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No를 외칠 수 있나

1화: 거절

by 홍그리

혼자 살면 이 세상은 얼마나 외로울까. 반대로는 외로우면서도 얼마나 편할까. 하루 24시간을 혼자서만 보낸 적이 언제가 마지막인가를 돌이켜보면 그날을 손가락 열개로 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마음을 먹고 쉬는 날 하루를 그렇게 보낼 때 조금은 깨닫게 되는 것이, 하루 일상의 행복을 만드는 건 거의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바꿔 말하면 돈과 연관된 것이 생각보다 없다는 것. 아침의 따뜻한 커피 한잔, 조촐한 아침식사, 산책, 책 한 권, 좋아하는 영상 한편, 낮잠, 사우나, 명상, 달리기•••이마저도 집에서 커피를 타간다거나, 도시락을 만들어간다거나 하면 지출금액은 최소화된다. 물론 지출금액이 큰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맛집에 간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콘서트나 영화나 뮤지컬 같은 문화생활을 즐긴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본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게 과소비를 조장하고 장기적으로 삶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거시적으로 보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다만, 의도적으로 돈을 투자함으로써 느끼는 쾌락이 아닌 돈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의 행복을 찾아가는 일도 그에 상응하거나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자, 근데 문제는 뭐냐. 이런 날들은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이런 날들을 만들지 않는 이상 일 년에 몇 번 올까 말까. 주말에 쉬는 직장인들도 자녀가 있다면 육아에 전념해야 할 것이고, 가끔은 친구와 술도 한잔 할 거고, 연인이 있다면 데이트도 해야 할 거고, 같이 외식도 해야 할 거고,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쉬지도 못할 거고 브런치를 먹든, 드라이브를 하든 집 앞 마트를 가든, 주말의 시간을 채워갈 무언가를 ‘함께’ 해야만 한다. 일단 평일은 대부분 생계에 찌들겠지. 직장에 출근하든,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돈을 벌기 위한 활동에 매몰된다. 아니, 능동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매몰이라기보단 매진이 어울리겠다. 즉, 월화수목금 평일이 주는 획일화된 지루함을 깨트릴 어떤 소비로 인한 일탈을 모두가 원한다. 혼자 하면 심심하고 외로우니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늘이를 함께 하길 원한다.

지인들과의 약속에 나가본 사람들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재밌게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집에 혼자 돌아오는 길 느끼는 그 공허함을. 어쨌거나 외로움은 늘 수반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약속장소에 나가는 건 사무치는 그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기 위한 몸부림이라 하겠다. 그들 서로 니즈가 맞는거다.

그렇다면 사회적 동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되,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면서(경제적 자유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삶의 행복을 느끼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수단은 뭘까. 바로 거절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1. 친구가 새해맞이 여행을 가자고 한다.

> 매년 오는 새해, 의례적으로 친구와 추억을 쌓기 위해 갔던 새해맞이 여행을 굳이 계속 갈 필요가 있나? 친구도 한철이다. 가정이 생기고, 자녀가 생기고, 내 삶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서로 도움을 원할 때 연락하게 된다. 맞는 얘기다. 전혀 서운해할 것도 없다. 친구는 원래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관계다. 애써 ‘NO'라고 얘기한다.


2. 주말에 할 것도 없는데 와이프가 쇼핑을 가자고 한다.

> 드라이브, 쇼핑. 어쨌거나 남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말 그대로 ‘킬링타임’을 위해 외출한다. 그리고 전혀생각지도 않았던 조금 마음에 들어 보인다 싶은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를 구매한다. 3일만 지나면 내가 그 물건에 가졌던 애착이 정확히 반으로 줄어들고 일주일이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 일 년이 지나면 내가 그걸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도 헷갈린다. 어쨌거나 물건은 지금 내 삶에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니, 거절한다. 그리고 집에서 장을 봐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함께 미래 계획을 세우거나 나 자신 혹은 가정에 도움이 되는 더 생산적인 일에 몰두한다.


3. 스트레스 풀 겸 술 한잔, 혹은 회식

>술은 마실 수 있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맥주 한잔은 스트레스를 달래고 침묵 속에 사유를 가능케 한다. 돈도 2천 원이면 다 해결된다. 자, 그런데 친구랑 송년회답시고 신년회답시고, 심심해서, 습관적으로 하는 의미 없는 직장 내 회식 이런 건 개인의 삶에 전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심지어 다음날 지장을 주는 과음은 돈이며, 건강이며, 시간이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데 최악이다. 적당히 혹은 완곡한 거절을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건 내가 거절한다 해서 관계에 금이 가지 않고 그 술자리 분위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4. 각종 경조사 (결혼식, 장례식, 청모, 돌잔치•••)

최대한 안 받고 안주는 방식을 택한다. 아니면 마음만 전달한다. 참여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 경조사에 이미 왔던 이들에게만 똑같이 참여해서 예의를 지킨다. 특히 회사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요즘은 조부모상이나 돌잔치는 챙기지도 않는다. 어차피 다 돌려줘야 하는 돈이다. 청첩장모임은 주최자입장에서는 본인 결혼식에 하객이 많이 오면 무조건 좋기 때문에 친분이 두텁지 않더라도 같이 묻어서 초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서 밥 얻어먹으면 어쨌거나 결혼식에 참석이 원칙이고, 못 가더라도 최소 10이다. 관계에는 공짜가 없다. 모든 경조사 다 챙기면서 내 시간 지킨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말에 경조사 일일이 다 챙기며 다니다 보면 이미 주말 끝나있다. 관계를 최소화하면서 경조사 줄이는 연습을 하도록 한다. 단, 친분이 있는지인 부모 장례식만큼은 꼭 가도록 한다.


5. 채무관계: 나 얼마만 빌려줄 수 있어?

>가까운 지인일수록 돈을 빌려달라고 할 확률이 높다.

감당할 수 있는 소액이라면 큰 상관없으나, 일정 금액 이상을 본인에게 요구하는 건 은행이나 정상적인 금융기관에서도 대출이 어려운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왜 내가 빌려줘야 하는가? 빌려준다 해서 그 관계의 깊이가 증명되는 것이 절대 아니며 안 빌려준다해서 신의를 저버린다는 의미도 아니다. 빌려주는 순간 본인이 을이 되며, 그 관계가 설령 가족이든 친척이든 어쨌거나 골머리를 앓는 건 똑같다. 이것도 주지 말고 받지도 말기.


사람들과 부대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시간과 행복을 찾는 일.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거절일지 모른다. 우리 각자 본인은 거절에 얼마나 당당한가?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