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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깨물고 울었다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입술을 깨물고 울었다


서둘 것도 없는데 허겁지겁하는 입이 방정맞다.

매사에 느린 대우를 해주겠다는 다짐은 말뿐이었나 보다.

생각도 천천히, 말도 또박또박, 마음은 따박따박.

하물며 먹을 것을 대하는 태도는

최대한의 슬로우라야 탈이 나지 않는다.

오물오물 음식을 씹다가 속도조절에 실패해

속볼살을 깨물고 말았다.

아픈 것은 뒤로 미루고 입안이 찝찌르하다.

혀끝으로 더듬어보니 살집이 너덜거린다.

먹고사는 일이 이토록 피 터질 일인가.

조심한다고 살살 구슬려 위아래 턱을 움직이는 저작운동일지라도

한순간 엇갈리면 혀를 깨물기도 하고 입속에 상처를 낸다.

맛난 반찬에 입맛이 돌다가 숟가락을 떨구고 만다.

눈이 현혹되고 향기에 미혹이 될지라도

입을 통과시키고 소화가 될 때까지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

다되었다는 방심이 마지막까지 이르러야 하는

안심을 헤칠 것이란 경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준비된 성찬이 여전히 남아있는 저녁밥상머리에서

수저를 내려놓은 채 바보같이 입술을 깨물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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