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투어
남국의 저녁은 느리게, 아주 조심스럽게 저문다
바다의 끝자락에서 붉은 해가 미끄러지듯 떨어지고, 하늘은 그 빛을 품은 채 조금씩 어둠 속으로 물들어 갔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삶에 반딧불은 없었다. 여름밤이라 해도 빛나는 건 가로등과 휴대폰 불빛, 그리고 네온사인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반딧불 투어"라는 말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숙소에서부터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 외곽의 맹그로브 숲으로 향했다.
창밖 풍경은 점점 낯설어졌고, 아스팔트는 흙길로 바뀌었다.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습한 공기 속에는 이름 모를 나뭇잎들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도착한 선착장에는 기다란 나무 보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며 조용히 타라고 손짓했다.
강가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고,
보트가 출발하자, 숲은 우리를 강의 깊은 속살로 데려갔다.
숲의 침묵은 커지고 모터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나뭇잎 하나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우리는 모두 말없이 그 밤의 마법을 기다렸다.
가이드가 손전등 불빛을 천천히 비추자 어둠 속에서 작고 희미한 빛 하나가 나타났다.
반딧불들이 서서히 그 빛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빛들이 점점 눈이 어둠에 익자, 나무 위에서,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 빛을 모아 깜빡이고 있었던 것이다.
무심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풍경이었다.
빛의 점들이 리듬을 타듯 동시에 깜빡이며, 마치 나무 한 그루 전체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살짝 불어오자,
몇몇 반딧불이 날개를 펴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순간, 마치 별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우리의 보트 안으로 수십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들은 멀리서 바라볼 때보다 훨씬 작고 섬세했으며,
그 존재감은 오히려 더 크고 깊었다.
나는 조심스레 손바닥을 펴서 그들 중 한 마리를 받아들였다.
어쩌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허락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불빛이 꺼지지 않기를 바랐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그 빛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곧 날아올라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황금빛 반딧불(AI)-
황금빛으로 수놓는 반딧불들이
고요한 물 위에 반사되어 숲 전체가 은은하게 빛났다.
나무뿌리와 잎 사이로 별빛이 스며드는듯한
분위기라니!
중고등 시절 교회 수련회 때 평상에 누워 보던 밤하늘의 별들. 마치 손에 잡힐 듯 눈앞까지 내려앉아 광장의 햇살보다 더 눈부시던 별빛들이 생각났다. 그때의 기억 속 별들이 잔상으로 남아 반딧불에 겹쳐졌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이는 전구도 원래는 이 반딧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가이드의 말을 듣는 순간,
오래된 유리구슬처럼 빛나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반딧불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니!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 생명들은, 인공조명의 원형이자 인간이 빛을 모방하려 했던 첫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반딧불이 더 이상 단순한 곤충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꿈을 밝혀왔던 존재, 어둠을 두려워하던 인류에게 건네진 가장 아름다운 위로였다.
돌아오는 길에 보트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말없이 반딧불의 군무를 따라 웃고 있는 듯했다.
하늘의 별과 강의 별이 겹쳐진 그 밤은 내 생의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다.
이건 ‘기억’으로 오래 간직해야 할 순간이었다.
빛은 아무 말하지 않지만, 그 무언의 울림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그날 밤,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찰나의 마법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어둠 속의 빛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한 줄의 시처럼, 그날의 밤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 빛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ㅡ코타키나발루 선셋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