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질서 있는 조기퇴진'으로 정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는데요.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다 같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탄핵안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폐기됐습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밀어붙이는 탄핵안 대신 질서 있는 조기퇴진으로 정국을 수습하겠다고 외쳤습니다. 8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국정 수습 계획을 밝혔습니다. 한 대표는 "질서 있는 조기퇴진을 추진하겠다"며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국무총리가 당과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기겠다"고 했습니다. 10일에는 '2월 퇴진 후 4월 대선' 또는 '3월 퇴진 후 5월 대선' 등 조기퇴진 관련 로드맵을 만들기도 했죠.
질서 있는 조기퇴진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보수 진영이 처음 제시한 대응책입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의 심판까지 국론이 분열되고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등 극심한 혼란을 피할 수 없지만, 사퇴 시기와 정국 수습 방안을 마련한 뒤 대통령이 물러나면 후유증이 덜할 것이란 논리였습니다.
이번에 여당이 탄핵 대신 질서 있는 조기퇴진 카드를 꺼내 든 이유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탄핵 후 혼란'을 우려했죠. 국민의힘은 전체 의원 명의의 입장문에서 '8년 전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남긴 건 대한민국의 극심한 분열과 혼란이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국정 마비와 헌정 중단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한 대표는 "극심한 진영 간 혼란이 예상된다"며 "시기를 정하는 대통령 조기퇴진과 퇴진 이전 단계에서의 직무 배제는 국민과 국제사회에 예측 가능성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당이 탄핵을 필사적으로 막아서고, 질서 있는 조기퇴진을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8년 전의 탄핵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2016년 당시 62명의 여당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서 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며 분열과 반목이 거듭됐고, 결국 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는 겁니다. 탄핵 이후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게 되면 보수 진영이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닥쳤죠.
여당의 몰락을 우려해 질서 있는 조기퇴진을 추진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에게는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할 법적 권한이 없을뿐더러, 결국 최종 결재 라인에 서명하는 것은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쿠데타적 행위"라고 비판했고, 이재명 대표는 "국민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지, 여당 대표를 대통령으로 뽑은 적 없다"고 맹공했습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강제 수사와 향후 탄핵심판에 대비하는 법률대리인단을 꾸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윤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심판에서 기각 결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 여당의 조기퇴진 방안을 수용하지 않고 탄핵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12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후 한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이 조기 퇴진에 응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탄핵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하며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탄핵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