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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Oct 03. 2022

멕시코에선 정수기 물통을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호스텔 물바다 만든 사연

멕시코시티에서 차를 타고 남쪽을 향해 6시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와하까(Oaxaca). 와하까는 멕시코의 남서부 지역에 위치하고 지방으로, 이곳만의 개성 강한 예술, 음식 등으로 멕시코 안에서도 특색 있는 문화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나는 와하까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호스텔에 새로운 둥지를 텄다.






침대가 20개도 안 되는 아담한 숙소. 게다가 숙소가 매일 예약으로 가득 차지 않는다. 머무는 손님의 수가 적은 만큼 리셉션 직원의 할 일도 별로 없다. 하루 통 틀어 체크인이 평균적으로 세네 번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나는 숙소 거실에 앉아 손님들과 얘기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운다. 제대로 날로 먹는 일터를 구한 것이다. 아침저녁 건물 곳곳 ‘불 켜고 끄는 일’이 가장 번거로운 일일 정도로.



그래도 직원들은 근무 중 1시간마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혹시나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지진 않았는지, 주방에 식기들은 잘 정돈이 돼있는지 주변 점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식당에 있는 정수기에 물이 넉넉하게 차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물이 다 떨어지면 물론 물통을 갈아야 한다. 그때 근무를 서는 자가.



사실 교육을 받으면서 생수통 교체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털어놓지 못했다. 비록 내가 열심히 체육관에 가고 근육을 올리는 데 관심이 많은 반(半) 사회 체육인이지만, 그깟 통 하나 들지 못한다고 말이다. 팔 힘이 부족해 혹은 전체적인 상체 근력이 떨어져, 살면서 정수기를 갈아 볼 수가 없었다고. 겉 멋만 잔뜩 든 운동인의 잘못된 자존심이 발동했다.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꾸준히 운동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더해졌다. 나는 교육 중 이 모든 걸 숨긴 채 괜히 팔뚝만 쓰다듬었다.






처음으로 마감 근무를 서고 있을 때였다. 그날은 특히나 다 같이 모여 멕시코 전통 음식을 즐기는 저녁 행사가 있는 요일이었다. 요리를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방 직원이 다 만들어 놓은 것을, 행사 진행 담당 동료가 데우고 그릇에 옮겨 담았다. 나는 식당에 라틴음악을 틀고, 분위기를 돋울 작은 양초들을 테이블에 까는 것만 했다.



분명 사람들이 모이기 직전까지만 해도 정수기에 물이 절반 이상은 채워져 있었다. 나는 내심 안심했다. ‘마감까지 생수통 갈 일은 없겠구나.’ 공짜 저녁 식사여서인지 아니면 전통 음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식당의 큰 원형 식탁은 금세 손님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초콜릿, 견과류와 함께 각종 향신료를 섞어 만든 ‘몰레(Mole)’라는 소스에다 치즈가 든 토르티야(옥수수로 만든 전병)를 먹었다. 새까만 색의 조금은 질퍽한 질감의 그 소스는 카레와는 전혀 달랐다.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맛이었다. 비슷한 한국음식 또는 다른 나라 음식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 문제는 토르티야 한 두 개와 같이 먹기에는 조금 짰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에 치즈가 잔뜩 든 토르티야와 먹기에는.



어느새 사람들 앞에 물컵이 하나둘씩 놓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접시가 깨끗해질수록 정수기 물의 높이도 빠르게 내려갔다. 게다가 행사 담당 직원이 멕시코 전통주 메즈깔(Mezcal)을 내어왔다. 이는 데낄라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주조되는 와하까 지방 술로, 도수가 40도가 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술이었다. 손님들 목에 메즈깔이 넘어갈수록 급격히 사라져 가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생수통의 물이었다.



한바탕 술이 곁들여진 이벤트가 끝나자 순식간에 식당은 적막이 감돌았다. 열심히 떠들 땐 언제고 다들 서둘러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 어느덧 시계가 마감 시간을 향하고 있었다. 더불어 텅 빈 정수기가 날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게 혹시 멀리 서는 비어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 가서 흔들어보면 묵직한 것은 아닐까. 이런 가냘픈 희망으로 괜히 통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까.’


그러기엔 근무 첫날, 내 안의 책임감이 날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갈아야만 했다. 새벽 혹은 이른 아침에 정수기 앞에서 한숨 지을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미 다들 잠자리로 간 지 오래였기에 주변에 도움을 청할 이도 없었다. 나 혼자 갈아야 했다. 위치가 주는 착시였을까. 갑자기 생수통이 작아 보였다. 정확히 몇 리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한국보다 작은 용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이곳 멕시코에선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란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걸 번쩍 들어 올려 구멍에 내리꽂는 것까지 말이다.



정말 멕시코 물통은 한국보다 가벼운 걸까. 나는 허리에 별 긴장 없이 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정수기 입구를 향해 통을 거꾸로 꽂아야 할 때였다. 한쪽 무릎을 올려보고 근처 의자를 이용해봐도 소용없었다. 도무지 나는 그걸 수직으로 세울 수가 없었다.


‘힘이 없으면 머리를 써 보자’


머리가 빈 정수기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다행히 기기 몸통은 가벼웠다. 이제 다 온 것 같았다. 목표물이 낮게 위치하고 있으니 쉽게 물통을 내려다 박을 수 있을 느낌이었다. 나는 체육관에서 스쿼트로 중량을 높일 때보다 더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일단 의자에 생수통을 올린 후 중력을 이용해 정수기 입구에 그것을 안착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눈앞에 벌어진 일은 내가 머릿속에 그린 것과는 달랐다. 통은 정수기 구멍 근처도 못 가 고꾸라졌고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바닥은 곧 물로 흥건해졌다. 물만 든 플라스틱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소음은 크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 지 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튀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말 그대로 ‘엎질러진 물’을 발아래 두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정수기에 다시 빈 통을 끼워 놓고 자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정말 그저 멍하니 물바다 현장에 서 있었다. 신참이라 청소 도구도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온 것이다. 그게 손님이든 상관이 없었다. 누구든 이 현장에서 날 구원해줄 사람이 등장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 사람은 바로 그날 행사를 진행했던 직원이었다. 자러 간 줄 알았는 데 밖에서 통화를 하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전화를 끊지 않았는지 귀에 휴대폰을 대고 있었다. 하지만 흥건한 바닥에 서 있는 나를 보곤 서둘러 전화기를 내려놨다.


“어우 이게 웬 참사(Desastre)야!!”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 마디 내뱉은 후 내게 대걸레가 있는 곳을 알려줬다.


“사비나, 너나 나나 이건 혼자 못 들어요.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해야 해요.”


내가 대충 물을 닦아 냈을 때 우리는 함께 물통을 거꾸로 세워 정수기에 끼웠다. 내가 홀로 그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됐던 게 손이 하나 더 더해지니 별 거 아닌 게 됐다.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기쁘면서도 허무했다. 나는 감사를 가득 담아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머쓱한 마음에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정말 고마워요. 어휴, 진짜 나 혼자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정말.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어요. 고마워요 ………”






날이 밝고 나서 확인을 해보니 멕시코 생수통 용량이 실제로 한국보다 적은 건 아니었다. 동일하게 20리터였다. 어쩌면 그건, 그날 그걸 ‘갈아야 만’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내가 만들어 낸 착시였을 수도 있다.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기 위한 자체 응원인 셈이다. 끝내 물바다를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혼자서 통 자체를 들어 올리는 쾌거를 올렸다. 한국에서는 그걸 바닥에서 떼어놓아 본 적도 없었는 데 말이다. 이렇게 이번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운동인으로서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이곳 멕시코에선 정말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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