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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속도에 편승해서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야간열차, 속도에 편승해서


어둠이 빗살무늬처럼 유리창에 달라붙어

블랙홀처럼 입구를 벌리고 있는 야간열차에는

몸보다 먼저 마음이 올라탄다.

한참을 달리다 차창에 부딪치는 비라도 만난다면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젊은 날의 낭만이

부슬부슬하게 깨어나도 함부로 이상할 일이 아니다.

뇌 속의 회로가 고속의 속도에 맞추어

진행방향과는 거꾸로 과거를 향해 역행해 들어간다.

한 번이라도 사랑했을 이들과 그 순간들을 기억해 내려

속력을 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추억의 열병에 걸려도 좋겠다는

마음이 동하면 가끔은 일부러 밤열차를 탄다.

빗방울이 부서져 파편을 남기는 창밖의 어둠에 동화되며

살아갈 날로 가기 전에 잠시 예전에 멈춰보고 싶기도 해서다.

최고속력에 익숙한 고속열차처럼

지금은 회상할 시간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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