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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연필 Jan 07. 2022

예민보이의 탄생과 유아기를 이곳에 기록하노니

'백일의 기적', '돌의 기적'이 있다던데

예민보이는 2012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20시간 넘게 이어진 산통에도 아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부모는 '그 녀석 참 고집 한 번 세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 고집이 황소고집으로 쭉쭉 뻗어나갈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부모보다 먼저 예민보이의 고집을 알아본 사람은 의사였다. 의사는 산도에 끼여 좀체 내려오지 않는 예민보이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태우다가, 자궁 입구에 흡입기(?)를 갖다댔다. 흡입기로도 아이가 내려오지 않자, 간호사가 어미의 배를 인정사정없이 눌러대기 시작했다. 


한참 뒤, 예민보이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머리 한쪽엔 흡입기와 벌였던 사투의 흔적이 훈장처럼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절대 호락호락 굽히지 않겠다! 


예민보이의 10여 년 고집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훗날 예민보이의 부모는 그날을 회상하며, 아이의 남다른 예민함과 까칠함을 예기치 못한 흡입기 사용에서 찾으려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 양쪽 모두 있는 듯 없는 듯한 무던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평화주의자로 좋게 포장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생각 없는 사람, 속없는 사람으로 비친다.  

 

예민보이는 날이 갈수록 예민해졌다. 밤마다 수시로 깨는 건 기본이요, 한번 깨면 집이 떠나갈 정도로 크고 길게 울었다. 모유수유는 당연히 거부했고, 분유 역시 먹었다 하면 토해냈다. 다 빤다는 공갈젖꼭지도 거부한 채,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제 엄지만 빨아댔다. 이따금 엄지발가락을 빠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을 난생처음 본 부모 눈엔 마냥 귀엽고 신기했다. 부모는 그런 모습들을 고집과 연결 짓고 싶지 않았다.  

 

혹자는 백일도 안 된 아기가 자다 깨서 우는 건 당연한데, 별것도 아닌 일로 유난 떤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민보이는 정도를 넘어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했다. 울음소리가 하도 커서 이웃집에서 아동학대를 의심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부모의 눈밑에는 영유아기 내내 검은 다크서클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부모의 지인들은 이따금 기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백일의 기적, 돌의 기적이 있다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미는 조급해졌다. 낙천주의자였던 아비가 어미를 다독였다.  


"늦되나 보지. 우리 애도 조만간 기적을 선물할 거야!"  


그러나 예민보이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많은 부모들은 제가 낳은 아이를 매우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야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어도 기다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먹자마자 뱉어내기, 수저 던지고 식판 엎기, 눕히자마자 눈 뜨기, 맘에 안 들면 드러눕기, 기분 나쁘면 깽판 치기, 사줄 때까지 울고 짜기, 될 때까지 앙앙거리기, 경기하듯 자지러지기…….

 

예민보이의 부모는 아들의 통제되지 않는 기질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면 예민해지잖아. 신생아 때부터 병원 신세를 졌으니, 예민해질 만도 해. 건강해지면 예민함도 둔해질 거야."  


예민보이는 실제로 자주 아팠다. 태어난 지 삼일째 되던 날, 모세기관지염으로 코에 산소 튜브를 단 채 대학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었으니 말이다.

그 뒤로도 예민보이는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렸다. 환절기 감기는 기본, 개도 안 걸린다는 오뉴월 감기에, 발진, 피부병, 비염, 독감, 폐렴, 크고 작은 가정 내 안전사고까지 열거하면 숨이 찰 정도랄까.  

 

결국 백일의 기적도, 돌의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종류의 기적(?)이 일어났다.

기는 것, 서는 것, 걷는 것도 늦되었던 예민보이는 말까지 늦게 터졌다. 세 돌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예민보이를 볼 때마다 걱정을 내비쳤다.  


"말은 언제쯤 한다니? 병원은 안 가봐도 되니?"


걱정이 점점 불어나 눈덩이처럼 커졌을 때, 예민보이의 입에서 한글도 아닌, 그렇다고 영어일 리도 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파파?"

"……?!"

"자기야, 들었어? 방금 파파라고 했어!"


예민보이의 입에서 '파파'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아비가 느낀 감동은 실로 대단했다. '엄마'보다 '아빠'보다, '파파'를 먼저 말한 아이! 영어를 가르친 것도 아닌데, 어디서 파파를 들었는지, 아무래도 언어적 감각이 남다른 것 같다며  소리가 발화돼 나올 때마다 싱글벙글이었다.  

 

어디 예민보이의 파파뿐이었으랴. 세상의 많은 파파와 마미들은 아이의 의미 없는 몸짓과 말에서 남들과 다른 천재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부모가 되는 과정은, 아이의 천재성이 한낱 헛된 희망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지 않을까.  

 

예민보이는 파파의 헛된 희망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예민함과 까칠함도 함께 키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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