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뭉개버렸고, 베트남 호찌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호찌민은 코로나 비상사태에 놓인 지 수개월째이며, 이로 인해 아이들은 각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있고, 남편 역시 포상휴가인지 벌칙인지 모를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나와 남편이 만난 이래,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붙어 지낸 것은 처음이었고, 이 경험은 앞으로 우리 부부가 머리칼이 희끗해질 때나 겪을 법한 아주 희소성 있는 경험이었을 테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지난 3개월을 한 공간에서 서로에게 기생하듯 살아갔다.
예전에 우연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부부가 노부부의 모습으로 분장해 먼 미래를 미리 체험해보게 하는 것을 본 적 있는데, 내가 그 경험을 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 연예인 부부처럼 드라마틱한 노년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주말에나 볼 수 있던 트레이닝복 바람의 백수의 몰골을 3개월 동안 빠짐없이 보아야 했고, 노후에 우리가 하루 종일 붙어 지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미리 연습해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이 사람의 하루 일과뿐 아니라, 얼마나 자주 스마트 폰을 만지는 가에서부터, 식사 후 거북한 배부름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밥 세끼를 집밥으로만 먹어야 했던 봉쇄기간에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하지는 않는지, 휴식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는지, 자신의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회사일로 예민해져 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틈틈이 자기 계발에 관심이 있는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가족들에게 틈새 관심을 가져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위생관리는 얼마나 신경 쓰는지, 셀 수 없이 많은 그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원래 부부싸움은 이렇게 치약 뚜껑 하나 제대로 못 닫았냐고 언성 높이는 일상의 마찰로 시작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작은 부분들마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남자의 정치적 성향, 경제적 관념, 사회생활의 능수능란함 이러한 것들은 이미 결혼한 지 십 년 된 나에게 큰 관심거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3개월을 함께 화장실을 쓰면서, 청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아주 소소한 내용까지 이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고, 이로 인해 우리는 진짜 "부부"가 된 것 같았다.
물론 예상대로, 이 시간들이 마냥 내게 행복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마치 결혼식을 막 치른 신혼부부 마냥 크고 작은 문화 충돌이 생기기도 했으며, 서로의 감정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어벽을 점검해 보기도 했다. 요즘은 많은 젊은 부부들이 결혼 전 동거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먼저 관찰한 후, 이를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세심한 판단을 한다고 하지만, 나같이 겁 많고 걱정 많은 사람에게는 그것 역시 너무 큰 도전이기 때문에 생각조차 한적 없었다.
10년 전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이제는 서로에 대한 긴장감을 이미 다 풀어버린 지 오래이다. 친정과 시댁이 멀리 있었기 때문에, 외로운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서로였으며, 결혼생활 내내 나와 그는 대부분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느끼는 일의 성취감, 아이들에 대한 행복감과 동시에 느끼는 불안감,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쏟아부었었다. 그와 동시에 봉쇄 해제돼버린 성벽처럼, 우리는 서로 화살을 마구 쏘아대며 싸우기도 했으며, 그 싸움 속에서 본능적인 공격성, 자신의 숨은 욕구가 날것으로 그대로 드러났고, 싸움 뒤에는 각자 자신의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을 가리기 바빴던 날들도 있었다.
이런 우리 부부는 지난 3개월간 우리 관계에 대해 다시 정리해보게 되었다. 나는 아는 선배의 소개팅을 통해 그를 만났고, 첫 만남은 아주 무난한 데이트 상대 정도였던 기억이다. 그는 나와 만날 장소를 먼저 물색해 보고, 그곳에 미리 가 좋은 테이블에 자리 잡고, 항상 무언가 나를 위해 한 발 앞서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그의 모습은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내게 인생의 "쉬는 시간" 같았다. 대부분의 연애가 그러하겠지만, 나는 그에게 보살핌을 받고, 관심을 받는 것이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내게 그 사람과 왜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었다.
" 이 남자보다 잘 생긴 사람도, 성격 좋은 사람도, 능력이 더 많은 사람도 많겠지만, 그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고..... 허허허" 농담처럼 이렇게 이야기했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덧붙여 진짜 내 짝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 나는 이 남자랑 놀 때가 제일 재미있어. 공부가 힘들어도, 일이 힘들어도 나중에 이 남자랑 놀 생각하면, 기운이 나. 이렇게 함께 노는 시간이 즐거운 남자라면 평생 같이 놀아도 재미있을 것 같아. 건강, 돈, 이런 것들은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
다행히 이 남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시간을 다른 여자들 역시 즐겁게 여겼다면, 나도 그 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겠지만, 그와 내가 보낸 즐거웠던 시간은 우리 둘만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기에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확신을 했다. "우리는 결혼을 해야겠구나."
물론, 여기에서 나랑 유머 코드가 잘 맞고, 단순히 노는 게 재미있다고 결혼을 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글솜씨가 서툰 것이다. 당시에 그는 부지런하면서도 활기찬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들은 내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결혼 전 나이가 들수록 부지런한 남자, 열정적인 남자를 만나는 게 힘들어진다고 아는 선배가 말해줬었다. 회사생활에 지쳐갈수록, 남자는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TV 리모컨만 겨우 들 것이라고 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부지런한 , 에너지가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게 좋다고 이야기해주었던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이렇게 말한다고 내가 아직도 배우자에 콩깍지가 씐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 남자의 이러한 매력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나는 결혼을 결정했었고,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가 된 것이며, 그 어떤 "불편한 점"이 나와도 우리는 이것만으로 문제를 삼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전지현이 아니며, 그 역시 내게 정우성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먼저 알고, 각자가 보는 손해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3개월 함께 생활하면서 남편에게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정리정돈의 개념이었고, 3개월 내내 그 부분에서는 결국 타협을 보지 못했다. 결국 우리 중 누구 한 명은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았고, 이것은 나의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를 절정에 이르도록 했다. 또한 그 희생자가 우리 둘 중 "나"여야 한다는 사실에 매우 언짢았었다. 내가 치우고, 쓸고, 닦고, 빛내고 광내 보아도, 남편의 눈에는 여전히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집이었고, 그 반대로 모래알 밟히는 듯한 집으로 내버려 둬 봤지만 그 역시 남편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 긴 기간 동안 두 아이와 남편이 힙을 합쳐 어지르기 시작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정리정돈을 하며 청소를 했는데...... 결국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불편한 심기임을 온몸으로 알렸다. 하지만 이 역시 아이들을 포함하여 세 사람은 전혀 알리가 없었다. 이것이 현실이었고 내가 감당해야 했다. 세상 일이 모두 타협점이 있어, 협력 가능한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며, 부부 관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감당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기 시작하면, 사실 이 일은 큰일이 아닐 수 있으며, 가끔은 나 역시 기분 좋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정리 정돈, 청소의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가 나에게만 있었겠는가. 집에서 회사 일을 보는 그에게도 분명 있었을 테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일의 성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실패가 무서워 일을 시작도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나는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의 기쁨과 슬픔, 외로움을 전적으로 공감해 줄 수 있지만, 때로는 나만의 감정에 빠져 잠자는 겨울 곰이 되려고 한다. 나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일의 초반은 파이팅 넘치지만, 부족한 체력으로 쉽게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며, 내 주관을 잃지 않은 올곧은 면이 있다고 보지만, 이것은 결국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기 싫어하는 독단주의에 빠지기도 쉽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우리 부부는 참으로 서로 다른 성향의 조합인듯하다.
칼의 양날과도 같은 나의 모든 것들을 이 남자가 다 받아 주고 있는 것이며, 나는 그 남자의 칼날을 받아 주고 있다. 서로를 위해 "손해를 기꺼이 봐주는 사이". 그 손해를 보면서도 그럭저럭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이가 되도록 노력하는 사이가 서로의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생각은 아마 또 나이가 들면서 바뀔 것이며, 거기에 맞춰 나도 내 남편도 서로를 위해 때로는 곰이, 또 때로는 여우가 되어주는 센스를 보여야 할 것이다. "나이 들면 노력이고 뭐고 다 귀찮아!"라고 손사래 치는 어른들이 분명 있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부분을 염두하고 노력하려는 자세를 가졌느냐가 부부의 관계 유지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모든 성인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때로는 비교하며, 그 결과 함께 남은 인생을 이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내 손해가 아깝지 않을 남자, 여자를 만나 손해 보며 산다면 더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내 남편은 오랜만에 출근을 해서 야근 당첨일 것이고, 나는 지난 5개월간의 아주 피로한 독박 육아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집밥 좋아하는 남편이 밖에서 밥이나 잘 챙겨 먹고 큰 무리 없이 귀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 해야 하며, 늦은 밤 남편이 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