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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심성유휘 Sep 02. 2024

내가 요즘 에세이를 읽지 않는 이유

작가를 꿈꾸면서도 나는 왜 요즘 에세이를 읽지 않을까


나는 글을 잘 쓴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일상글 말고 내가 각 잡고 쓴 편지글이나 리뷰글 등등에 한해서.


그래서 글 쓰는 것을 나름 즐기게 됐다. 보통은 글을 즐기며 쓴 다음 잘 쓰게 되지만 나의 경우는 선후관계가 뒤바뀌어 있다. 




사실 사람들이 내 글의 어떤 부분을 보고 잘 쓴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 사람이 글을 잘 쓴다'라는 생각이 별로 없기 때문일까. 유일하게 그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어령 교수님의 [폭포와 분수]를 읽었을 때이다. 그런데 방금 전 문장을 쓸 때, 내가 왜 '글을 잘 쓴다'라고 느낀 적이 별로 없는지 깨달았다. 




나는 에세이를 안 읽는다. 


에세이를 읽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글 실력을 평가할 기회가 없었다는 걸 방금 느꼈다. 

아이러니하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내가 쓰는 글은 굳이 나누자면 '에세이'에 속할 것일 테지만 남의 에세이를 읽기는 싫어한다. 요즘 나오는 에세이는 생각의 깊이가 너무 얕은 느낌일뿐더러 세상살이가  피곤해서 그런지 남의 생각을 알고 싶은 여유도 없다. (이런 나의 에세이도 얕은 생각을 담고 있을 것이다




나의 독서 입맛은 편식이 심한 편이다. 뻔한 것을 말하는 에세이나 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의 경우, 주인공의 인생과 서사, 인간관계들에 대한 정보를 글 속에서 수집하여 머릿속에서 재정비하는 과정이 너무나 귀찮다. 에세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표현할 수 있는 자기 생각들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읽기 싫다. 항상 인스타그램이나 뉴스로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글과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몇 백 명이 안될 것이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중에서 한국어로 출판되거나, 번역된 에세이를 펴내는 작가는 8명이나 될까?


나는 차라리 연구를 통해 얻은 새로운 지식을 쉽게 전달해 주는 과학 분야나, 현재 사회를 일반인이 생각할 수 없는 시각으로 분석하는 사회학과 철학책을 좋아한다. 또는 1-200여 년 전, 다시 말해서 현시대와 가까우면서도 SNS가 발달하지 않아서, 나라와 민족에 따라 인간 개개인의 정체성이 지금보다 훨씬 두드러졌던 시절에 쓰인 에세이를 좋아한다. 




100여 년 전 인간사회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으로 서구사회는 대부분 일찍이 산업화되었다. 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던 나라들은 여전히 농경문화를 지키고 있었으며, 산업혁명으로 강한 무기를 얻은 나라들이 20세기 초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그 나라들은 식민지가 되어 강제로 산업화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인간이 약 2만 년 전부터 지켜오던 농경문화에서  '거의 모든' 나라가 현대의 모습처럼 산업화된 것은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하다. 2만 년의 데이터가 겨우 수십 년 만에 다른 것으로 대체된 것이다. 




식민지가 된 나라들, 혹은 근대화에 늦은 나라들은 근간이 수십 년 동안 흔들리며 격동의 시대를 보냈다. 외부에서 밀려오는 새로운 바람의 냄새로 완전히 새로운 것의 존재는 알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시점. 수만 년 동안 쌓아온 그 나라만의 정체성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지만 새로운 바람에 의해 약간은 흐려졌을 그때. 새로운 바람에 휩쓸리는 근간을 붙잡은 화자의 몸, 그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 사회에서 쓰인 에세이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때의 에세이는 저자의 국적에 따라 뚜렷하게 구별된 특징이 나타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격동의 사회에서의 심오한 고찰이 드러난다.    


무릇 영웅과 천재, 그리고 좋은 글은 사회가 혼란할 때 출현하는 법. 


인간의 역사에서 유래 없이 평화롭고 잘 먹고 잘 사는 21세기에서는 할 수 없는 심오한 고찰이 1-200년 전 에세이에는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너무 먼 과거가 아니기에 충분한 공감도 얻어낸다. 




이토록 까다로운 독서 입맛을 가진 내가 유일하게 읽었던 에세이는 루쉰의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이다. 루쉰의 에세이는 사회 계몽을 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자신의 생각보다 사회계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읽고 나면 루쉰 개인의 생각이 머리에 남기보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루쉰 수필집의 후기는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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