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가 살던 집

18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 하던 날.

by 안명심


내가 살던 집



모든 순간이 지층이 된 곳

벽지 위로 열여덟 번의 빛바램이 쌓이고

닳아버린 문고리는

내 손의 지문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한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장 높은 음계를 차지하던 악기였으나

떠날 때가 되자 그 음들은

이 집의 공명을 잃었다.

이제는 발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침묵의 무게를 재는 저울만 남았다

푸른 벼락같던 청춘은 아니었대도

내 삶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절

나는 이 집이라는 가마 안에서

스스로를 가장 붉고 투명하게 구워냈다

내 전성기는 이 창문을 통과한 햇빛의 총량이다

​이제 이 두꺼운 퇴적암을 떠난

추억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가장 선명한 화석 하나를

이곳에 남겨두고 나오는 것이다


열여덟 해의 밀도를 고스란히 품은 채로






▪️詩作 노트▪️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18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는 일은, 그저 주소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두꺼운 지층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곳은 나의 푸른 청춘은 아니었을지라도
내 삶의 가장 뜨거운 밀도로 타오르던 '전성기'의 무대였다. 아이들을 키우고, 그들의 웃음소리로 집안의 '공명'을 채우다가 결혼을 시키고 떠나보내기까지 그 모든 순간이 그 집의 벽지 위에, 닳아버린 문고리 위에 나이테처럼 겹쳐있다.
​이 시는 그 18년의 시간을 '퇴적암'으로
그 안에서 가장 치열했던 나를 가마 속 도자기로
그리고 그곳에 남겨진 나의 시간을
화석으로 은유했다.
​이사는 곧, 가장 빛나던 시절의 나를 그곳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나오는 일이다.
그 묵직한 밀도를, 이 시 한 편에 봉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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