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 Jan 03. 2022

나는 모성 없는 엄마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출산의  경험을 표현할 때, '감격', '감동', '행복', '충만', '사랑', '신성함'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아이를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감격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 뭐랄까요, 표현할 수 없는 충만감이 마구 차올라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다, 다시 엉엉 울었다니까요."


그들의 출산 후기에는 '기뻤다', '사랑스러웠다', '너무 행복했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등의 서술어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그런 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느낀 감정은 '감격', '행복', '충만'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 때문이다.






나는 32살에 결혼하고, 33살에 아이를 낳았다. 밤 12시에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간 나는, 다음날 저녁 9시가 지나도록 출산을 하지 못했고 있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왔던 산모들이 하나 둘 분만실을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진통을 느낄 때마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었다.   


"안 되겠어. 눌러!"


아이가 좀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의사가 간호사에게 소리쳤다.

러? 뭘 눌러?

생각할 틈도 없이, 분만실 간호사 내 배를 누르기 시작했다.

 

"산모분, 똥 눌 때처럼 힘 주라니까요! 힘 안 주면 산모님도 아이도 위험해요! 더, 더, 네, 조금 더요!"


음부가 절개되고도 아이는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결국 의사는 흡입기로 아이 머리를 빨아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아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의사가 아이를 안아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힘도 정신도 없어서,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너무 무서웠으니까. 아마 의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제 막 출산한 산모가 아이를 보자마자, 고개를 저으며 인상을 찡그렸으니 말이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소 불경스럽기까지 한 그 마음과 행동의 이유를, 20시간 넘게 이어진 진통에서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하루 이틀 아이와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내가 아이를 온몸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왜일까?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았는데, 왜 온전히 기쁘고 감격스럽지 않은 걸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출산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으리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안에 모성이라는 감정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모성 없는 엄마와 예민보이 그렇게 만났다. 첫 만남부터 고통과 혼란이 뒤범벅된 강렬한 만남이었다고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