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괜찮다는 연습
결혼 후, 프리랜서로 강사일을 하면서, 내게는 많은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고, 이 자유시간은 다시 말해, 나의 독립을 허락했음을 의미한다. 주부가 되면 수많은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외롭고 의미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던 부분이 점심식사시간을 혼자 잘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MBTI에서 외향적 성향을 더 많이 가진 것 같은데, 이는 점심시간을 혼자 조용히 보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였겠지,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교육기관에 보내지기 전부터 엄마와 단둘이, 때로는 가족들과 북적대면서 식사를 해왔던 나 아니겠는가. 학교를 가도 늘 북적이면서 밥을 먹었을 테고, 직장을 다닐 때에도 늘 동료, 선 후배와 함께 수다 속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 중, 사자는 PRIDE(프라이드)라고 불리는 단체 생활을 한다고 한다. 나는 사자처럼 혼자서 지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랬던 나도 결혼 후, 임신을 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코알라처럼 혼자 내 영역에 있게 되었다.
자신의 나무 영역에서 좀처럼 잘 벗어나지 않는 코알라. 예전 동물을 다루던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코알라는 자신의 영역에서 식사하고 잠을 자는 둥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고 한다. 소통 역시 구애와 짝짓기 같이 꼭 필요한 순간에만 하고 대부분을 조용히 소리 없이 지낸다고 한다. 어느 순간 나는 이미 코알라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하늘은 세수한 듯 맑았으며, 가끔 불어대는 바람은 쪽 빗으로 머리를 빗겨주듯 한 가닥 한 가닥을 쓰다듬어 주던 그런 날이었다. 집안 가득한 식물에 바람과 햇빛을 만나게 해 주려고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순간 설렘 가득한 공기가 내 집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간질간질한 설렘을 주면서도, 계속 콩닥콩닥하는 답 없는 질문을 하는듯한 그 의문의 긴장감이 독자는 이해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 이대로 있을 거야?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재미있는 생각 없어?" 여러 가지 물음표 가득한 질문들이 나를 콕콕 쪼아대는 것 같았다.
창문 앞에 한참을 서서 밖을 내다보다, 일단 세수를 해보자. 그리고 로션을 발라보자. 그러고도 마음이 여전히 설렌다면 화장을 조금 해 보자. 시간이 흐르고, 나는 이미 과하지 않은 립스틱까지 바른 모습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나는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밖에서 수다를 떨 준비도, 누군가와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을 준비도, 혹은 누군가와 소박한 웃음과 대화가 가득한 점심식사를 할 준비도 다 되어있다. 그런데 막상 용기가 서지 않는다. 울리지 않는 전화가로 내가 먼저 누군가를 간택하여 물어볼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용기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어휘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선택했다. 나 혼자 그 설렘, 긴장감 그리고 근사함을 느끼기로 말이다. 즉흥적인 만남에 우리는 더 설렐 때도 있다. 그래서 계획된 만남이 주는 예측된 피로보다는 즉흥적인 만남에서 오는 기분 좋은 수준의 긴장감을 더 반길 때도 있다. 그날의 나와의 약속이 그러했다. 나는 평소 잘 입지 않았던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운전대를 잡았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면서, 사실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어디 갈지 안정해졌기 때문이다. 바람이 난 여자도 아니고, 남편과 싸워서 갈데없는 여자도 아닌데, 나는 왜 이리 갈팡질팡일까. 혼자서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하는 내 모습에 어이없는 듯 피식 웃기도 했다.
주차된 차에 키를 꽂고서 본능적으로 백화점으로 향했다. 사실 아이들과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백화점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백화점 쇼핑을 즐기지는 않는 편인데, 일단 그곳에 가면 쉽게 일이 해결될 것 같은 막연함으로 그곳을 선택했던 것 같다. 막상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날씨는 더없이 좋았었고, 햇살이 운전대를 잡은 내 손을 톡톡 치는 것 같았다. 막 겨울이 지나서 여전히 춥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햇살이 따가워졌지...... 이런저런 생각에 벌써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전쟁에 출두하는 장군처럼 씩씩하게 백화점 식당가로 발걸음을 향했다. 당시 이른 점심시간이어서 사람들도 많이 북적대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서 식당가를 배회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바라던 모습은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처럼 식당가 층을 걸어 다니고 싶었지만, 아마 누군가의 눈에는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 그 순간만큼은 나는 아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보이고 싶었고, 그렇게 내 온 몸짓과 눈빛에서 그러한 아우라를 뿜어대고 있었다. 당시 내가 골랐던 메뉴는 일본식 생돈가스와 알밥세트였다. 메뉴도 아주 적당했다. 평소에 집에서 먹지 않는 메뉴였고, 조용히 먹어도 크게 요란해 보이지 않는 메뉴였으며, 먹을 때에도 입 주변이 더러워지지 않을 만큼 조신하게 먹을 수 있는 , 일단 내가 좋아하는 메뉴였다.
조심스럽게 참께를 직접 갈아서 소스를 부으며 내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잠시 고민을 했다. 스마트 폰을 하면서 이 시간을 버텨볼까. 그때 옆에 삼삼오오로 모여있는 손님들이 나처럼 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과는 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을 냈다. 그래서 늘 들고 다니던 다이어리와 팬을 꺼내 들고, 이것저것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 날씨, 내 옷차림과 화장, 그리고 운전하는 내내 느꼈던 설렘과 긴장감, 그리고 기록하는 이 순간 느끼고 있는 어색함과 낯선 자주적인 감정. 모두 다 고스란히 기록했다.
때가 되어 나온 맛있는 내 점심메뉴를 핸드폰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고, 아주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다. 샐러드까지 다 먹고 주신 차까지 다 마시고 나왔다. 그리고 같은 층에 있던 카페로 들러 시원한 아이스카페라테까지 주문받아 테이블에 앉았다. 구석 테이블에 앉아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무언가가 불편했다.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던 백화점 카페분위기가 내 낭만에 조금은 방해된 것 같았다. 그래서 커피를 들고 나와 백화점 옥상 공원으로 나와 내 남은 점심시간을 한껏 즐겼다. 나는 오늘 아주 완벽했다. 어쩜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려한 혼자만의 점심을 했으며, 이 시간조차도 나는 우아하면서 강단 있는 여자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나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한껏 꽉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날 이후 십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는 지금 외딴 나라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낸다. 나의 십 년 전 스스로 나를 챙겨보려고 했던 그날의 점심을 떠올리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혼자 할 수 있었다. 항상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서, 누군가의 말동무 속에서 , 누군가의 애정 어린 눈빛 속에서만 내가 빛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달라졌다. 나는 묶여있던 매듭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헝클어진 연의 줄이 풀려 훨훨 더 멀리 날라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때를 떠올리며 하노이 바딘이란 동네에 있는 일식 돈가스 집을 방문해 볼까 한다. 이번에도 나 혼자이다. 그랩택시를 타고 나는 혼자만 부릴 수 있는 수만 가지 여유 있는 눈빛을 장착할 것이고, 세상 가장 귀한 손님을 다루듯 가장 맛있는 점심 한 끼를 오늘 내게 대접할 테다. 그리고 오늘은 미리 찾아 두었던 조용한 카페에서 그때 아쉬웠던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올 테다. 여전히 다이어리를 끄적여가면서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그 순간에도 느끼고 오겠지. 오늘 밖에 날씨도 최고온도 31도인 것을 보아, 미루어 짐작건대 완벽한 바람과 햇볕이 예상된다. 어쩌면 비가 온들 어떠하랴. 비가 와서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목덜미에 달라붙은들 상관없다. 혼자 식사하는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아주 근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