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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Nov 08. 2023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6.

그분의 프사

작가님, 진짜 오랜만이에요. 느지막이 남들 다 걸렸던 코로나를 최근에서야 뒤늦게 걸려버려 한동안 골골거리다가 이제야 작가님께 연락을 합니다. 아직 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작가님께 자랑하고 싶은 사건이 있어서 서둘러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ㅎ

저 드디어 숲 해설가 7층 아저씨와 식사 한번 하기로 했어요. 그분 도움을 크게 받았거든요.

 

한 달 전쯤에 혼자 지내는데 서로 의지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아기 길고양이 한 마리를 모셔왔었거든요. 처음 키워보는 고양이라 애지중지 품 안에 안고 종종 거리며 병원 데려가려고 나왔는데.. 글쎄.. 주차장에서 녀석이 제 품에서 도망쳐버렸지 뭐예요. 그새 정이 많이 들어서 안절부절 울면서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때 숲해설가 7층 아저씨가 나타나셨어요.  

- 바깥에서 생활했던 고양이들은 자칫 잘못하면 툭하고 튀어나가 숲으로 도망치기도 해요.
- 이 일을 어쩔까요?
- 가까운 수풀에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 이름을 불러주며 엄마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 공고 같은 것도 좀 붙일까요?
- 그거도 좋은 방법이죠.


7층 숲해설가 아저씨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해가 질 때까지 같이 미미를 찾아다녀주셨어요. 하지만 그날은 고양이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다음날 공고를 만들어 붙이기로 했지요.

 

집에 돌아와 미미의 빈 쿠션을 보는 순간 뻥 뚫린 마음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J생각이 나긴 했지만 선뜻 연락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반응이 뻔할 테니까요. 저번에 멋진 7층 아저씨가 주차장에서 차를 밀어주셨다고 자랑했을 때도 전혀 감정의 동요 없이 "아 배 아파 죽겠어. 빨리 똥 때리러 가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J에 대한 실오라기 같은 의지 따위는 접어버리고 씩씩하게 공고문을 만들었습니다. 미미랑 찍은 사진 여러 장과 함께 잃어버린 장소. 시간. 미미의 특징 특징 같은 것들을 써서 그럴듯한 공고문을 만들어 프린트했습니다. 물론 오징어 다리 같은 연락처까지 줄줄이 만들어 누구든 뜯어갈 수 있게 칼질까지 해놓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아파트 초입에 있는 작은 다리 밑에 그걸 붙이고 있었죠.


- 연락처 이렇게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될 텐데요. 조심하십쇼


어느새 오셨는지 그분이 오셔서 벽에 붙은 공고문이 잘 붙어있길 바라듯 꼼꼼히 한 번 두 번 더 꾹꾹 눌러주셨어요. 그때서야 연락처 공개가 좀 찝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연락처로 게시할 만한 번호도 없었죠. J의 연락처?.... 저는 눈을 찔끔 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연락처로 할까요?
- 정말요? 그래도 될까요? 선생님 번거로우실 것 같은데.
- 아닙니다. 요즘 세상이 워낙 험해서요.


잠시 후 그분은 저가 만든 공고문보다 더 그럴듯한 공고문을 만들어 가지고 나오셨어요. 한눈에 봐도 시선을 확 끄는 문구와 색채와 구성이 마음에 아주 쏙 들었지요. 그분의 연락처가 적힌 오징어다리조차도요.

그리고 그날 공고문을 붙이고 같이 식사나 한번 하자고 제가 먼저 제의했어요.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물론 미미걱정이 산더미였지만요.ㅠㅠ


집에 와서 그분의 연락처가 담긴 공고문을 펼치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는데 문득 그분의 SNS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그분 연락처를 저장하고 그분의 프사를 확인했죠.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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