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이 영감인 줄 알았다

by 알레

18번째 플리를 올리고, 2주가 증발했다.


최소 주 2회. 스스로 정한 업로드 주기였다. 한 번 흐름을 놓치니 2주가 지나도록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음원을 몇 개 생성하긴 했다. 하지만 "생성"과 "완성" 사이에는 꽤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강 이쪽에 서서 건너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터는 처참했다.


썸네일의 문제일까. 음악이 별로인 걸까. 제목이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 총체적 난국일까. 전에도 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같은 질문을 들고 같은 자리로 돌아온 기분. 유튜브는 버티기만 해도 앞서가는 거라는 말이 있는데, 겪어보니 "그저 버틴다"는 게 말처럼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삶의 패턴이 바뀐 것도 한몫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그 고요 속에서 작업하던 시간은 깊은 몰입과 즉흥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최근 새벽 기상으로 전환하면서 그 흐름이 송두리째 끊어져 버렸다. 밤의 고요를 잃은 대신, 아직 새벽의 고요는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어중간한 시간대에 서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철저한 기획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감정에 이끌려 시작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획이라는 레일 위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 그 전환이 필요했다.


19번째 플리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만약 우주에도 봄이 있다면?" 우주라는 콘셉트에 봄이라는 감성을 입힌 음악. 최근 영상은 신스 패드가 메인이 되는 사운드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키보드의 멜로딕한 사운드를 좀 더 가미해 보기로 했다. 피아노 연주곡에 치우치지 않도록 비율을 조절해 가며, 한 곡 한 곡 음원을 쌓아갔다.


작업을 시작하니 하나씩 더해보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15곡으로 구성된 트랙 리스트에 하나의 서사를 담아보고 싶었다. 썸네일도 그동안 유지해 오던 오렌지&틸 톤에서 핑크&블루 톤으로 바꿔 봄의 결을 입혔다.

하나씩. 하나씩.


기획을 따라가며 작업을 재개하니 어느덧 15곡이 완성되었다. 글로 보면 순조로워 보이겠지만, 사실 각 과정마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음원을 뽑아내는 데 한참 걸렸고, 마스터링 과정에서 몇 곡은 통째로 갈아엎어야 했다. 감정에 이끌려 방향을 잃어갈 때마다 기획이 나침반이 되어 다시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영상 편집뿐이다.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단계. 오늘 밤 업로드 예약을 걸 수 있을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미지수다.


새벽 기상을 시작한 뒤 독서와 글쓰기를 새 루틴으로 세웠지만, 아직 몸에 배지 않은 리듬 탓에 오후 콘텐츠 작업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플리 작업을 마무리하니, 잔잔하지만 분명한 성취감이 가슴 안쪽에서 올라왔다.


돌이켜 보면, 플리뿐 아니라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글쓰기조차도 감정에 이끌려 할 때가 많았다. 나는 그걸 영감이라 불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즉흥에 가까웠다. 순간을 포착하는 감각은 전보다 날카로워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획을 따라가는 근육은 여전히 초심자 수준이었다.


이번 경험이 이 짧은 글 하나로 나를 완전히 바꿔줄 거라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다. 19번째 플리의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기획을 따라가는 경험을 반복하며 데이터를 끌어올리는 과정 자체가 다음 단계로의 발판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기획이 곧 영감이다.


이 문장을 당당하게 외치기엔 아직 경험이 얕다는 걸 안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며 나 스스로에게 이 한 문장을 깊이 새겨본다.


다른 누구보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