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19
20살 여름 즈음 떠오른 생각이었어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즐거움을 소비하고 있는데, 문득 내 돈이 아닌 받은 돈. 그러니까, 용돈으로 즐거움을 소비하며 웃고 있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어요. 내 돈이 아닌 돈으로 웃음을 짓고 있자니 내 분수에 맞지 않는 행복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창피하고, 모든 게 거짓인 것처럼 느껴진 거죠. 눈앞의 모든 게 노력 없이 얻고 있는 것들이었고, 실지로 노력 없이도 쉽게 이뤄지고 있었어요. 사실 당장의 작은 것들에 이렇게 거대한 의미들을 부여할 필요는 없었지만, 저는 습관이 생각이 되고, 생각이 태도가 된다 생각해 이게 무섭게 느껴졌죠. 쉽게 말해 불안하긴 하지만, 노력 없이도 앞으로 뭔가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았던 거예요. 그래서 일찌감치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안전장치들을 풀고서 혼자서 서있어보려 했습니다
이게 제 생각의 분수였어요.
혹자는 분명 같은 상황에서도 애초에 안전장치들의 유통기한을 알고서 때를 구분하여 안전장치를 즐길 줄 아는 생각의 분수를 가져 이미 이 생각 너머에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제 생각의 분수가 저 정도였기에 저는 제 생각의 분수에 맞는 선택을 했습니다. 제게 분수에 맞지 않는 행복은 이상한 자만심과 가진 적도 없는 것에 대한 집착과 시기, 실망 그리고 필요도 없는 욕심을 불러일으켰으니까요.
그렇게 학교를 다니던 6년간 단 한 달 하루도 일을 안한 적이 없었습니다. 노력해서 행복을 얻으려고요.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매번 뛰쳐나가기 바빴죠.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아마 남들이 보기에는 학교에 원수라도 있나 싶었을 겁니다. 물론 저도 남들처럼 학교가 끝나면 밤을 새우며 같이 과제를 하고, 술을 마시며 추억을 소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면 안 됐죠. 남들은 되더라도 적어도 저는.
사실 이게 저에게 있어 ‘졸업’이라는 단어에서 추억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개탄스럽지는 않아요. 저는 이 한 가지를 통해서 다른 수많은 것들을 얻었거든요. 어쩌다 보니 이 선택으로 인해 덕분에 보다 큰 세상을 먼저 경험했고, 또래보다는 한참 위 또는 한참 아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단어를 보다 길쭉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일찍이 ‘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과를 나왔지만 사실 저는 대학을 다니며 ‘나’를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정도면 꽤 잘 배운 것 같아, 이젠 다정하게 이 단어로부터 뒤돌 수 있을 것 같네요. 잘 있으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