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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Nov 13. 2022

호스텔 직원 모두 치를 떨게 한 최악의 진상 손님

호스텔 직원 채팅방에 미션이 떨어졌다. 일명 ‘돈을 받아내라!’. 그날 근무를 서는 직원 3명은 한 사람을 좇아야 했다. 투숙을 무려 10박이나 연장을 해놓고 돈을 내지 않은 손님. 마른 체형의 금발 소녀, 제시카를.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어떤 급의 진상을 마주하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호스텔엔 의외로 돈을 떼먹고 도망치는 여행자들이 많다. 그들은 ‘현금을 뽑아오겠다’ 혹은 ‘짐 먼저 정리하고 내겠다’ 등 가지각색의 이유를 들며 숙박비 지불을 늦춘다. 그러다 리셉션이 채 열지 않는 이른 새벽에 홀연히 떠나버린다. 이런 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체크인을 할 때 선결제를 필수로 요구하는 숙소가 대부분이다. 숙박 연장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같은 수법을 쓴다. 혹은 당일 오전에 갑자기 연장을 취소해 사업에 극심한 피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다.



그날 아침, 그녀는 이 모든 경우에 해당이 됐다. 아직 도망친 건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돈 내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심지어는 도중에 숙박을 연장하기도 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보증금 없이 구두만으로 예약을 했다. 그녀는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어학원을 다니겠다고 장황하게 설명하며 숙박을 열흘 밤 더 늘렸다. 직원 매뉴얼에 분명 ‘체크인 시, 연장 시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제’라는 항목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어떻게 그녀에게 이 모든 게 가능했냐고? 바로 지인 찬스였다. 매니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친구라는 인적 보증을 통해 예외의 예외를 거듭해왔던 것이다.



지인을 믿고 그녀를 기다려줬던 매니저는 하루 이틀이 지나도 그녀가 지갑을 열지 않자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날 근무자 모두에게 그녀를 붙잡고 돈을 받아내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녀가 리셉션을 지날 때 ‘친절히’ 지불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녀의 인상착의가 팀원들에게 공유됐다. 우리는 깡마른 금발 소녀를 보면 불러 세워야 했다.



그녀는 그날 숙소를 나설 생각이 없는지 내가 근무를 서는 오전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게 여전히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녀를 마주치지 않고 교대를 끝냈을 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심지어 그 임무가 이제 남 일로 느껴졌다. 이후에 근무를 서는 동료가 고생 꽤나 하겠구나 걱정까지 하는 여유도 부렸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일이 여전히 ‘내 일’로 다시 품에 안겼다. 동료들이 전한 바는 이랬다. 그녀에게 결제를 부탁하긴 했지만 끝내 돈을 받아낼 수 없었단다. 그녀는 ‘지금 은행에 가는 길이다. ATM에서 현금을 뽑아오겠다.’, ‘지갑이 방에 있으니 방에 갔다 오겠다.’ 등등의 핑계를 대며 순간순간을 잘 피해 나갔다고 했다. 미션이 또 내게까지 넘어온 걸 보아 그 후 그녀는 리셉션으로 돌아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매니저도 단단히 뿔이 났다. 그녀를 ‘믿고’ 들여다 보내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니 말이다. 매니저는 내게 더 강도 높은 행동을 요청했다. 리셉션에서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오는 그녀를 찾아가라고 했다. 사실 아침 댓바람부터 면전에 대고 돈 얘기를 해야 하는 게 나는 영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해야 했다. 나는 리셉션을 팽개치고 아침 식사 시작 시간부터 계속 식당을 어슬렁거렸다. 커피를 마시는 척, 다른 손님들 안부를 묻는 척하며 그녀만을 기다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제시카!!!”


부스스한 모습으로 그녀가 식당으로 들어오는 게 보이자마자 나는 평소보다 톤을 높여 인사했다. 하지만 곧바로 돈 내라고 손을 내밀 순 없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녀를 보자 바로 ‘결제’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괜히 쓸데없는 말을 늘어놨다. 잠은 잘 잤는지, 어젯밤엔 뭐했는지, 오늘 저녁 호스텔 행사에 꼭 참여하라는 둥 말이다. 그러다 조금은 어색하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 참, 그리고 오늘은 방 값 잊지 마요!” 나는 괜히 더 활짝 웃어 보였다.

“물론이죠! 아침 먹고 리셉션에 갈게요!” 그녀도 상쾌하게 받아쳤다.


다행히 그녀의 심기가 상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리셉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건 큰 착각이었다. 어제도 동료들의 요청을 요리조리 빠져나간 그녀가 그렇게 순순히 지갑을 들고 나타날 리가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하지만 여전히 시스템상 그녀의 이름에 빨간색 숫자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지불할 금액이 남아있다는 표시였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며칠에 걸쳐서 부탁을 했는데도 아직까지 결제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건 다분히 의도적인 게 틀림없었다. 또 한 명의 진상 출현 확정이었다.



“사비나!”


계속 기다리기만 해야 할지 매니저에게 보고하려던 참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그녀가 제 발로 리셉션에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갑을 꺼내는 대신 아예 뒤통수를 날려버리는 말을 꺼냈다.


“계획을 바꿔서 예약 날짜 조정하고 싶어요. 다음 주 말고 그냥 이번 주 토요일에 체크아웃할게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생글생글 웃어가며 말했다.


뭐라고? 열흘 밤을 연장해 놓고 연장 당일 갑자기 예약을 절반으로 싹둑 잘라버리겠다고? 그 기간 동안 그녀의 이름으로 예약 창을 막아 놨기 때문에 다른 손님은 그 방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보증금이나 카드 정보를 걸어 놓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그 요청에 페널티를 부과할 구실도 없었다. 돌연 취소해버린 숙박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닷새다. 그것도 피크인 주말을 포함해서 말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막심한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반 ‘노 쇼(No Show)’였다. 그런 민폐를 끼치고서도 그녀가 내뱉은 말은 더 가관이었다.


“아 맞다, 방에 올라가서 지갑 들고 올게요!”

그렇게 그녀는 또다시 돈을 내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한 매니저는 더 이상의 인내심이 없었다. 지인 얼굴이고 뭐고 봐줄 게 없었다. 내게 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나는 직접 그녀의 방으로 찾아가 돈을 받아와야 했다. 말만 하고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그녀에게 그게 최선인 게 당연했다. 우리는 손님에 대한 배려와 친절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치닫자 나도 그 진상에게 악감정이 치솟았다. 같은 여행자로서 생각을 해봐도 정말 이건 아니었다. 업소에 와서 잠을 잤으면 그 대가로 돈을 내야 하는 게 상도덕을 너머 의무가 아닌가. 이번엔 나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제시카, 아직 내려오지 않아서 찾아왔어요.”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편안히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리셉션에 올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자세였다.

“하, 정말. 돈 낼 거예요!! 낼 거라고요!” 그녀는 언성을 높였다.

“절 좀 믿어요! 저 여기서 지낼 거예요, 아시겠어요? 좀 믿으라고요.” 그녀는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호소하듯 말했다. 극적인 표정을 지어가면서 말이다.

“네 알아요. 근데 지금 결제 안 하면 모든 예약이 취소된다는 거 말씀드립니다. 더 이상 머무실 수 없어요.”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감정적인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고 직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리셉션으로 돌아와서 그녀가 한 말과 그 분위기를 매니저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매니저는 마침내 격분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는 그 진상의 친구라던 지인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격앙된 목소리로 이 모든 상황을 그 지인에게 전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매니저는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내게 말했다.

“이제 내가 직접 올라갔다 올게요. 기다려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가 내려왔다. 뒤따라 터벅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 진상이었다. 손에 지갑을 든 그녀가 리셉션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역시 일개 직원보다는 상급자의 힘이 강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둘 다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제시카가 지금 현금으로 방값 결제할 거예요.”

매니저는 이 말만 남기고 숙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분통을 삭히러 바람이라도 쐬러 가는 듯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때 제시카가 갑자기 안색을 바꿨다.





“자, 그럼 제가 총얼마를 내야 하는지 우리 같이 계산해볼까요?” 제시카가 한껏 청량한 목소리로 박수를 쳐가며 말했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저렇게 순식간에 감정을 바꿀 수 있다니. 내 눈앞에서 직접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도 믿지 못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얼굴을 구겨가며 감정을 호소하던 사람이 이제는 활짝 웃고 있었다. 심지어 들떠 보였다. 그녀는 직접 휴대폰에서 계산기를 켜서 숫자를 찍어 넣기 시작했다.


“하루 방값이 이건데, 제가 지금 총 일주일치를 내야 하니까 여기서 7을 곱하면… 자, 이 금액 맞죠?!” 그녀는 무슨 대단한 퀴즈의 정답이라도 맞춘 듯 신이 나 보였다. 계산은 정확했다. 하지만 시스템에서 빨갛게 번쩍이고 있는 잔액 숫자와는 달랐다. 그녀가 애초에 예약을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했기 때문에 수수료가 붙기 때문이다. 내가 이를 설명하자 그녀는 더 크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 방금 매니저랑 얘기했는데, 현장 금액으로 해주기로 했어요. 자, 여기 돈. 이제 다 됐죠? 꺄하~ 오늘 우리 해야 할 일 다 했다 그렇죠? 하이파이브!!!!”


얼떨결에 나는 그녀와 손을 부딪혔다. 이게 무슨 상황인 지 알 수 없었다. 이 여성이 드디어 실성을 한 것인 것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래도 어쨌든 돈을 받긴 받았으니 이걸로 다 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고, 나는 그녀의 지불 현황을 시스템에 업데이트했다. 그제야 후련한 마음으로 직원 단체방에 미션 완료를 알렸다. 하지만 평화로운 엔딩은 쉽지 않았다. 사건의 진짜 결말은 이러했다.



“사비나, 그 여자 돈 다 안 내고 갔어요? 왜 아직도 시스템에 빨간 숫자가 남아있어요?” 내가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가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아, 그거 플랫폼 수수료예요. 걔가 매니저님이 리셉션 금액으로 해주기로 했다던데요. 걔가 직접 계산기 꺼내더니 같이 방값 계산하고 그 액수로 내고 갔어요.”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설명했다. 하지만 그 말에 매니저는 아까보다 훨씬 더 흥분했다.



“미친 XXXX, 그 XXXX가 당신 이용한 거예요. 분명히, 오늘 갑자기 연장 취소한 대가로 수수료 포함한 가격을 내야 한다고 전달했어요. 다 얘기 끝냈단 말이에요. 근데 뭐? 지가 계산기를 들이밀어? 아 XXXXX, 대체 얼마를 덜 내고 간 거야. 이런 XXXXXXXX!!!”



Photo by Andre Hunt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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