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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Jan 27. 2024

매력 덩어리 5살 꼬마들

 미국 엄마들도 극성인 걸까?  4살부터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많다. 언뜻 극성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알고 보면 엄마들이 잘 몰라서 묻는 것이다. 피아노를 배울 가장 적절한 나이를 모르니 4살부터 배울 수 있는지 문의를 한다. 특히나 똘똘한 4살짜리 아이들을 둔 경우에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나는 거절을 하는데, 그 이유는 6살부터 배우면 훨씬 능률적이기 때문이다. 4살부터 6살까지 2년 동안 배울 것을 6살에 시작하면  8-9개월이면 뗄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6살까지 기다릴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이 5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내 학생들의 대부분은 5살이나 5살 반에 피아노를 시작한다.


이 5살짜리 꼬마들은 매력 덩어리다. 꼬물거리는 손으로 피아노를 배워 제법 뚱땅거리는 것도 기특한데, 마음은  한없이 순수하고 여린 아기들이다. 게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전과 엉뚱한 매력까지 장착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이뻐하는 학생들의 나이는 아무래도 5실과 6살인 것 같다.


5살이던 래리 페이지의 큰 아들은 피아노를 시작하는 첫날 첫 레슨에서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 I can't read!"

뜬금없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피아노 방에 우리 둘 밖에 없는데 귓속말로 글을 못 읽는다는 고백을 하다니... 아이가 무안할까 봐 그냥 미소 지으며 "괜찮아. 글 몰라도 돼!"라고 했지만 이 눈처럼 새하얀 마음에 내 마음도 환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나는 한참이나 해맑게 웃었다. 사랑은 이런 엉뚱한 한마디에서도 모락거리며 피어오른다.


한 번은 5살짜리 베트남계 남자아이가 나에게 너무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했다.

"You look  too old!"

"Hmmmm... Really?"

뜬금없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이러면 기분이 좀 안 좋은데...

 "How old do you think I am?"

아이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한다.

"흠....."

몇 살이라고 하려나?

50, 60이라고 해도 놀라지 말자.

화내도 안된다.

아이들이 뭘 알겠어?

늬이가 나이를 알아?

마인드 컨트롤~~~


아이가 대답한다.

"16?"

황당한 대답에 나는 박장대소했다. 5살 꼬마의 조그만 머리로는 16살이면 무지무지하게 많은 숫자인 모양이다. 이런 꼬맹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지?



리사이틀에서 5살 꼬마가 연주를 막 끝냈다.  피아노 벤치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야 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리사이틀 한 달 전부터 시뮬레이션을 한다. 가족과 함께 앉아 있다가 피아노로 와서 뒤돌아 인사를 하고 등등 연주회 때 해야 할 등장부터 퇴장까지를 연습시킨다. 무대 매너와 상식도  연주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 레슨마다 두세 번씩 연습시킨다. 그래도 실전에선 아이들이 인사를 빼먹기 일쑤다. 연주회 의상의 정석인 하얀 셔츠에 까만 바지를 차려입고 등장한 이 꼬마는 연주가 끝났는데도 의자에 그대로 앉아있다. 내려와야 하는데...  조급해지려는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발을 앞뒤로 리드미컬하게 흔들며 피아노 벤치에 그대로 앉아 있다. 멋쩍은 모양인지 살짝 수줍게 웃으며 관중들도 힐끗 한번 보고, 나도 한번 쳐다본다. 아우~ 너무 귀엽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계속 두고 보고 싶을 정도다. 아마도 쑥스러워서 못 내려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가가 안아서 내려 주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엉뚱 귀염뽀짝 모습이었다.


5살 꼬맹이들은 별과 하트 그리는 법에 목숨을 걸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조잘조잘 다 이야기한다.

저기 어디 바닷가에 비치하우스가 있고, 스키 타러 가는 레이크 타호에도 집에 또 한 채 있으며, 엄마는 지금 서핑 여행을 갔고, 주말에 바누아투로 여행을 떠날 거라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중이다. 생각을 말로 하는 이런 조잘댐은 어쩌면 5살의 특성이기도 한 모양이다. 6살이 되면서는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생기는 바람에 더 이상의 조잘댐은 없어지니 말이다.


4살도 6살도 아닌 5살 꼬맹이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매력 덩어리들이다. 마음은 더없이 아기아기 하지만 뭔가를 분별하기 시작하고 모든 정보가 머리에 입력되는 나이. 그 마음과 머리사이에 버퍼링이 생겨 버려서, 생각이 범벅이 되어 가끔씩 엉뚱하고 황당한 일을 벌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은 또 없다. 피아노를 잘 치던 못 치던 , 나는 이 아이들을 사랑한다. 어떤 아이이든 그 아이는 한 개체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사랑받기 충분한 매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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