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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Jan 29. 2024

슈퍼 리치 만나기

"미안하지만 이 블럭을 돌아 다음 길인 Bryant에 위치한 후문으로 다시 와 주시겠어요?"

오늘은 레슨을 처음 시작하는 날. 학생 엄마가 이메일로 알려준 주소지로 가서 벨을 누르니 어떤 남자분이 나와 이 블럭을 돌아 다음 길에 위치한 후문으로 다시 와달라고 한다. 미국은 주로 블럭 ( Block)이라는 단위로 집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블럭이라는 말 그대로 때로는 직사각형, 때로는 장방형의 땅에 돌려가며 집을 짓는다. 고급 주택 단지의 경우 한 면에 4-5 채정도 짓게 되는 것 같다. 이날 내가 간 곳은 팔로 알토( Palo Alto)라는 동네로 스티브 잡스가 살았던 동네이고 스탠퍼드 대학이 위치한 도시이다. 그러니 한 집당 평수가 어마어마한 고급 주택이 즐비하다. 레슨 시간이 빌 때 나는 가끔 동네 산책을 하는데, 오래된 동네 느낌이 물씬 나는 우거진 나무들과 잘 가꾼 앞 정원을 보며 걷노라면 문득 자연에 파묻힌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장미, 오렌지, 레몬은 물론이고 이름도 모르는 꽃들 덕에 산책보다 꽃에 맘을 빼앗길 때가 많다. 이곳을 올드 팔로 알토라 부른다.


그 남자분이 알려준 대로 다시 차에 올라타 ㄷ자 모양으로  한 블럭을 돌아 먼저 갔던 곳과 평행되는 곳으로 갔다. 한 블럭의 거의 한 면이 나지막한 나무 펜스로 쳐져 있다. 미국집들은 집 앞부분에 담장이나 펜스가 없이 거의 오픈되어 있는데 이 집은 펜스가 있다. 한 블럭을 거의 커버하고 있으니 꽤나 긴 펜스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한 블럭의 1/3은 족히 차지하는 집인 것 같다. 마크 저커버그처럼 주변의 집들을 다 소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펜스 안으로 집 건물은 보이지 않고 레드우드 숲이 보인다. 다행히 아까 그분( 경비하시는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펜스 중앙의 문을 열어 주었고 길 안내를 해준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이 길은 레드우드 나무 숲의 오솔길 같았다.  집을 향해 걷는 동안 길 가에 아무렇게나 자란 듯한 풀들과 꽃들이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풍경을 선사했다. 저 멀리에 굴곡 많은 스케이트 보드 코스로 보이는 구조물도 보인다. 조금 걸어가니 속이 환히 비치는 유리건물이 있다. 커다란 레드우드 나무 아래 위치해 있는 이 건물 안에는 빨강과 하양, 두대의 테슬라가 있다.  지금은 도로에 테슬라 반, 다른 차종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리콘 밸리에는 테슬라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테슬라가 귀한 때였다. 지나다니다 보면 어쩌다 한대, 가격도 한대당 십만 불을 호가했었고, 지금 SUV 모델은 나오기 전 세단형만 출시하던 때였기에 테슬라가 무척이나 특별해 보였다.


집 역시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는 장방형의 이층 건물이었는데, 재미있게도 현관옆에 이층에서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통 미끄럼틀이 있다. 환히 웃으며 나를 맞이한 사람은 키가 180이 살짝 넘을 것 같은 늘씬한 금발의 미녀였다. 곧이어 이 엄마옆에 수줍게 서있는 5살 꼬마를 보자마자 뜬금없이 심장에서 쿵~하는 느낌이 든다.  5살 남자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매력적으로 생겼지?  아이돌 비주얼이다. 그 미모는 이후로도 수년동안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아내와 아들을 만났다.


내가 만나본 래리는 말수가 적고 늘 웃고 있으며, 아주 모범적인 패밀리맨이다. 아들 셋을 키우는 평범한 아빠이기도 하다.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하게 되었을 때 래리가 세르게이를 멀리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함께 만나지도 말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었다. 그만큼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신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문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세르게이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래리가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정을 버린 세르게이에게 무척 실망했었던 모양이지만 결국 우정은 버리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 래리 페이지의 자녀들의 피아노 레슨은 둘째 아들이 5살이 되어 레슨에 합류하게 되고 4년이 조금 넘을 정도까지 계속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래리나 세르게이 둘 다 피아노보다는 전자 피아노 (키보드)를 훨씬 선호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부모님들이 상담을 해올 때 늘 피아노를 사시라고 권한다. 어느 정도 레벨이 되면 피아노의 액션과 손가락의 터치, 페달, 사운드 프로젝션 등 키보드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래리는 심지어 나와 상담도 없이 최고로 비싼 키보드를 떡하니 사서 방에 가져다 놓았으며, 키보드 말고 피아노를 사야 한다고 고집하는 나와 계속 맞서서 키보드의 좋은 점을 피력하던 세르게이는 결국 피아노 같은 전자 피아노를 샀다. 산 첫날 흥분된 모습으로 앱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자랑하던 세르게이. 엔지니어들은 역시 전자 제품에 열광하는 모양이다.


당시 막내아들이 갓 태어나 래리의 가족은 아들만 셋인데 2018년 돌연 외국으로 몇 개월 가게 되었다고 레슨을 잠시 멈추었다.  돌아와서 레슨 스케줄을 여러 번 조정했으나 불발되었다. 그도 그런 것이 이후에 이들은 뉴질랜드로 이주하여 뉴질랜드 시민권도 획득했다고 한다. 아마도 뉴질랜드 다녀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느라 시간이 안 맞았던 것 같다. 벌써 중학생이 되어있을 두 꼬마가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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