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성당 주일학교에서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간혹 남자아이들이 짓궂게 놀려도 흔들림 없이 웃었다. “너희들~ 놀리지 말자!” 해사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당당한 기세로 놀린 애들을 도리어 머쓱해지게 만들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웃음은 권능이었다. 굉장히 멋있고 대단해 보였다. 나도 그 친구처럼 만만하지 않으면서도 포용력 있는 웃음을 가지고 싶었다. 그 친구의 장래희망은 수녀님이었는데, 수녀님이 될 사람은 역시 자질부터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어려서부터 웃음이 많았다. 하지만 나의 웃음은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평범한 웃음이었다. 언제부턴가 짓궂게 놀림받을 때, 누군가가 기분 나쁘게 굴 때, 속상할 때 등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그 친구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 친구의 웃음을 떠올리며 내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웃자!’
나는 여전히 자주 웃음 짓는 사람이다. 모두 그 친구의 웃음 덕분이다. 웃음은 전염된다. 내가 웃으면 나를 보고 있는 사람도 웃고, 옆 사람도 웃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다 웃게 된다. 내가 전염되었듯이 나는 남편을 전염시켰다.
남편은 감정, 표정 변화가 잘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겸이에게 무한 사랑 고백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좀 더 격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는 세상에서 겸이를 제일 사랑한다고 했다. 아빠보다?라고 되묻는 겸이에게 그렇다고 하며 아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랬더니 겸이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고, 그 이유는 아빠가 엄마를 볼 때나 엄마 이야기를 할 때 제일 많이 웃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편에게 웃음은 사랑이구나.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래서 내 일기장에 자주 등장한다. 힘든 시기를 겪는 중에 쓴 일기 마지막 줄에는 늘 ‘웃으면 복이 온다! 웃자!’가 적혀있다.
나는 문득 내가 무표정인 것 같다고 인지했을 때, 의식적으로 입 꼬리를 올리는 버릇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나 심각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리는 건 아닌지 황급하게 표정을 신경 쓰곤 한다. 웃음은 이렇게나 나에게 가까이 있다. 나에게 웃음은 일상이다. 그리고 기쁨이며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