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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균희 Aug 01. 2023

수면에서

악몽에 이르러


  얼음동굴 같이 꾸며 놓은 곳에서 좌우에 발끝을 넘실거리는 물을 두고 걸었다. 커다란 유리로 막은 수조들이 먼 벽을 이뤘다. 한 수조를 꽉 채우며 똬리를 틀 듯 노랗고 까만 줄무늬를 비트는 큰 곰치가 있으면 그 옆은 여러 색깔의 작은 물고기들이 반짝거렸다. 도착한 욕실에는 우측 타일 욕조에 고래가 배를 뒤집고 김을 내며 죽어가고 있었다.


 바다지만 수족관이 된 바다 내부의 기지, 내부에서 사육하던 고래들이 죽고 수족관이 다 터져버렸다. 안에 있던 이는 헬기로 구출 되었다.


 눈이 없는 노랑과 검정 굵은 줄무늬의 물고기(깃대돔, Moorish idol)가 계단식 수조 밖에서 숨을 몰아 쉬었다. 수직으로 얇은 몸이 부풀었다 줄었다. 잠수하듯 한 층 낮은 수조로 들어갔다가 다시 뭍인 타일로 펄쩍 올라오고, 숨을 힘겹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마지막 층 수조로 퐁 들어갔다. 그보다 두껍고 큰 아가리가 바로 그를 덮쳤다. 아가리 사이사이에 보라색 액체가 연기처럼 흘렀다. 몸이 뭍으로 펄쩍 뛰어올라 독을 풀고 몸을 부풀린 그와 함께 안으로 욱여넣은 모든 것들을 게워냈다. 모두가 죽었다.


 두 어항 중 오른쪽에 있던 한 물고기가 시꺼멓게 변하더니 왼쪽으로 튀어 넘어갔다. 그 사이에 새끼를 낳아 가지 각색의 작은 새끼들이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만질 수 없어 장갑을 끼고 시야를 일부러 가리며 퍼덕거리는 작은 것들을 담요로 쓸어 담았다. 죽든 말든 상관이 없었지만 누군가가 이것을 버리든지 물에 넣어 주든지 눈 앞에서 없애 주길 바랐다. 오른쪽 수조에는 튀어 오른 놈의 허물이 가라앉았고 먹이를 주는 이가 나타나자 밑에 있던 다홍빛의 큰 돔 같은 것들이 서로 포개어 누워있는 상태로 수면 위로 올라 뻐끔거렸다.


 얼음 동굴에 생존하는 물고기들은 일반적으로 헤아리기 힘들며 곰치의 일반적인 크기는 최대 3m이다. 꿈 속 벽을 채운 몸체의 두께와 크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래는 죽을 때가 되면 뭍으로 올라오며 배를 보이지 않는다. 그가 욕조에 있을 이유도 없다. 바다 내부에 기지를 만들 수 있지만 학자들을 위한 해저기지 아쿠아리우스(Aquarius)는 위치하는 수압에 맞는 기압을 유지해야 견딘다. 쉽게 보는 유리로 이룰 수족관을 만들 수가 없다. 사람이 해저로 내려갔다 지상으로 가려면 수 시간에 걸친 감압 처치가 필요하다. 처치 없이 올라오는 경우 기압 차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헬기 구출은 단 번에 불가능하다. 깃대돔은 소형어종으로 꿈에서의 일반 3자 수조 높이 만한 키를 가질 수 없으며 물과 뭍으로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해수어이다. 그는 독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고기는 파충류와 절지류처럼 허물을 벗지 않는다. 또한 물고기는 대개 새끼를 낳지 않고 알을 낳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포개질 일이 없다.


 바다에 사는 생물은 앞에 두고 참아내기 힘든, 잘 보지 못하는 대상이다. 물에 물고기가 있음은 눈 앞이 아득하고 가슴을 내리 누르는 압력을 발한다. 은신처 없이 투명한 수조로부터 펄쩍 뛰어올라 떨어진 구피를 구해주지 못하고 어쩌지 못한 일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학급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금붕어들을 반에서 책임지기로 하고 데려와 집안을 놀래킨 일이 있다. 이후 입 안에 물만 담그면 안에 물고기가 있는 것 같아서 매번 양치를 하거나 물을 마시는 게 고역이었다. 그와 별개로 이름 지어 키운 존재들이 스트레스 받는 게 눈으로 보였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이 까매졌다. 그를 보고 괴롭고 일상적으로 구역질을 하느니 그들이 죽기를 바랐다. 더 거스르면 수족관 내 거북이의 눈이 있다. 벽이 수족관인 곳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 아주 가까이 거북이가 있었다. 그 깜짝 안 하는 눈을 한참이나 보고 와서는 커서 그걸 두고두고 기억하며 물 속 모든 눈들을 보거든 가끔 큰 숨을 필요로 한다.

 

 바닷물은 헤아릴 수 없다. 수조에 담가 두면 헤아릴 수 있다, 인간의 영역에서 계산되어 담기고 조절이 가능하다. 생물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를 수조로 들여오는 것은 인간의 영역에 두는 것이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과거 탐구한 이들로부터의 정보들과 당장의 마주하는 상황으로나마 알게 된다. 그러나 탐구 되지 못한 방법으로 그는 존재할 수도 있다. 기존에 있던 곳에서 어떤 흐름으로든 비틀려 인간 손아귀에 들어와 ‘대상'이 되어왔기에 그는 본연의 자연을 훼손당했다. 그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숨 쉬는 물, 사는 환경을 관리하는 인간이 됐다. 범위를 알 수 없는 그들의 삶에, 책임질 수 없는 것들에 인간이 이름표를 붙이며 알아보겠다 알아내겠다, 같이 있겠다며 옆에 둔다. 잠이 들면 이에 미지의 존재로서 인간이 아는 그들이 튀기 시작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앎을 밀어내고 꿈 속 그 자체로의 존재가 자리잡는다. 인간이 만든 조각들이 깨져 기존과 다른 조각과 맞춰진다. 모르는 곳에서 익숙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있는 그 자체로 두려움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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