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길고 긴 휴가를 떠난다.
내가 소속된 대학원에서도 이맘때쯤이면 전체 공지 메일이 온다. 최소한의 인력만 남고 여름휴가 시즌에 돌입하며 9월 첫 주 공식적으로 다시 다들 일을 시작한다는 말이다.
7-8월에는 건물 안도 휑하고, 사람이 없으니 일의 진전도 매우 느리다. 내 지도교수 중 한 명도 8주간 휴가를 떠났다. 8일도 아니고, 8주라니!
주말이면 집에서도 마음먹으면 푹 쉴 수 있다. 사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에 가서 쉬고 오는 일이 여간 간단한 미션은 아니다. 우리는 표를 사고, 머물 곳을 예약하고, 차를 빌린다면 그것도 알아봐야 하고, 짐을 싸고 다녀오면 짐을 정리해야 한다.
여행 일정이 너무 촘촘하면 되려 몸살이 나는 시간이 돼버리기도 했다.
20대 때는 그런 여행을 즐기긴 했다. 하루에 최대한 많은 곳을 가보고, 느껴보는 그런 여행.
40일간의 유럽 배낭도, 3주간의 뉴질랜드 남섬 일주 여행도,
새로운 장소에서 보낼 하루의 계획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쉬는' 여행을 즐기게 됐다. 좀 더 천천히 흘러가는 템포의 여행.
30대가 되면서 가치관이 조금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우리가 여행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이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긴 휴가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고, 눈치 보지 않고 너도나도 다들 쓰는 분위기여서 수월했으리라.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같은 숙소에 머물면서
먹고, 수영하고, 선베드에 누워 책보거나 음악 듣고, 낮잠 자며,
딱히 유명 명소를 가거나 체험형 액티비티를 하지 않는, 쉬는 여행.
며칠 내내 한 리조트에 있다 보면 그 기간 같이 머무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익게 되는데, 다들 우리와 비슷한 패턴이라는 점도 알게 된다.
예전에는 몰랐던 묘미다.
어릴 때는 왜 굳이 거기까지 가는데? 라며 공감하지 못했던 쉬는 여행 말이다.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 만큼, 우리는 한 곳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리조트보다는
시골 외딴집, 조용한 바닷가 등을 찾아가는 로드트립을 떠나기로 했다.
매일 2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지만, 동선과 숙소 외에는 정말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쉬는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몰아치는 일에 파묻히면서 굳이 돈 들여 떠난 '쉼'이
얼마나 귀했던 시간인지 느낄 수 있다.
딱히 무언가 하지 않는 여행도,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