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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이 Jan 23. 2022

청소년이 삐뚤어지는 것은 부모와 사회(교육) 탓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리뷰 1.

'공부'에 대한 글을 쓰고,

'공부'를 가르쳐 본 경험들을 바탕으로 정말 와닿는 책이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오히라 미쓰요 변호사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이다.


중학교 때 전학을 가 집단 따돌림(왕따)과 괴롭힘(이지매)을 당하면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겪게 되고, 그 와중에도 서로의 탓만 하고 자신의 체면만 생각하는 엄마를 보며 나쁜 마음을 품게 된다.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화장실에서 물 붓기, 집단 무시, 책상에 낙서질, 쓰레기 쌓아두기 등 갖가지 괴롭힘을 당한 중학생 시절의 미쓰요는 할복자살을 결심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게 된다. 배에 세 번을 칼로 찔렀으나 심한 출혈만 생기고 죽지 않아 두 번을 더, 총 다섯 번을 자신의 배를 칼로 찔렀으나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사경을 해메인다.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들에 의해 구조되어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지만 그 이후 부모님은 다시 미쓰요가 괴롭힘을 당했던 학교로 돌려보내려 한다.


아마 어디로 전학을 가든 소문은 금세 퍼질 테고, 또 괴롭힘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애초에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는 원래의 학교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엄마가 결심한 듯 말했다.

"길에서 걸어가고 있으면 사람들이 수군거려."
-저것 봐 저 사람이야. 저 여자 딸이라니까. 요전번에 강 둔치에서 할복자살하려던 애.
 틀림없이 부모가 잘못 키운 탓이다. 애를 제대로 가르쳤어야지.

"엄마는 길에 나다니지도 못하겠어. 게다가 학교까지 안 간다면... 부탁이니까 제발 학교에만은 가.
 정말 창피해 죽겠으니까."

동네 사람들 중에는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무슨 재미있는 사건이나 파헤치는 양 흥미 본위로 아무 말이나 막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도 속이 많이 상했겠지만, 나는 엄마가 한 말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는데... 엄마는 나보다 세상 사람들의 눈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이렇게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억지로 삼키며,

"엄마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3학년 1학기부터는 학교에 갈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나 스스로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고,
더 이상 엄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77-78.)


이 이야기 앞에서도 뒤에서도 계속 나오지만, 엄마가 미쓰요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던 마음의 진심은 미쓰요를 정말로 사랑하고 그 아이의 미래를 장래를,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하는 체면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딸보다 자신이 훨씬 소중한 사람이었다.


학교에 다시 돌아갔으나, 왕따를 당할 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괴로운 상황들이 발생했다. 선생님들도 미쓰요를 문제아 취급하고, 자살 시도한 것을 가지고 자기소개 시간에 누군가가 "쟤 취미는 배를 칼로 푹푹 쑤시는 거래요."라고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했다.


어느 한 곳 마음 붙일 곳 없었던 미쓰요는 빈번하게 가출을 일삼게 되고 담배를 피운다거나 자신이 당했던 일을 하는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친구들과 어울리며 머리를 하려 다녔던 미용실에서 미용사 언니에게 진로 상담을 받고 다시 한번 용기를 얻어 열심히 공부하여 미용학교에 당당히 합격한다. 합격통지서를 들고 찾아간 담임선생님과 엄마의 반응.. 그것이 미쓰요의 인생을 다시 한번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무사히 합격한 기쁨에 먼저 담임선생님께 알리려고 합격통지서를 움켜쥐고 학교로 갔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교무실 문을 조금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은 내가 온 걸 보고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난 합격통지서를 자랑스럽게 내밀며,

"선생님, 저..." 하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말을 이으려 하자,

담임선생님은 내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고는,

"뭐냐? 양아치 같은 머리를 하고서는, 그런 머리를 하고 어딜 간들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합격한 것에는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교실로 향했다.

'지금껏 선생님한테는 반항만 해왔기 때문에, 용서를 빌려고 제일 먼저 달려왔는데..."

내가 워낙 잘못을 해왔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단 한 마디라고 좋으니,

"축하한다, 이제 앞으로는 열심히 해라."

이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머리도 곧바로 까맣게 다시 염색할 생각이었는데. (p. 110-111.)


사실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평생 살면서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하는데, 중학생이 무엇을 알겠는가? 자신의 선택이 자신 주변의 다른 사람의 삶을, 또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알겠는가?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합격했는지를 물으셨다.

"어땠니?"

나는 온통 구겨진 합격통지서를 내밀었다.

"합격했구나."
"..."
"잘했다. 잘했어."
"..."
"그렇지만 고등학교에도 안 가고 미용학교에 간다니, 친할머니나 친척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하지?"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에 가지 않는 게 무척 자존심이 상했는지
친척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창피한데...?"
"뭐?"
"뭐가 그리 창피하냐고 묻고 있잖아?"
"그런 건 아니지만..."
"그게 아니면 무슨 뜻인데...?"
"..."

엄마는 말문이 막혔는지, 침묵한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체면이라는 걸 완전히 망가뜨려주지...'

나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버렸다. (p.111-112.)


이후 미쓰요는 오토바이 폭주, 무면허 자동차 운전, 신나(약) 등 더 심한 비행을 시작했고, 결국 16살에 조직폭력배 두목의 아내가 되기도 하였다.


청소년기는 마치 각도기의 처음 시작점(가운데)과 같다. 각도기의 시작점(가운데)에서 10도 차이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고, 이쪽 각도에서 저쪽 각도로 넘어가는 것이 그렇게 멀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심점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10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멀어지고 나중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청소년이 고민하고 힘들어할 때 부모가, 어른이 기다려주고 지켜줘야 하지만 그 시기에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각도가 크게 삐뚤어지 타락은 너무나 쉽게 일어나게 된다. '비행'의 길 너무나 가까이에 있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보다도 훨씬 가기 쉬운 길이다.


지금은 청소년 범죄, 청소년 문제를 단순 청소년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가정폭력(알코올 중독, 성범죄 등)에 시달리거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청소년일수록 더 이런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 통계적으로도 증명되어 있다.


'결혼과 아이에 대하여'라는 니체를 글을 빌려서 쓴 글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갖기 전부터 나는 과연 아이를 가질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부터 점검해보아야 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아이에게 다른 인격체로 온전히 살아갈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책임들을 덧씌우게 되고,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어른에 대한, 사회에 대한, 삶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인식은 어떤 계기나 교육을 통해 바뀌지 않는 이상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고 또 후대에 그대로 전해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금융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 가난 대물림되게 된다.) 그 아이가 자라서 또다시 고통을 겪고 이것이 확장되고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런 아이와 어른이 더 많아질수록) 더 팍팍하고 고통만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건전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과 그것을 배우는 '공부'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타인에게 감사는 어떻게 언제 하는 것인지, 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나누는지(공감, 역지사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 내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배워야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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