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말자

by 알레

'아, 이제 정말 그만해야 하는 걸까?'


17번째 플레이리스트 업로드를 마친 뒤, 다른 때와는 다르게 짙은 피로감이 밀려왔다. 이걸 올리는 게 맞는 걸까 싶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럼에도 업로드 버튼을 누른 건, 완벽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리 작업해 둔 이미지와 제목 카피조차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다른 대안도 떠오르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붙잡고 있던 미련을 내려놓았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최소 1년을 바라보며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4분의 1 지점을 지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벌써 지속 가능성의 위기 앞에 선 건,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AI를 도구로 쓴다고 해도, 기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마주할 때마다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콘텐츠와 브랜딩에 관해 귀동냥한 세월이 5년이다. 정형화된 성장의 시간 같은 건 없다는 것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 결국 승자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낙담의 구간을 지나는 이 순간은,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를 몸으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내심 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상대적으로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으니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오판이었던 모양이다.


지인에게 진단을 요청했고, 덕분에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음악이 본질이긴 하지만, 플레이리스트 채널은 '귀'보다 '눈'이 먼저 반응하는 콘텐츠라는 것이었다. 내 콘텐츠를 선택하게 만들려면 먼저 시각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썸네일과 제목만 보고 '이거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라는 마음이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직 3개월밖에 안 된 채널이지만, 그 부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피드백이었다.


아는 것과 깨닫는 건 정말 다른 영역인 것 같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다. 알면서도 정작 내 콘텐츠를 작업할 땐 내 만족을 채우겠다는 고집이 앞섰다. 좋은 음악을 꾸준히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채널을 찾아오고 싶게 만드는 일관된 무드를 먼저 쌓아가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분명히 느낀다.


어젯밤엔 진심으로 그만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18번째 플리를 작업 중이다. 지나간 건 지나간 것이고, 이미 올린 콘텐츠에 대해선 알고리즘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는 것도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련을 버리고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3개월을 돌아보며 한 가지를 다짐했다. 앞으로는 너무 애쓰지 말자. 필요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방식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하나의 팁을 얻었다. 매번 새로운 음악을 만들지 말고, 기존의 곡들을 섞어보라는 것.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을 만큼 단순하고 실용적인 조언이었다.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무드를 소비하러 오는 것이다.'


플리 채널을 시작할 계획이 있거나, 나처럼 헤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한 문장만은 꼭 새겨두길 바란다. 다양한 음악을 담은 큐레이션 채널이 아니라, 특정 무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채널이 되도록 기획하는 것. 그리고 그 기획을 고수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것. 초반엔 이것만 잘 지켜내도 충분하다.


다음 작업부터는 나부터 이 원칙을 지켜보려 한다. 너무 애쓰지 않고, 가볍고 즐겁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져가는 계기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