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일어나야 하는 이유
세상에 힘든 일이 참 많겠지만, 내게 손꼽히는 힘든 과제를 이야기해보자면, 그건 아침 기상일 테다.
맨 먼저, 결혼 후 나의 기상시간 히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결혼 한 직후 나는 임신을 했었고, 오롯이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건 열 달이 전부였다. 그 열 달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이 들만큼 나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임산부라는 이름으로 남편과 시댁, 친정식구들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원 없이 쉴 수 있었다. 당연히 내게 정해진 기상시간이란 없었다.
<아 결혼하니 좋구나. 회사 안 가니 좋구나. 남편이랑 단둘이 사니 좋구나. 실컷 잘 수 있다!>
여기에서 변화가 왔다. 내 아이 서현이가 태어나면서 나는 기상을 3번, 4번할 때도 있었으며, 내가 과연 몇 시간을 잤는지 계산하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쪽잠을 자게 되었다. 아기를 보면서 "요 녀석이 과연 내 배에서 나온 게 맞나? 내가 이렇게 이쁜 코를 만들어줬나? 이렇게 이쁜 입술을? 어쩜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왔을까..."싶어서 일부러 울려도 보는 나였다. 내가 유난한 것 인정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죽음을 맛보듯이 힘들었다.
<아가야 엄마는 잠이 너무 부족하단다... 엄마 이렇게 자다가 폭발할 수 있단다... 어쩌면 좋지...>
그런데 또 변화가 찾아왔다. 둘째 서영이가 태어났다. 서영이는 다행히 분유를 먹인 덕분에 통잠이란 것이 빨리 올 수 있어 나의 기상시간을 한결 늦춰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영이가 태어난 후 서현이는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고, 난 다시 부지런한 엄마의 열에 서게 되었다. 잠 많은 내가 남편 뒷바라지는 내팽개치고, 서현이 어린이집에 갈 차비를 위해 서둘러 일어나 아침을 하기 시작했다. 참 자식이 뭐라고...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얘들아 엄마는 왜 이리 늘 피곤한 거니... 네가 어린이집을 가도 엄마는 피곤하다... 늙었나 보구나>
그리고 둘째가 어린이집 출동에 합류했다. 그때 첫째 서현이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두 아이 사회생활에 나 역시 낮시간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아침 분주한 시간도 규칙화되어 갔다. 아이를 깨우기 전에 준비를 이것저것 해야할 것 같은 마음에, 나의 기상시간은 당겨져 갔다. 그렇게 나의 괴로운 아침 기상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나의 피곤함도 그렇게 단단하게 무뎌져 갔다. 내가 피곤한 건지... 피곤한 게 나인 건지 모를 만큼 우리는 이미 한 몸이 되었다.
<난 확실히 늙었나 보다. 더 이상 회복이 안될 만큼 피곤하구나... 아침에 일어나는 게 세상에서 가장 괴롭다는 거... 엄마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힘든 아침 기상을 해야 하는 걸까>
내 나이 41살. 지금 여기는 호찌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생각한다. "아 오늘도 덥구나.. 어제도 더웠지.... 그래.. 내일도 덥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 스스로 선택했다. 이 더위와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보겠다고. 나의 억울한 감정마저 느끼는 괴로운 아침 기상을 내가 즐겨보겠다고!
나는 남편과 새벽 5시에 일어난다.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내가 만나는 새벽 5시는 보라색이다. 깜깜한 밤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저 멀리 비치는 듯 내가 만나는 세상은 보라색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보라색 공기는 시원한 공기를 데려온다. 호찌민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상쾌함이다. 이 처럼 나는 그시각 남편과 함께 깜깜한 아침을 마중나간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나만 깨어있는 묘한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사실 새벽 5시 기상이 내게 주는 의미는 단순히 보라색, 청량감, 상쾌함만은 아니다.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한다. 세상에 나 하나만을 두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아이도, 남편도 그 시간에는 내 머릿속에 없다. 내 아이 공부 걱정, 내 남편 회사 걱정은 내 머릿속을 삐집고 들어올 틈을 못 찾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나"
"내가 무엇이 부족하여 긴장하나"
"나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는 객관적으로 어디에 서있나"
신기하게도 깜깜한 새벽에는 이러한 많은 생각들이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나 역시 몸이 천근만근일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한 시간만 더 늦춰서 일어나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다. 이불속에서의 3분이 나에게 30분과도 같다. 나와의 투쟁 중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새벽 6시이든 새벽 7시이든 나는 세상에서 아침 기상이 가장 괴롭다.
그렇다면 차라리 새벽 5시를 선택한다.
깜깜한 새벽 아파트 단지를 걸어봐라. 나처럼 남편의 손을 잡고 걸어도 좋고, 혼자 걸어도 좋다. 나의 경우, 남편과 함께 걸으며 느껴본다.
" 힘든 하루가 오늘도 되겠구나.. 어쩌면 무료한 하루일 수도 있겠어. 엇! 남편의 팔과 서로 부딪혔다. 남편이 내 옆에 있구나... 우리는 아직 젊다...이 하루를 용기있게 살아볼수 있겠다 "
그리고 깜깜한 하늘에다 외쳐도 좋다. "내 삶의 가치는 내가 정해! 난 이겨낼수 있어!"
그리고 집에 들어와 스케줄러를 간단히 정리하고, 아이가 쓰다버린 받아쓰기 공책에 나의 감사일기를 쓴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
얼마나 빛이 나는 사람인가...
아침 준비를 간단히 한 후 아이의 방에 들어간다. 여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구나. 아이들의 땀냄새, 아이들의 로션 냄새, 그리고 몽롱해질 만큼 탁한 공기의 냄새도 난다. 그리고 아이들 방의 창문을 활짝 열고 세상의 공기를 아이들에게 맡게 해 준다. 벌써부터 호찌민 오토바이의 쾌쾌한 냄새들이 방안에 들어온다. 그리고 아파트 마당을 거친 빗자루로 청소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제 나는 한밤중인 딸들에게 눈으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