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머무르자
예상치 못하게 비가 쏟아질 때가 있다.
우산도 없으니 어디론가 몸을 피해 그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목표지점은 저기고,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갈 자신도 마음도 있는데,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하염없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려야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음에 자책할 필요도, 당장 달려와 우산을 건네줄 누군가가 없음에 울적할 필요도, 비를 내리는 하늘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준 건물 또는 처마에 감사하며, 비 오는 풍경을 잠시 감상해보는 거다.
평소에는 바삐 다니느라 발견하지 못했던 예쁜 것들을 구경해보고, 주변에 같이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아니면 평소에는 절대 해볼 일 없는 양을 세보는 짓이나, 노래를 부르는 웃긴 짓들도 해보는거다.
인생이란 것이 언제나 내가 원하는대로, 계획한대로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것, 나의 완벽한 계획이 전혀 완벽하지도 좋지도 않을 수 있음을,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겸손함도 가져보자.
어쩌면, 비를 피하던 처마 밑에서 이제껏 찾아 헤매이던 인연을 만나게 될 수도
길을 지나던 지인이 차를 태워줘서 원래보다 훨씬 더 빨리 도착하게 될 수도
아니면 그동안 달려오느라 피가 나는지도 몰랐던 내 아픈 발가락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