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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심성유휘 Sep 24. 2024

더 이상 글을 읽지 않는 세상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은 재밌다. 예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다만 보통 사람들은 글을 즐기기 때문에 잘 쓰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 반대로,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받으니 쓰는 것이 재밌어졌다. 글 쓰는 것을 즐기기 전에는 이것에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글'에 대한 생각과, 글을 구성하는 '언어'에 대한 생각이 일상에서 문득문득 솟아오른다. 


여러 가지 생각들 중 하나는 "도대체 '무엇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가"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전시회관람을 좋아한다. 교향곡을 즐길 수 있고, 전시디자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다. 취미가 많기에 글감을 쭉쭉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전문가가 아니기에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관해 쓰기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글 "쓰기"를 얼른 하고 싶은데 무엇에 관해 써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나의 여러 취미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며 글감을 속아내고 있을 무렵 어떤 생각이 나를 강타했다. 


'내가 이렇게 정성을 들여 글을 쓴다 한들 누군가 읽을까?'


서점에서는 가벼운 소설과 심각한 얘기가 아닌 에세이가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고 있고 웹소설도 문장을 점차 짧게 만드는 추세다. 사람들이 아무리 짧은 글만 선호한다고 해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나마 '글'을 읽는 사람은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할 것이다. 

2023년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60%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글에서 영상으로, 러닝타임이 긴 영상보단 숏츠와 릴스로 넘어가고 있다. 


글을 읽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문제라면 영어로 글을 쓴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영어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영어 리포트는 쓸 수 있을지라도 '글'은 쓸 수 없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일은 그 문화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24년간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라며 문화를 완전히 습득한 나도 아직도 국어사전을 찾는 일이 많다. 가장 최근에 찾은 것은 '불쌍하다'와 '안쓰럽다'의 차이였다. 이 단어 속 한자는 어떨 때 쓰는 한자인지, 발음할 때 혀의 움직임이 어떤지, 읽었을 때 글자의 시각적인 생김새가 어떤지. 이 모든 것들의 느낌을 받아야 비로소 글에 섬려 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이렇듯 나는 아직도 한국어로 글을 쓸 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로 글을 쓸 수 없지만, 쓰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단어들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어감 차이. 섬세하고도 어려운 이 언어를 하나하나 뜻을 구분하고 사전을 뒤지며 글을 쓰는 이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매체의 트렌드가 글에서 영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내가 쇠퇴하고 있는 분야에 마음과 시간을 쏟는 것이 아닐까' 싶어 사람들을 따라 주류로 넘어가고자 했었다. 하지만 영상을 만들 때 지루해하던 나를 보다가.. 나뭇잎을 보고 행복했다고 하는 글을 쓸지 혹은 시장을 거닐며 본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쓸지,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나'에 대해 쓸지. 어떤 순간이든 글의 소재로 여기는 나를 보며, 나는 글을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벽에 혼자 새기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지난번 일상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픽사의 [소울] 대사를 차용했다. 이번에는 다른 인물의 대사를 차용해보려고 한다. 영화 [소울] 세계관에서 지구에 태어나기 전 영혼들은 '유세미나'를 통하여 5-6개 정도의 인생의 불꽃들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 불꽃을 찾지 못하여 지구에 태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22'를 향해 '조'가 말한다.


[22] 불꽃은 삶의 목적이야!
당신은 이제 어떻게 살 거야?

[조] 22, 불꽃은 목적이 아니었어. 
마지막 칸은 인생을 살아갈 준비였어. 
넌 준비가 됐어. 어떻게 살지는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매 순간을 즐길 거라는 것.


나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이리저리 뒤집히는 나뭇잎을 보고 유럽의 올리브잎과 은빛 나무줄기를 생각하며 행복을 느낀다. 해 질 녘 보라색의 동쪽하늘과, 황혼에 반사된 주황빛 인왕산과 건물들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행복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순간마다 내가 생각한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의 불꽃이자, 내가 인생을 매 순간 즐기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글을 찾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글을 사랑하고 글이 주는 울림을 계속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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