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고 있는 LX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는 2020년부터 매년 어린이를 위한 창작동화책을 제작해 전국 유치원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지적측량’과 ‘공간정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주업으로 하는 공공기관이 동화책을 발간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었다. 우리 기관을 잘 모르는 3040세대를 겨냥한 홍보라고 설득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3040세대에게 광고를 해야지 왜 유치원생을 위한 동화책을 만드냐”라고 반박했다. 첫 동화책이 발간되고 3년이 지났다. 기관 인지도 취약 층이라고 생각했던 3040세대의 인지도는 38.1%에서 49.9%까지 큰 폭으로 올랐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3040세대들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자연스럽게 LX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가끔을 돌아갈 때 더 빠를 수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삶의 방식을 꼽자면 ‘빨리 빨리’가 빠질 수 없다. 자판기에서 음료가 채 나오기도 전에 손을 넣고 기다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무섭게 닫힘 버튼을 마구 누른다. 대한민국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만 유독 칠이 벗겨진 이유이다. ‘빨리 빨리 문화’는 광고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더 빠르고 직관적인 홍보효과를 얻기 위해 최근 광고시장의 주류는 퍼포먼스 마케팅(Performance Marketing)으로 변화하고 있다.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고객만을 타깃팅 해서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초반에 높은 효과를 보여줬던 퍼포먼스 마케팅도 최근에는 지나친 노출로 인한 ‘광고 피로도’ 상승 때문에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를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너무 빠른 것만을 찾다 생긴 부작용일 것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LG전자는 프라다폰, 초콜릿폰 등 피처폰들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세계 휴대전화 시장 3위까지 올랐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등장에 따라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자문을 의뢰했는데, 맥킨지는 새로운 기술 개발보다는 피처폰의 마케팅에 집중하라는 결론을 내린다. 오래 걸리고,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기술보다는 매출과 직결되고 현재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는 피처폰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LG전자는 이 컨설팅 때문에 뒤늦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게 되었고, 결국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2021년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한다. 반면, 삼성은 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함으로써 현재 애플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었다. 마케팅이라는 빠른 길이 아닌 기술 개발이라는 돌아가는 길을 시간을 두고 확실하게 걸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이 급할 때 지름길을 찾는다. 매출을 더 내려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려고 사람들은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다. 하지만 애써 찾은 지름길이 실상 우리를 목적지까지 빠르게 데려다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거리가 짧은 경로라도 예기치 못한 장애물과 마주해 오히려 시간을 더 허비하기 쉬운 까닭이다. 도심 속 대로변은 넓고 쭉 뻗은 길이지만 퇴근시간에는 교통체증으로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한다. 하지만 골목 사이사이로 가면 막히지 않아 조금 돌아가더라도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 법정 스님은 “인생의 길도 곡선이다”라고 말했다. 빠른 길만 찾을 것이 아니라, 멀리 돌아가지만 사실은 가장 곧은 길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