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친구를 만났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도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갈증이 났다. 문득 학교도 학원도 같이 다니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비밀 이야기까지 전부 나누던 학창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 시절 우리는 나중에 여기 목동에 모여 살자고 늘 얘기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쉽게 생각했었다. 그랬던 우리는 결혼을 하며 각자 사는 곳이 흩어졌다. 그때만 해도 우린 여전히 자주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각자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육아에 매진하며 시간도 여유도 없어진 우리는 핸드폰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동시 소통이 불가능할 때가 많아서 한 명이 채팅 방에 말을 쏟아놓으면 각자 한참이 지나서야 확인하고 답하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내 단짝 친구들의 공통점은 핸드폰 속 세상보다는 현실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SNS를 하지 않고, 핸드폰은 거의 전화와 정보 검색용으로만 사용한다. 둘 다 카카오톡 프로필도 도통 바꾸질 않아서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지 않으면 소식을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아이를 데리고 있을 때는 아이에 집중하느라, 아이가 기관에 갔을 때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들로 늘 바쁘기 때문에 통화도 쉽지 않다.
우리는 셋 다 다른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가 없다. 그래도 영차영차 날을 잡고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둘은 모일 때마다 나에게 이사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 주말에도 우리가 나눈 대화 중, 대부분이 이사 종용이었다. “기승전 이사 와라!”
친구들은 우울하거나 슬픈 그 순간에 연락을 하려고 해도 생활 패턴이 다르다 보니 전화연결이 어려울 때가 많고, 카카오톡으로 쓰려고 하다가도 구구절절해지고 답답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친구의 슬픔을 과거형으로 뒤늦게 듣는 것이 괜히 미안해진다. 나도 친구가 우울한 그 순간에 바로 알고 달래주고 싶고, 친구의 고민을 실시간으로 같이 고민해주고 싶다. 그러기에 핸드폰 세상 속 만남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직접 만나야 한다. 그런데 우린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우리의 만남은 시간제한이 있어 굵직굵직한 이야기들부터 먼저 하다 보니 늘 못 한 이야기들이 넘친다. 제한 없이 친구들과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싶다. 핸드폰 세상 속이 아닌 직접 눈을 맞추고 감정을 나누고 싶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며칠 동안 더 공허해지는 느낌이 든다.
좋은 매물이 나오면 어김없이 이사하라고 연락하는 내 친구. 얼마나 꼼꼼하게 알아보고 알려주는지, 또 어찌나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는지.. 이사 갈 수가 없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내 친구는 오늘도 주상복합 아파트가 좋은 가격에 나왔다고 핸드폰 속 세상에서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실천하는 중인 걸까? 그런데 나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언젠가는 우리가 모여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 다 크고 나면 그때는 예전처럼 자주 모여서 시시콜콜 떠들고 함께 고민하고 기쁨도 나누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때까지 우리는 아쉽지만 핸드폰 세상 속에서 주로 만나며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