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거짓말쟁이였다. 엄마가 한 거짓말은 "낳기만 하면 키워준다", "애는 저절로 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그냥' 크는 아이는 없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그냥 큰다'는, '저절로 큰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참 철이 없었다고나 할까.
또래에 비해 딸의 결혼이 늦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딸에게다짜고짜 2세 계획부터 이야기했다.
"무조건 둘이야. 터울 없이 바로 달아서 둘째까지 낳아. 그래야 남매끼리 잘 논단다. 둘이 놀면 엄마가 얼마나 편한데!"
첫째도 생기지 않았는데, 엄마는 둘째 이야기를 꺼냈다. 게다가 남매라니! 엄마는 이미, 내가 낳을 아이의 성별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엄마와 달리 나는, 2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기면 낳는 거고, 안 생기면 안 생기는 대로 사는 거지. 그러나 2012년은 공교롭게도 흑룡띠의 해였고, 엄마에게는 2세 계획을 앞당길 더없이 좋은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흑룡띠란다. 흑룡띠에 태어난 아이들이 그렇게 잘 산대. 지금 가져야 내년 겨울에손주 안아볼 거 아니니?"
어떤 날에는 이렇게, 또 다른 날에는 저렇게 회유했다.
"하루라도 젊을 때 낳아야지. 막내숙모 봐라. 마흔 넘어 늦둥이 낳았다가 폭삭 늙은 거 너도 봤잖니? 애 낳고 골골거리며 병원 신세 질 테냐? 빨리 낳아 키워놓고 놀러 다녀. 일단 낳기만 해. 내가 다 키워줄게. 요즘 애 키우는 거, 어디 일 축에나 든다니?"
물론 엄마만 닦달했던 건 아니었다. 시어머니 역시 손주를 기다렸다. 늦둥이 육아로 고생 중인 숙모까지 합세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하루라도 젊을 때 빨리 낳아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하긴, 젊을 때 낳아야 몸이 덜 힘들겠지? 저절로 큰다는데, 일단 낳고 보지 뭐.
나와 남편은 그렇게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아이를 만들고, 낳았다. 때는 2012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삼십대 부부가, '부모'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얻게 된 해였다.
아들을 키우며 10년이 지나도 철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는 게 하나 있다면, 바로 거짓말이다.
"딩크? 무슨 소리야. 애는 무조건 낳아야지. 그럼, 애 키우는 게 얼마나 재미난데! 물론 힘들 때도 있지. 그런데 말야. 애가 주는 행복이 더 커. 낳기만 해. 그냥 큰다는 옛말도 몰라? 뭐? 아들 낳을까 봐 겁난다고?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도 듬직한 맛이 있는 게 아들이야. 세상에 딸바보만 있는 줄 아니? 우리집 남편은 아들바보야, 아들바보."
물론 100% 거짓말은 아니다. 초예민보이를 키우는 것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정말로 흥미진진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출산한 2012년은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소폭 상승한 해였다. 정부의 출산장려정책 덕분은 아니었다. 흑룡의 좋은 기운을 얻고자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출산을 감행한 부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낳으면 그냥 큰다'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었던 걸까?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조금 덜 억울해진다.나만 당할 수 없지!
세상엔 낳으면 그냥 크는 아이는 없다. '웃고 울고 떼쓰고 소리치고 던지고 싸우고 반항하며 크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