어느 공주님이 특
별히 자기 옆에 와 준 것만 고마워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시간이 열두 시 15분 전이었으므로 왕자님이 만류하시는 것
도 듣쟎고 곧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산드룡은 요술 여인을 보고, 무
한 감사한 인사를 하고, 그리고 내일도 부디 와 달라고, 왕자님이 하시기에
또 오마고 하였으니, 내일 한 번만 더 가도록 하여 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무도회에서 보고 온 것을 요술 여인에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 색시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마차도 마부도 옷도 모두
없어진 후였습니다.
산드룡은 문을 열어 주고, 마치 자다 일어난 것처럼 졸린 낯을 하고,
“인제 오십니까? 왜 그렇게 늦었어요?”
하고는 일부러 기지개를 켰습니다. 둘이는 옷도 벗을 새 없이 무도회 이야
기를 자랑삼아 하였습니다.
“너도 무도회에 갔었다면 그렇게 졸립지 않고 재미있었지. 우리들이 왕자
님을 모시고 무도를 하고 노는데, 그건 참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색시가 오
셨는데, 아마 어디 공주인가 보더라,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도 잘 생기고 옷
은 어디서 그런 옷을 사다 입었는지, 아이고 참 잘도 났더라. 어떻게 잘 생
겼는지 왕자님이 퍽 좋아하시면서, 그이 얼굴을 보느라고 무얼 별로 잡숫지
도 않으셨단다. 그런 얼굴을 한 번 보기만 해도 좋았지”
하니까, 또 하나가 곁을 달면서,
“그래. 그 공주님이 그 많은 사람 중에 우리 옆으로 오셔서 정다운 말씀
을 하시고 가셨단다. 내일 그이가 또 왔으면 좋겠어.”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였습니다. 산드룡은 속으로 웃으면
서,
“그래, 그이 이름이 무어랍디까?”
하고 물으니까, 그 이름은 모른다 하였습니다. 산드룡은 다시,
“어떻게 잘 생겼기에 그렇게 칭찬을 하시우. 그런 이 하고 이야기를 다
하시고……, 나는 한 번 보지도 못하게 된거요. 에그, 참 안 되었지만, 그
새 옷 말고 늘 집에서 입던 분홍옷을 좀 빌려 주었으면 나도 가겠구먼
…….”
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성을 벌컥 내면서,
“에그, 계집애두…….”
하고는,
“내 옷을 그 더러운 네게 빌려 줄 듯 싶으냐? 엉큼도 스럽다.”
하였습니다.
산드룡은 미리 그럴 줄 알고, 부러 물어 본 것이었습니다.
도리어 그가 빌려 주마 했다면 거북할 뻔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저녁에도 두 색시는 왕자님의 무도회에 갔습니다.
산드룡은 나중에 오늘은 더 한층 훌륭하게 차리고 마차를 타고 갔습니다.
왕자님은 늘 산드룡의 옆을 떠나지 않고, 한껏 친하게 구시고, 재미있는 말
씀도 하시고, 춤도 같이 추시고, 음식도 같이 잡숫고 하였습니다.
산드룡은 그것이 퍽 기뻐서 정신없이 왕자님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시간 가
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계가 뗑뗑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보니까 벌
써 열두 시였습니다.
큰일 났다 생각하고 곧 일어나서는 왕자님께 인사를 하고 급히 달음질을
하여 달아났습니다. 왕자님께서는 밤이 새도록 며칠 몇 달이 되도록 그렇게
그 색시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돌연히 가는 것을 보고 차마 혼자 떨
어져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뒤를 쫓아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어찌 급히 달
아나는지 쫒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도 급히 달아나는 바람에 산드룡은 한
쪽 구두가 벗겨진 것도 모르고 달아났습니다. 뒤에 따라오던 왕자님이 그
유리 구두 한 짝을 집에다 잘 감추어 두셨습니다. 산드룡이 대궐 밖에 나와
보니까 큰일 났습니다. 마차도 마부도 간 곳 없고 자기는 어느 틈엔지 집에
서 입고 있던 헌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내친 걸음을 집
에까지 뛰어와서 헐떡거리면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다만 한 짝뿐인 유리
구두를 벗어서 감추었습니다.
그 때, 쫓아오던 왕자님이 문지기를 보고,
“이리로 공주 한 분 나가시는 것 못 보았느냐?”
하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공주 같으신 이는 아니시고, 웬 거지 같은 계집애가 달음질해 나간 것
뿐이었습니다.”
하므로, 왕자님께서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 날 밤에도 늦게야 돌아온 두 색시는 오늘도 무도회 갔던 자랑을 하였습
니다.
“오늘은 더 예쁘고 옷도 어제보다 더 잘 입고 오셨겠지! 그런데, 오늘은
왕자님하고 친하게 이야기를 하시다가 별안간에 열두 점 치는 소리를 듣고
는 뛰어 돌아갔는데, 그 신었던 유리 구두가 한 짝 떨어져 있어서 그것을
왕자님이 집어 두셨단다. 에그, 그 유리 구두도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생겼
는지 모르겠어……. 필시 왕자님께서도 그 유리 구두 신은 색시를 퍽 좋아
하시는 모양이더라…….”
하였습니다.
그 후, 사흘이 못 되어서 왕자님은 많은 사람을 거느리시고 나팔을 불면
서, 그 유리 구두에 발이 맞는 색시를 찾아서 왕후님을 삼겠다고 반포하시
고, 그 유리 구두를 신하에게 들려가지고, 색시들의 발을 검사하며 다니셨
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유리 구두에 발이 맞는 색시가 없었습니다. 그
래서, 나중에는 기어코 산드룡의 집에까지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두 딸을 보시고, 억지로라도 그 구두에 발을 들여 밀라고 하셨습
니다. 두 색시는 발이 아프도록 억지로 들여 밀려 하였으나, 버선만 찢어지
고, 발뒤축에서 피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그 신발의 임자가 이 곳에도 없구나 하시고, 왕자님께서는 낙심하셨습니
다. 그것을 보고, 검사하던 신하는 거지같이 헌 누더기 옷을 입는 산드룡을
보고 너도 신어 보라 하였습니다.
산드룡은 무도회에서 보던 그 왕자님을 보고, 무한히 반가웠으나, 신세 생
각을 하니까 어찌할 수가 없어서 한 구석에 박혀만 있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인 줄을 왕자님께서 아시기만 하셨으면…….’
생각하였으나 영영 왕자님 옆에를 가지 못하고, 이 구석에서 구박만 받고
있을 생각을 하고 슬퍼하다가, 신어 보라는 소리를 듣고, 와락 달려들려 하
는데 어머니가 막으셨습니다. 두 색시는 저까짓 게 하면서 입을 실룩거리었
습니다. 어머니는 검사하는 이를 보고,
“이까짓 건 우리 집 하인이올시다. 신겨 보면 뭘하겠습니까?”
하였으나, 검사하던 이는,
“그래도 나와 신어 보아라.”
하고, 산드룡에게로 쫓아와서 신겨 보았습니다. 원래 산드룡의 구두니까 크
도 작도 아니하고 꼭 들어맞았습니다.
어머니와 두 색시는 이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습니다.
왕자님께서는 급히 마차에서 내리셔서 반갑게 산드룡의 손목을 잡고 보니
까, 과연 무도회 때에 왔던 공주였으므로 한없이 기뻐하셨습니다.
산드룡은 감추어 두었던 유리 구두 한 짝을 꺼내다 마저 신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그 때, 요술 여인이 또 나타났습니다. 지팡이로 산드룡을 건드리자 전과
같이 찬란한 옷을 입고 서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과 두 색시는 그제야 그가 무도회에서 보던 왕녀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구박만 하고 심하게 굴던 일을 후회하고, 무릎을 꿇고 사
죄하였습니다. 산드룡은 두 색시를 일으켜 좌우 팔을 두 사람 어깨 위에 얹
고,
“이제까지의 일은 다시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아주 정답게 지냅시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이 하라는 대로 그 마차에 함께 타고 대궐로 가서 나라님께
뵈었더니 나라님께서는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
그 후, 나흘이 지나고 닷새되던 날, 성대하게 혼례식을 치르었습니다. 그
리고 산드룡의 주선으로 계모의 딸 두 색시도 대궐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
다.
〈《사랑의 선물》1922년 6월, 《소파 전집》(박문 서관 간) 대조〉
이중섭의 그림은 왜관성당 부근이라는 그림으로 골라봤어요. 산드룡의 유리구두에 어울리는 서양느낌이 나는 그림을 고르다보니 성당이 어울릴 듯 해서입니다.
어문출처: 산드룡의 유리구두, 소파 방정환(1899~1931), 공유마당, 만료저작물
이미지출처: 왜관성당 부근/하드보드에 유채,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 공유마당, 만료저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