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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노 Mar 06. 2022

투자금 735억을 끌어들인 세탁 서비스

To-Be가 궁금한 스타트업 3편: 런드리고 (의식주컴퍼니)

우리 집은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추구한다. 새하얀 벽에 단차도 없앴다. 보통 지저분해질 일 없이 깔끔하게 집을 유지하는데,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집 현관에 옷 가지들이 쌓여있다.


드라이클리닝 할 옷들을 마구잡이로 현관 쪽에다 두는 것이다. 와이셔츠, 바지, 울 니트. 그렇게 두다가 마침 집을 나설 때 20분 정도 여유가 있다면 까먹지 않고 세탁물을 맡길 수 있다. 세탁망을 따로 두기엔 현관 앞이라 걸리적거리고, 옷장에다가 두고 생각날 때 꺼내가기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20분의 여유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나에게 세탁소 영업시간에 맞춰 타이밍 좋게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 흔히 생기진 않는다. 이렇다 보니 하나만 맡기기엔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세탁물이 좀 더 쌓일 때까지 기다린다. 이렇게 구시대적으로 살아온 지 수 n 년이 지났으나, 코로나가 닥치면서 혁신적인 서비스에 눈을 뜨게 됐다.


런드리고 (의식주컴퍼니)

지난 2019년 3월 서비스 오픈. 이후 월평균 15%씩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탁업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런드리렛'이라는 미니 옷장처럼 생긴 캐비넷 안에 세탁물을 넣어두면, 런드리고가 수거하여 자체 팩토리에서 세탁 후 다음날 배송을 해주는 O2O 서비스이다. 세탁의 전 과정이 내재화되어있어 단순 '배송' 측면 간편함뿐 아니라, 세탁 자체의 퀄리티에 대한 신뢰를 보장한다. 지금은 Series C 단계에 있으며, 알토스벤처스, 삼성벤처투자 등 유수 벤처로부터 누적 735억 이상 유치했다.


누가? 이미 한 번의 Exit을 경험한 조성우 대표


대기업 홍보실을 박차고 나와 2011년 '덤앤더머스'라는 소셜커머스사를 창업했다. 창업하자마자 대박을 터뜨린 본투비 천재 사업가 케이스는 아니었으나, 더 무서운 '끈기 있는' 타입의 창업가였다. 여러 번의 피벗 끝에 샐러드 새벽배송 서비스를 출시하였고, 우아한형제들에 인수되며 Exit을 경험했다. 이후 배민프레시의 CEO로 지내다가 런드리고를 창업했다.


런드리고 창업 스토리는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졌으므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O에서 제작한 영상에 가장 쉽게 설명돼있는데,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렌터카가 털렸을 때, 다 털리고 세탁물만 안전했던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미국은 아파트 내 세탁기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코인 세탁방이나 층에 하나씩 있는 공용 세탁실을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카페에 물건을 놓고 다녀도 안전한 것처럼, 세탁물은 잘 건드리지 않는다.


세탁물만 남기고 간 도둑 스토리는, 매력적인 이야기인 만큼 잘 이해가 가진 않는다. 세탁물이 안전했단 것에서 영감이 떠올랐단 것, 그래서 미국 여행을 미국 세탁 문화 여행으로 빠르게 피벗했다는 건 (논리 jump 가 크고) 비범하다고 느껴진다. 창업 DNA란 게 정말 있는 건가....

(조성우 대표 @ EO - https://youtu.be/GeSR4hmYB1M)


왜? 4조 이상의 규모지만 99% 오프라인인 세탁 시장 혁신


O2O(offline to online) 서비스의 핵심은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어갈 때 어떠한 이유로든 오프라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시장의 빈 틈을 뚫어 생활 방식을 혁신하는 것에 있다. 지금은 O2O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지만, 예를 들어 신선식품의 경우 '콜드체인'이라는 한계로 인해 오프라인 시장이 주를 이뤘으나 '마켓컬리'의 선도로 디지털화에 성공했다. 이때 오프라인 형태에 대해 '명확한 불편함'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워낙 익숙한 모습이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경우가 많다.


세탁도 그렇다. '명확한 불편함'을 인지할 정도로 오프라인 세탁이 어렵진 않았다. 여기서 잘 만든 서비스란, 불편함을 인지하게 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런드리고의 경우, 대면 서비스로 한정돼있던 세탁/드라이클리닝을 비대면화하면서 코로나 시대와 발 맞게 성장했고 이때까지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세탁 경험을 극단적으로 편하게 해 준 케이스다.


어떻게? 세탁, 드라이클리닝, 수선물의 비대면 수거 및 한밤 배송

기존에 세탁으로 시작한 런드리고는 이제 수선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작년 6월, 미국 스마트팩토리 업체를 인수하면서 고객의 세탁물을 수거 및 세탁한 후 다시 각 고객에게 맞게 분류하는 기술력까지 탑재했다. 세탁의 전 과정을 내재화하면서 원가 구조의 한계를 뛰어넘고, 품질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런드리고의 앱을 보면, techy함이 전혀 없다. 무슨 말이냐면, 로고는 전형적인 MZ tech사가 사용하는 neon yellow인데, 웹/앱을 들어가 보면 따스한 파스텔 톤으로 앱이 구성돼있다. 수거 화면에는 "빨래 없는 생활 000일째"라는 문구와 감성적인 일러스트도 들어가 있다. 런드리고의 기술력은 머신러닝을 활용해서 자동 분류가 되는 수준까지 가있는데, 톤은 여전히 approachable한 따스함을 유지하고 있다.


런드리고 앱 화면 (감성적인 톤이 돋보인다)


근데 이게 앞으로도 될까?


런드리고는 '20년 8월 기준 월 2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했다. 월평균 15% 성장이라는 것을 여기다가 그대로 때려박으면 현재로선 대충 월 25만 명 정도...인데 아마 순 사용자수의 증가라기 보단 사용자의 평균 거래액이 증가하면서 15%를 기록했을 것이다. 서비스 자체가 기존의 생활/세탁 방식을 바꿔야 하는 만큼 진입 장벽은 높으나, 한 번 시작하면 세탁도 쓰고 드라이클리닝도 쓰고 수선도 하게 되어 평균 결제액이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내 TAM을 보면 직장인/1인 가구를 주로 타겟할 것이다. 학생에게도 주부에게도 유용한 서비스이지만 (1) 학생에겐 다소 비싼 가격 (세탁물 3kg에 8천 원이라 자체 세탁기 또는 무인 세탁방을 더 자주 쓸 것이다 - 드라이클리닝은 학생 때 별로 할 일이 없으니 어쩌다 한 번 하는 거, 수선집을 들리는 게 더 편할 거고) (2) 주부에겐 입소문을 타면 충분히 셀링 가능할 것 같지만 보통 들리는 세탁집/수선집 루틴이 고착화돼있고 (전업주부라면) 시간 상 여유가 충분한 만큼 진입 장벽이 보다 높을 것이다.


현재 1인 가구는 약 650만 가구가 있는데 세탁 서비스로 본다면:

650만 가구 x 직장인 비율 x 가정 내 세탁기 미설치 비율 (원룸 비율로 guess) x 온라인 세탁 서비스 침투율 (무인 세탁소 대비) x 런드리고 점유율

해서 한 80~90만? 메이비? 아무런 통계 없이 계산한 거라 큰 의미 없지만, 아직 런드리고가 성장할 시장은 충분히 남아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것 같다. 특히, 1인 가구는 지속 상승세이니 말이다.


런드리고에서 얘기하는 미래 성장 방향 중 하나는 단순 국내에서 서비스 형태 및 고객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닌, 해외 진출이다. 그중 미국 뉴욕과 일본을 언급했다.


미국 동부에서 약 2년 간 자취 경험이 있는 나로서 런드리고... 잘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샌프란시스코의 도둑이 조성우 대표의 차 안에 있는 세탁물은 훔쳐가지 않았으나 집 앞 세탁이 완료된 옷가지들은 충분히 훔쳐가고도 남았을 걸 감안한다면 수거/배송의 안전 문제는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지금 런드리렛 형태 그대로 가져간다면 아무리 자물쇠가 있어도 천 찢고 옷을 훔쳐갈 것이다)


'런드리렛'이라고 불리는 세탁물 수거함


미국에는 코인 세탁 또는 주거시설 내 공용 세탁방 문화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 '비대면화' 되어있다는 얘기다. 또, '코인' 세탁방인 만큼 가격이 아주 저렴하여, 비대면 세탁에 대한 기존의 가격 인식을 뚫고 올바른 pricing을 하는 게 관건일 것이다. 물론 시설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은 동일하기 때문에 런드리고가 침투할 room이 충분히 있다고 보는 것이고, 특히 뉴욕은 이웃 간 소통이 활발한 편이라 입소문으로 성장하기 적합한 구조로 생각된다. (집 밖에 런드리렛 같은 게 있으면 분명 마주치는 사람마다 이거 뭐냐고 할 거다.) 한국에서처럼 "빨래 없는 생활 000일째 등 '감성'이 통할지는 모르겠으나, 서비스 자체는 가능성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수선 등 서비스를 넓혀가고 고객을 지속 유치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진출까지 이뤄낸다면 런드리고의 향후 모습은 세탁계의 쿠팡 정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순 growth뿐 아니라, 재활용/친환경 등 지속 가능한 서비스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하는 만큼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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