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같은 사람
공통주제 '결혼을 결심한 이유'
결혼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서로의 인생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결혼은 기꺼이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주고 싶은, 그 정도로 깊은 신뢰를 주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녀관계에서는 특히 더 ‘너는 너, 나는 나’ 주의였던 나에게 결혼은 아주 먼 이야기 같았다.
우리는 대학교 같은 과 선후배 사이였다. 그 시절 남편은 나의 대나무 숲이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과묵한 사람. 시시콜콜 가볍게 한 이야기도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입이 무겁다는 것을 파악한 후로 남편을 신뢰하고 의지했다. 절친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면서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라 평생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이성적으로 호감이 생겼지만 연인이 되었다가 헤어지는 것보다는 친한 친구로 오래 가깝게 있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던 우리는 결국 연인사이가 되었고, 나는 남녀사이에 친구는 절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나는 친구들에게 내 남자친구를 바다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천방지축 기분도 생각도 들쭉날쭉 철썩거리는 파도 같은 나를 늘 포근하게 감싸주는 넓고 깊은 바다. 어떤 모습의 파도가 쳐도 고요히 삼켜버리는 바다. 바다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파도는 잠잠해졌고, 이윽고 파도는 바다가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남편의 어떤 면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전부 다요.” 외모도 보고, 성격도 요목조목 다 봤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인데 내 기준에 전체적으로 다 괜찮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중에 단점을 더 상세히 봤던 것 같다. 남편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내가 평생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래도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남편의 성격을 꼽자면 ‘한결같음’이다. 한결같게 다정하고, 한결같게 날 사랑했다. 이런 모습은 결혼하고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했다. 결국 나는 남편과 ‘너는 나, 나는 너’의 관계가 되길 원하게 되었다.
내 믿음대로 남편은 지금도 한결같은 사람이다. 여전히 너무 괜찮은 남자다. 생색내지 않고 조용히 자기 방식대로 내 뒤를 챙긴다. 그래서 모르고 있다가 몇 개월, 몇 년이 흘러서야 뒤늦게 알게 되는 배려들도 있다. 그럴 때면 그 감동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운다. 결코 본인 입으로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남편은 본인의 생각과 달라도 내가 원한다면 들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색이 뚜렷해서 매력적인 사람이다.
남편에게도 나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해서 평생 보살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역시 바다는 그릇부터 다르다. 파도가 아무리 철썩 촐랑거려도 바다 품 안에 있다. 파도는 바다의 심장이다. 내가 본인의 심장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