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19
혹시 ‘졸업, The Graduate’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아신다면 이 엔딩 장면은 무조건 아시겠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을 위해 106분을 보는 영화니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한 컷은 그 어떤 사전보다도 더 ‘졸업’이라는 단어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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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요즘 이 장면 속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의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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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즈음 이 장면을 볼 때에 그의 표정은 저에게 많은 궁금증과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상한 기대감을 안겨줘 두근댔었는데, 지금은 그저 동질감만 느껴지는 게 딱히 두근대지는 않고 그저 그와 한탄스러운 이야기나 한 번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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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가 그처럼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해서 동질감을 느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졸업’이라는 단어로서 그의 표정을 바라보고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죠. 아, 지금도 잠시 똑같은 표정을 지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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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가 요즘 그와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현재 졸업과 동시에 창업을 준비하고 있어서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졸업과 동시에 가 아니겠네요 친구와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19년 여름부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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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며 창업을 은밀하게 꿈꾸고 있었던 그때는 참 모든 게 설레고, 기대되고, 즐거웠습니다. 좋은 기회 덕에 얻은 작은 집을 셀프 인테리어를 해 작업실로 쓰려고 둘이서 시공을 할 때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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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무실이 생기면 앞으로는 말 그대로 하면, 되겠더라고요.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매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공사만 끝나면..”, “공사만 끝나면..”이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공사를 거의 다 해낸 지금 다음 주부터는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저희에게는 그때의 기대감에 들뜬 표정은 어디 가고, 딱 영화 ‘졸업’의 엔딩 장면 속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의 표정만을 짓고 있습니다. 이게 진짜 졸업이라는 감정이겠죠. 두려움인지, 막막함인지, 기대감인지, 위축된 건지는 모르겠고, 그냥 ‘졸업’이라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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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마 이 표정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또다시 입학을 해내고, 또다시 졸업을 위해 정신없이 무언가를 동경할 테니까요. 저는 이제 잘 저질렀으니 이젠 수습할 차례입니다. 저질렀으니 입학한 거고 수습이 될 때쯤 또다시 졸업하겠죠. 그때는 지금의 졸업이 아무 일도 아니겠죠. 뭐, 어떻게든 되겠죠. 불안을 동력 삼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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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 일단.. 네, 일단 졸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