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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리너 Mar 24. 2021

어느 날 외국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이름표.

나는 한국인이다. 내 반려자 남편도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살아오면서 정체성 위기는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 우리는 한국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날아왔다.

우리와는 얼굴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한국어와는 도무지 공통분모가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언어를 쓰는 그런 나라에 왔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온 것은 아니었다. 

나와 남편 각자 이유가 조금 다른데, 나의 경우 한 학교에 박사과정을 합격하여 연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삶의 터전이 지구 반대편으로 바뀌었다. 남편은 본인 분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나라에서,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 되었다.

나의 얼굴과 마음에 '한국인' 말고도 '외국인'이라는 라벨지가 하나 더 붙은 셈이다.



어쩌다 외국인이 되어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소재로 한 좋은 글과 영상은 이미 참 많다. 

그럼 나의 글은 대체 무엇이 특별하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나는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현실적인 소재를 마주하며 빚어진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한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정말 지극히 평범한 단어들, 예를 들어 밥, 고기, 날씨, 도로, 집, 옷, 행복, 스트레스, 공부, 직장 등 말이다. 이런 흔하디 흔한 소재에서도 나는 외국인으로서의 이질감, 동시에 어느덧 익숙해진 친숙함, 어느 날은 기쁨, 다른 날은 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좌절을 느낀다.


그럼, 대체 지금 어디서 살고 있다는 것인지?

별것 아닌 듯 하지만 혼자만의 고심 끝에 국가명은 밝히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글을 쓰는 나도, 읽으시는 분도 

글을 읽으면서 그 나라에 대한 선입견이나 이미지를 무의식 중에 투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국가 이름을 듣자마자, 살아오면서 주워들은 이야기 조각들을 순식간에 끌어모아 지레짐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복지가 너무 좋아서 살기 좋다고 유명하던데?'라든지,

'그 나라는 국민들이 엄청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라던데. 한국인이 살기 힘들겠네' 같은 생각 말이다.


둘째,

한국 밖 그 어느 나라에서 계신 분이든 나의 글을 읽을 수 있겠다며 상상했을 때

국가 A라고 못 박으면서 내적 거리감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지치거나 힘들 때, 혹은 기쁘고 만족스러울 때,

거실 소파에 앉아 그 경험과 감정을 누군가와도 공유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런 마음에 국가 자체가 나의 짧은 글을 읽을 때 진입장벽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국가 B, C, D에 살고 있는 어떤 분도 나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을 때 

공감의 찰나를 느끼고 지나갈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다. 




포리너 (foreigner)의 이야기



이곳에 담길 이야기는 해외살이를 멋들어지게 표현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활자 사이에 멋지거나 이국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진열할 생각도 없다. 

이 나라가 한국보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단언하지도 않는다. 

역으로 온갖 부정적인 내용만 나열하고 우는 소리만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의도 역시 전혀 없음을 밝혀두고 싶다. 

 

내 주변의 소중한 분들에게 이야기 들려드렸듯, 솔직하게,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활자로 담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글을 만나고 싶어 온라인 세상을 이리저리 기웃거려 봤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나, 내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천천히, 직접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하며 쌓여온 이야기다. 


같은 주제여도 각자 보고 느끼며 경험하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보니, 

나의 글이 누군가의 공감을 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이 곳의 글이 지구본 위에 그려진 수많은 나라 어딘가에서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께는 조금이나마 공감할 구석을 발견할 수 있는 감성의 시간을, 

해외 살이 계획이나 호기심을 갖고 있는 분들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상상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길 감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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