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참 여러모로 마음이 가라앉는다.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내내 마음이 자기 방에 꽁꽁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주말을 너무 신나게 보내서 그런가, 아니면 매일 늦게 잠든 탓에 누적된 피로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여전히 마음 한 구석 해소되지 않은 편치 않은 감정이 오늘따라 유달리 튀어 오른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날엔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그 시간에 나는 속해 있지 않은 사람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기분이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비염.' 방문을 열고 거실에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한기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정신을 깨우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비염을 깨우는 듯하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재채기는 이러다가 복근이 생길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계속된다. 연신 재채기를 하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잠에서 깬다. 환절기에 이보다 더 확실한 알람이 있을까 싶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려 자리에 앉았다. 연말이 되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다. 밀려있는 팟캐스트 유튜브 영상 편집 및 업로드 작업부터, 개인 채널 영상 촬영, 그리고 어제 새로 노하우를 전수받은 유튜브 수익화에 대한 실험과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작업들까지. 더 부지런해져야 하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제거해도 모자란데 비염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하늘에서 터져 온갖 잡념들을 퍼부었고 피할 새도 없이 다 맞아 버렸다.
이런 날엔 일단 모든 것을 멈추는 게 답이다. 억지로 끌고 가려하면 저항만 거세질 뿐이다. 우선 피로감부터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30분 타이머를 맞추고 자리에 누웠는데 쉽사리 잠이 들지 않는다. 직전까지 커피를 마시고 있던 터라 더 그런 것 같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타이머에 5분이 남아있었다. 뭔가 꿈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은데 그게 꿈인지 아니면 내가 계속 깨어있는 건지도 헷갈릴 정도로 잔 듯 안 잔듯한 기분이었다.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머리를 감으며 따뜻한 물로 몸을 좀 이완시켰다. 몸이 이완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어느새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해야지 했던 것들은 다 뒤로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글이라도 써야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다.
하루가 저문다. 어떤 모습으로 살았어도 하루는 어김없이 저물고 그리고 다시 시작된다. 하염없이 흘려보낸 오늘 하루가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을지라도 내일도 동일하게 살아가리란 보장은 없다.
마침 집에 돌아온 아이가 놀아달라고 보챈다. 덕분에 마음에도 생기가도 돋는다. 오늘은 이렇게 흘러가도록 그냥 놓아주기로 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한 시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