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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Feb 23. 2024

마르코의 장례식을 다녀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방법

어제 마르코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마르코가 누워있을 하얀 관이 유대교 사원의 중앙에 자리해 있었다. 관을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 믿어지지 않는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애를 썼다. 그 장난꾸러기 수학 천재 소년 마르코가, 사랑을 그토록 잘 표현하던 풍부한 감성을 가졌던 마르코가 죽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조문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르코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와의 이별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미국의 장례문화는 한국의 그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나도 많이 가 보지는 못했지만 예전 교회 지인분들이나 남편의 친척, 지인들의 죽음을 겪으며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장례식을 겪어 보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국의 장례 문화는 정석이 없다는 거다. 그저 가족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치른다. 우리는 시어머님이 2019년에 돌아가셨는데 화장을 한 후 아직껏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있다. 시어머님과 아버님의 유해는 그분들이 사시던 오렌지 카운티 집에 아직 그대로 있다. 나는 내가 죽어도 우리 남편이 장례식도 치르지 않을까 봐 살짝 걱정이 될 지경이다. 우리 시댁의 장례문화는 이렇다.


남편 스티븐의 친구들과 친구 부모님, 외숙모, 이모할머니등, 내가 가본 장례식은 대부분 비슷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소식을 친지나 지인에게 곧바로 알리기도 하지만 또 모든 장례절차 스케줄을 의논한 후 언제 장례식을 어디에서 한다라는 고지를 해주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처럼 3일장 5일장이 아니라 장례식을 일주일 후, 한 달 후, 3달 후... 가족들의 마음의 준비가 될 때 한다.  어떨 때는 사망소식만 전한 후 장례일은 몇 주 후 몇 달 후에 알려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내가 가본 장례식중 한 두 사람은 다른 절차 없이 영화에서 보듯, 무덤가에 모여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하얀 장갑을 낀 후 관을 무덤에 묻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고 나서 한 레스토랑으로 조문객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했다. 남편의 이모 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절차는 주로 간단한 설교, 가족 친지의 스피치로 이루어진다. 스피치는 그분의 일생을 추모하는 의미로 '고인은 이러이러한 분이었다'라는 취지의 여러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시간이다. 이모 할머님은 생전에 많은 사랑을 받으셨는지 자녀들이 사랑을 담은 화환과 꽃바구니를 정성껏 준비해 강단 앞에 가져다 두었다. 예배가 끝난 후 모두 할머님의 집으로 초대되어 갔고 그곳에서 간단한 식사와 간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만난 먼 친척들과 회포를 푸는 모습이었다.


남편의 친구 와이프인 로즈메리가 죽었을 때는 죽은 지 두 달 후 '그녀의 인생을 축하하는 파티'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서는 매우 자주 "Celebration of Life"라는 표현을 쓴다. 그 사람이 살았던 인생을 축하 기념한다는 의미이다. 장례식이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로 표현되다니... 처음 이 표현을 보았을 때 나는 미국인들의 이런 마인드가 너무 놀라웠다. 표현은 이래도 대부분 장례식이다. 그런데 로즈메리의 남편인 릭은 정말 파티를 준비했다. 와이프가 죽으면 화장실에서 웃는다는 의미의 파티는 아니지만 진짜 파티였다. 유명한 레스토랑의 커다란 홀에서 음악이 흐르고 어두컴컴한 실내에 조명이 있고, 웨이터들이 바쁘게 다니며 오되르브와 와인, 샴페인을 제공하는 파티였다. 그 와중에 릭은 아내를 추모하는 스피치를 했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발디디기도 힘들 정도였고 북적북적 파티에 고인을 기리는 분위기가 아니라 나는 좀 불편했다.


남편의 다른 친구인 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화장을 하고 장례를 치른 후 몇 달에 걸쳐 아버님을 화장한 재를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곳에 조금씩 뿌렸다고 한다. 아버님이 자주 가시던 카지노 바에서 재를 맥주에 살살 뿌려서 마시기도 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바닥 카펫 모퉁이에, 나와서 간판이 있는 곳 중간에도 조금 뿌렸다고 한다. 또 아버지의 캐빈에 가서 아버지가 사냥때 사용하시던 화살 끝에 재가 든 지퍼백을 매달아 시냇물로 쏘아 드렸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아버지를 화장한 재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들렸는데 , 이야기를 하는 빌은 아버지가 그걸 매우 기뻐하셨을 거라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미국의 장례식중 어제는 유대교 형식으로 치러지는 곳에 다녀온 것이다. 일단 유대교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일일이 고인과 어떤 관계인지를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물었다. 작은 쇠문을 통과해 성전건물까지 가는 길에 검은 정장을 한 덩치 좋은 경호원들이 20명은 있었다. 물론 유명인사의 가족이니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니 길가에 주차하는 걸 도와주는 경찰도 보였었다. 미국에선 조금만 사람들이 모여도 경찰이 와서 질서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오는 길을 내비에서 검색할 때 빨간 선으로 체증이 나타날 만큼 차가 많이 왔으니 경찰이 와서 지켜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본당앞에서는 사람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있었다. 미국에선 장례식에 조의금을 내거나 받지 않는다. 늘 카드를 써서 가져다 주는데, 이곳은 카드도 받지 않고 그냥 방명록만 있었을 뿐이다. 이 방명록은 후에 가족들이  누가 왔었는지 확인도하고 감사카드를 보내는데 사용되어 질 것이다.


이 사원은 일반 교회처럼 앞에 강단이 있는 형태가 아니라 중앙에 원탁이 있고 그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족히 600명도 넘게 와 있었는데 실리콘밸리의 민족 구성 (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시안 70% 정도 되는 것 같다)과는 달리 모두 백인들이다. 아시안은 10명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 많은 백인들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내가 아는 사람들은 수잔의 가족들과 내니들, 그리고 구글 창업자 래리와 세르게이였는데, 아이들을 키워준 가족과 다름없는 내니들에게 가족 뒷줄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내니는 말하자면 보모같은 역할인데, 엄마대신 아이들을 돌보고 책임져 주는 일을 한다) 래리, 세르게이, 분명히 구글 CEO 선다 핏차이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이들은 모두 어디 구석에 서있거나 운이 좋으면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래리는 내가 서있던 곳에서 대각선이 건물 맨 끝 구석에 마스크를 쓰고 서있었고, 세르게이는 본건물에 들어오지 않고 열린 유리문 뒤 본당밖에 서 있었다. 가족같은 내니들에게는 지정석을 내주면서 사회 저명인사들은 어디서 뭘하던 상관자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이 특권의식 없는 문화가 난 참 좋다.


장례식은 간단한 랍비 (미국에서는 라바이, Rabbi,라고 한다)의 설교가 끝난 후 가족들의 스피치가 시작되었다. 큰 아들인 아리가 마르코의 생전에 자기와 있었던 일, 마르코가 어떤 아이였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얼마나 마르코를 사랑하는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맺는 스피치였다. 이어서 누나와 여동생들, 9살짜리 렉시까지, 그리고 이모, 고모들, 베스트 프렌드, 그리고 아빠와 엄마.... 마지막으로 스피치를 했던 수잔은 자신이 너무 힘이 들지만 이 스피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시작하며 이렇게 와 주신 조문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말을 시작했다. 모든 이들의 스피치가 때론 유머스럽고 슬프고 해서 청중들은 울고 웃고를 반복했지만 나는 수잔의 스피치를 잊을 수가 없다.


와주신 조문객들에게 감사하면서 이 자리에 마르코가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며 울먹이던 엄마, 수잔. 이렇게 사랑받고 많은 사람들이 케어한다는 걸 마르코가 이 자리에 있어서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나는 그 말이 귀에 눈에 생생하고 가슴이 무너질 만큼 아프다. 수잔은 이 장례식이 끝이 아니라며 자신들은 여러분의 위로와 힘이 너무나 필요하다며 계속 붙잡아달라고 울면서 호소하기도 했다. 특별히 엄마를 사랑했던 마르코는 그 바쁜 엄마에게 매일 전화해서 엄마가 잘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사랑한다고 했다고 한다. 수잔의 남편 데니스도 마르코가 너무 엄마를 좋아해서 수잔이 많이 힘들 거라고 자신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서 수잔을 걱정했다. 가족들의 스피치 후에 이제 4명이 된 자녀들이 모여서 평소 마르코가 엘로우를 넬로우라고 장난치며 불렀던 노래, 엘로우를 불렀다. 아리가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고 3명의 자매들이 주변에 모여 앉아 함께 부르는 그 노래가 너무나도 슬퍼서 모든 사람들이 울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10대 20대의 사망의 가장 큰 요인이 이 약물복용이다. 대마는 이미 허용돼서 널리 퍼져있지만, 값이 싼 펜타닐, 옥시코돈, 또 케타민등이 대학생들 사이에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남편 친구의 아들이 최근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왔는데 그곳도 케타민, 코카인.등 약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요새는 아예 학교에서 날칸 (Narcan)이라는 해독약을 학생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게다가 마르코가 다닌 버클리 대학은 더 개방적인 학교로 유명하다. 70년대 히피문화도 흡수했지만 십여 년 전 내가 버클리 대학 야외 경기장에서 하는 콘서트에 갔을 때 어떤 한 사람이 대마초를 피우더니 그 걸 옆사람 옆사람으로 돌려 피우게 하는 것을 봤다. 결국 나한테까지 왔는데, 나야 뭐 그런 것에 관심도 호기심도 없으니 패스 했지만 그런 문화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런 학교에 갔으니 당연히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이게 나의 생각인데 아직 정확한 경위는  발표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경각심을 일으켜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마르코의 사인이 약물 과다복용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다시는 이런 불행이 어느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마르코의 가족에게 위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찍은 사진이 없어 퍼온 사진. 자리가 부족해 벽을 빙 둘러 조문객들이 서서 지켜봤다. 징례식에서 그 어느 누구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문이 유리문이라 유리문을 열고 마당에 의자를 놓아 조문객들이 야외에서도  듣고 보는데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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