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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우진 May 17. 2021

[Blah Blah]
졸업 3

2021. 01. 19

혹시 ‘졸업, The Graduate’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아신다면 이 엔딩 장면은 무조건 아시겠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을 위해 106분을 보는 영화니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한 컷은 그 어떤 사전보다도 더 ‘졸업’이라는 단어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요즘 이 장면 속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의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21살 즈음 이 장면을 볼 때에 그의 표정은 저에게 많은 궁금증과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상한 기대감을 안겨줘 두근댔었는데, 지금은 그저 동질감만 느껴지는 게 딱히 두근대지는 않고 그저 그와 한탄스러운 이야기나 한 번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 드네요.

물론 제가 그처럼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해서 동질감을 느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졸업’이라는 단어로서 그의 표정을 바라보고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죠. 아, 지금도 잠시 똑같은 표정을 지었네요.

음, 제가 요즘 그와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현재 졸업과 동시에 창업을 준비하고 있어서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졸업과 동시에 가 아니겠네요 친구와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19년 여름부터였으니까요.

학교를 다니며 창업을 은밀하게 꿈꾸고 있었던 그때는 참 모든 게 설레고, 기대되고, 즐거웠습니다. 좋은 기회 덕에 얻은 작은 집을 셀프 인테리어를 해 작업실로 쓰려고 둘이서 시공을 할 때에도요.

사실 사무실이 생기면 앞으로는 말 그대로 하면, 되겠더라고요.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매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공사만 끝나면..”, “공사만 끝나면..”이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공사를 거의 다 해낸 지금 다음 주부터는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저희에게는 그때의 기대감에 들뜬 표정은 어디 가고, 딱 영화 ‘졸업’의 엔딩 장면 속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의 표정만을 짓고 있습니다. 이게 진짜 졸업이라는 감정이겠죠. 두려움인지, 막막함인지, 기대감인지, 위축된 건지는 모르겠고, 그냥 ‘졸업’이라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 이 표정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또다시 입학을 해내고, 또다시 졸업을 위해 정신없이 무언가를 동경할 테니까요. 저는 이제 잘 저질렀으니 이젠 수습할 차례입니다. 저질렀으니 입학한 거고 수습이 될 때쯤 또다시 졸업하겠죠. 그때는 지금의 졸업이 아무 일도 아니겠죠. 뭐, 어떻게든 되겠죠. 불안을 동력 삼았으니까요.

음.. 뭐.. 일단.. 네, 일단 졸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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