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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리너 May 08. 2021

기댈 수 있는 한국 사람, 남편뿐이어서

가수 폴 킴(Paul Kim)의 '너를 만나'라는 노래가 있다.

누군가 내게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이 노래 가사가 딱 내 답변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 나라에서 둘이 살아가면서, 이 곳에서 겪는 나의 일상과 감정을 오롯이 공유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뿐이다. 이 사실이 감사하면서도 때로는 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배우자 말고 다른 누군가와도 동네 카페에 앉아 탁구공 주고받듯 공감과 경청이 오가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어렵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카톡이나 영상통화로 서로의 하루를 말하고 들으면서 서로의 일상을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서로 보고, 생각하고, 가는 곳이 다르니 일상의 조각부터가 다르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설명할지도 모르기에 결국은 거시적인 수준에서 잘 지내는지,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지 수준의 이야기만 오가게 된다.



나는 남편에 비해 감수성이 더 풍부하고, 그만큼 감정의 기복도 심하며,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강하다. 남의 생각과 시선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상 속 누군가가 행하는 작은 불합리함, 예의없는 행동도 그냥 그러려니 지나치질 못한다. 

그렇다 보니 이 곳에서 지내며 나는 평소에도 작은 외부 자극에도 잘 반응하고 눈치가 빠르다. 누군가 나에게 미묘하게 안좋은 행동을 하면, 나는 그걸 잘 알아채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이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면서 이 감정세포는 더욱 활성화된 채로 살아가고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더욱 격동적으로 변해갔다. 


한그루 나무에 빗대어 나는 외부의 바람에 맞춰 유연하게 펄럭이는 잎사귀라면, 남편은 쉬이 움직이지 않고 땅에 깊게 내린 뿌리와 붙어있는 밑동과도 같은 사람이다.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생겼는데 모국어도, 영어도 아니다 보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하고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복잡할 때, 그는 나보다 침착했다.

나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행인으로 인해 이곳에서의 삶에 회의감이 들 때도, 그는 눈빛으로 조용히 보듬어줬다.


사실 한국에서 지낼 땐 평온하고 말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얼마나 내 삶에 중요한지 깨달을 기회도 없었다. 지금의 남편과 나는 이 나라에 오기 전 이미 5년정도 연애하고 있었지만, 만나면서 우리가 결혼해서 한 식탁에 마주 앉아 나누게 될 감정의 흐름을, 그 흐름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배우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행복이겠지만,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부침을 겪다 보니 이 나라에서 더더욱 이런 배우자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의 의미는 컸다.

이 곳에서 기댈 사람, 또 힘이 돼줘야 할 사람은 서로 뿐이기에, 부부로서 사랑하는 사이라는 관계에 타국살이 전우애가 한 겹 덧대여 져 있다.  


만약 혼자 이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면, 위태롭게 지내던 중 한 번의 인종차별에 무너져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도 꿋꿋하고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는 분도 많지만, 나는 그렇지 못 할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신력이 강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자부했던 나는 생각보다 그 이면도 많이 갖고 있음을, 이 나라에 와서 몇 년 지내며 알았다. 


하지만 한국어로 생각하고, 수많은 표현을 할 수 있는 한국어로 배우자와 대화하며, 그렇게 일상을 보내면서, 정서적으로 날카로웠던 날은 조금이나마 부드러울 수 있게 됐다.


외국이라는 영역에서 살아가면서, 따뜻한 배우자와 함께하기에 생기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살아보고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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