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실내 공기, 저녁이 되자 유분기 사라진 피부는 종이처럼 얇아져 찢어질 듯 따갑다. 피로는 내 얼굴의 수분도 모자라 진피층 단백질까지 미세침을 꽂고 빨아들이는 것 같다. 마스크를 벗어 내내 가려져 있던 볼을 손등으로 누르고 문질러 감촉을 확인한다. 익숙하게 책상 서랍 안 주먹만 한 수분크림을 꺼내 볼, 눈가, 이마에 듬뿍 바르며 응급처치를 한다. 기지개를 켜다 모레가 월급날임을 알고 앱을 열어 이번 달 야근 일수를 체크한다. 아, 오늘 날짜도 추가해야지. 미련이 끈끈이처럼 남아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퇴근 시간을 이미 넘겼지만 더 늦어지면 안 된다. 평소 도착역에서 한 역 미리 내려 1번 출구로 빠져나온다. 상권이 형성된 먹자골목이라지만 평일 저녁의 활력과 소란은 처음 보는 듯 낯설다. 목적지는 영화관이 있는 건물 1층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음에도 자꾸만 두리번거리며 21시의 불빛과 밀집도에 신기해한다.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도 아니고 웜톤일까 쿨톤일까,,,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겠다는 열망에 밤 9시 색으로 가득한 곳에 들어선다. 진단 천(드레이프)과 컬러 보틀을 제외하면 어떤 방해 요소 없이 나의 색을 찾기 위해 사방은 온통 흰색이다. 반사판처럼 하얀 테이블에 앉아 평소 선호하는 색과 스타일에 대한 간단한 설문을 작성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피부톤과 컬러 진단을 해볼까요?” 골반 균형을 맞추는 듯 엉덩이를 들썩들썩 허리를 곧게 편다. ‘네네 선생님~’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자세를 정돈하고 내 앞에 바싹 다가온 거울과 이동식 조명에 살짝 긴장한다. 눈코입이 들어차 있는 얼굴에만 온전히 빛과 시선이 집중된다. ‘비대칭이 이 정도였어? 오른쪽 얼굴 처짐이 확실히 심하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이 가깝게 마주한 내 얼굴은 내가 아닌 듯 어색하다. 피부톤에 이어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색상별 명도와 채도를 달리한 천들이 다음 순서이다. 어깨에 수십 장의 진단 천을 얹으며 봄-여름-가을-겨울 계절 이미지를 확인하고 라이트 브라이트 비비드,,, 세분화하여 나의 컬러를 찾는다. 돋보이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솔직히 인정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는데 2시간은 짧기만 하다.
어색함도 민망함도 잊고 ‘어머 정말요!’ 실없이 가벼운 감탄사가 자꾸만 튀어나온다. 퍼스널 컬러 결과지를 업데이트한 자기소개서인 듯 소중히 집어 든다. 나는 웜톤에 조금 더 가까운 뉴트럴톤이다. 봄라이트, 여름라이트 계열 순으로 베스트 컬러이다. 고채도의 쨍한 원색, 탁하고 딥한 저명도의 색을 가까이 대면 팔자 주름, 눈 밑 다크서클, 푹 꺼진 볼이 선명해진다. 나를 돋보이게 만드는 컬러 찾기의 기준이 팔자 주름과 꺼진 볼의 도드라짐이라니,,, 씁쓸한 헛웃음도 짓는다. “본인에게 맞는 컬러와 스타일을 제대로 알고 계시네요!” 컬러는 코랄 핑크, 여름의 여성스러운 스타일이 베스트라는 진단 결과가 반갑다. 자연스레 끌려 선택하고 선호했던 것들이 내게 어울리는 요소였음에 안도한다. 잠들기 전, 노트북을 끌어안고 침대에 올라가 즐겨찾기 해둔 쇼핑몰에 로그인한다. 오늘 웜톤으로 ‘판명 난’ 나는 로즈골드 색상의 귀걸이를 구매한다. 실버 액세서리가 대부분이라 이젠 골드가 필요하다. 거울 속 꺼진 눈 밑과 패인 볼이 자꾸만 떠올라 어제 고민하다 미뤄둔 콜라겐 필오프팩까지 주문하고 노트북을 닫는다.
‘이번만큼은 꼭!’ 퍼스널 컬러 진단을 강렬히 원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나를 명확히 정의 내리기 위한 기준을 찾고 싶었다. 자기 모습을 착각하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확신의 시간이 필요했다. ‘상’이라 찍힌 꽃모양 칭찬도장을 잃어버릴까 필통 깊숙히 넣어 왔던 초등학생 나를 떠올린다. 한 장 한 장 붙여 꽉 채운 포도송이였나? 나무였나? 앞으로 완성시켜 나갈 그림에는 봄라이트 은은한 빛이 발할 것이다.
August 2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