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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Nov 06. 2022

멕시코 동료들이 자꾸 웃으면서 출근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매일 아침이 참 끔찍했습니다. 누가 보면 교수형에 처하러 끌려가는 죄인 못지않았습니다. 눈을 뜰 때도, 나갈 준비를 할 때도, 심지어 신발을 신고 문 앞에 서서도 한참을 제 자신과 씨름했습니다. ‘먹고살려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내 시간을 팔아야 한다.’, ‘남들 다 하는 건데 참고 나가자.’, ‘막상 회사에 가면 괜찮을 거다.’ 등 스스로 제 등을 떠밀기 위해 혼자 온갖 다짐을 중얼거렸습니다. 사실 저는 항상 회사와 멀지 않은 동네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통근 시간이 한 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만원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몸을 부대끼고, 저도 모르게 떠밀려 가다 보면 사무실 책상에도 앉기 전에 진이 다 빠졌습니다. 제게 ‘웃으며’ 출근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회사 동료들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저는 출근이란 ‘하기 싫고 짜증 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반강제적 반복 행위’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호스텔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을 보고 출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현지 동료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는 아침 근무 담당인 제가 한창 호스텔을 깨우느라 분주한 시간이기도 한데요. 그래도 저는 동료들의 출근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상대가 그렇게 활기차고 행복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 오는데 대충 눈인사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제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면 얼굴의 모든 근육을 이용해 웃고 있는 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혹시 그들이 보여주는 게 사회생활에서의 의례적인 미소가 아니냐고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그런 웃음과 인사를 충분히 봐왔기 때문에 저도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다릅니다. 보는 사람에게 긍정의 기운이 바로 꽂힐 정도의 진정한 ‘즐거움’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에게 엄청난 행운이 찾아와도 사람 마음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기 마련입니다. 하루 이틀 얼마 못 가 들뜬 마음이 식어버리지요. 다시 평소의 기분 상태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제 동료들은 하나같이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직장의 문을 열고 들어 옵니다. 매일 아침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출근의 고통을 단 번에 날려버릴 만큼의 즐거운 사건이 그들에게만 유독 하루하루마다 펼쳐지는 게 아닐까요? 처음에 저는 그 넘치는 에너지에 놀라 그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안부를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은 항상 같았습니다.


아니, 별일 없는데.




한국에서도 물론 직장에서 아침 인사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사회적인 미소를 얼굴에 기본 장착을 하고 있는 프로 직장인들이 있는 반면 아무래도 아무 감정 없이 형식만 지키는 사람이 많은 편이지요. 종종 ‘좋은 아침입니다!’하고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면 어색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근무 첫 한 시간은 본인 스스로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며 다들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다릅니다. 똑같이 본인의 업무 시작을 준비하는데도 일터 내 기운이 다릅니다. 그들의 얼굴에 ‘나 즐거워요’가 써져 있다고나 할까요. 서로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금세 팀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집니다. 심지어 상사가 등장해도 마찬가집니다. 갑자기 나누던 이야기 주제가 바뀌거나 급히 본인의 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여전히 서로서로 긍정의 기운을 내뿜으며 새로운 또 하나의 아침을 엽니다.



혹시 이곳의 업무 조건이 뛰어나서 직원들이 저절로 웃음 지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고요? 여기 근무 환경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합니다. 꼬박 8시간 육체적 노동을 하고 나서 받는 돈이 200페소 (한화 약 1만 5천 원)입니다. 시간당 임금을 계산해보면 한숨도 제대로 안 나옵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청결이 사업의 흥망성쇠를 쥐 흔드는 숙박업소이기 때문에 그들의 업무 강도 또한 높습니다. 그렇다고 고용된 직원의 수가 손님이 원하는 청결도를 유지하기에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직원을 정식 고용하는 대신 숙식만 제공하는 임시직원(volunteer)을 5명이나 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요?) 청소 담당 직원들은 근무 시간 내에 허리 한번 제대로 필 여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주 6일 근무입니다. 일주일에 쉴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왜 너는 항상 행복해?
몰라, 그냥 매일 기분이 좋은데? 딱히 이유는 없어.


한국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근무 조건 속에서, 말도 안 되는 행복도를 유지하는 직원들에게 저는 설문 아닌 설문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저 혼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의 ‘이상 행동’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행복함에 대해 그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안정적인 월급도 아닌, 한 주 근무가 끝나면 주급을 받아가는 불안한 생계. 갑작스레 치러야 할 경비가 생기면 당장 급여 가불을 받거나 동료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나날. 이런 환경 속에도 대체 무엇이 그들을 매일 웃음 짓게 만드는 것일까요. 노동이 고역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저 즐거운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게 제겐 신기할 따름입니다.



마음을 터놓을 정도로 친분을 쌓은 동료가 어느 날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집은 항상 가난했어. 할머니도 엄마도. 그리고 사실 지금의 나도. 그래도 딱히 이 사실이 슬프거나 원망스럽지 않아.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잖아. 지금 이렇게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자랑스러워. 길에서 구걸하거나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돈을 얻는 게 아니잖아. 번 돈을 모아서 나중에 햄버거 가게를 차려보는 게 꿈이야.”





제가 겨우 찾고 찾은, 그들 사이의 공통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모두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집에 개 서너 마리는 기본이었습니다. 혹시 저도 반려견과 함께 살게 되면 출근이 즐거워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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