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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Mar 02. 2024

조상 땅이 발견됐다

시어머니의 만병통치약

세상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조상 땅을 발견한 사람과,

조상 땅을 발견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아무리 찾으려 애써도 조상 땅 한 평 없는 사람으로…….     


우리 시어머니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한다. 그것도 두 차례씩이나!


아무리 찾으려고 애써도 조상 땅 한 평 없는 나로서는, 마냥 부럽고 신기했다.          




어머니의 할아버지 땅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은 남편의 사촌아저씨였다.      


어머니는 전날 밤 극심한 다리 통증 때문에 응급실을 다녀온 후,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리가 이렇게 아픈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게 말이 돼?”

어머니는 화가 잔뜩 묻은 목소리로, 다리가 아파서 꼼짝도 못 하겠다고,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다가 사촌아저씨의 전화를 받게 됐다. 사촌아저씨는 어머니 안부도 묻지 않은 채, 다짜고짜 할아버지 땅 이야기부터 꺼냈다.      


“누나, 놀라지 마라. 할아버지 땅이 또 발견됐다! 이번엔 지난번에 비할 바가 안 될 정도로, 평수가 어마어마하다!”     


카랑카랑하고 억센 경상도 특유의 목소리가 전화기 밖으로 튀어나왔다. 목소리에 흥분이 가득 묻어났다. 아저씨는 이 감격을 함께 나누기 위해 당장이라도 사촌누나인 시어머니를 만나러 올 기세였다. 그러나, 서울과 경상도는 너무 멀었다.

“할아버지 땅이 또 발견됐다고?!”

어머니는 사촌아저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를 고쳐 잡았다. 그러고는 거실을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다리가 아파서 꼼짝도 못 하겠다며 짜증을 내던 어머니는 온데간데없었다.

“몇 평이길래? 그렇게나 많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머니는 거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겨울 찬바람이 거실로 몰려들었지만, 어머니의 흥분을 식히기엔 부족했다. 어머니가 계속 묻고, 사촌아저씨는 계속 대답했다. 어머니와 사촌아저씨는 그렇게 한참 동안 ‘할아버지 땅’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몹시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경주에서 만나 직접 땅을 둘러보면서 하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저축하듯 땅을 사모았던 모양이었다.

“살아계실 때 땅만 파며 그렇게 어렵게 사시더니, 자식 손주들 편하게 살라고 뒤를 봐주시네. 내가 참 조상 복이 많다.”

어머니는 ‘할아버지 땅’ 이야기를 전하며 시종 싱글벙글 웃었다.       




어머니는 벌여놓은 일이 당신 뜻대로 척척 풀리지 않아,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지인들과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은 채, 두문불출했다. 유일하게 드나드는 곳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과 절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늦어도 내년 봄, 어머니는 신축 아파트에 입주해 남은 여생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경기 한파가 심화되면서 공사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급기야 조합장의 비리까지 드러났다. 아파트 공사는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분양가만 치솟는 중이었다. 그와 함께 어머니의 시름도 깊어져 갔다.


-겉으로는 위하는 척해도, 속으로 얼마나 비웃을지, 안 봐도 뻔 해. 내가 다 늙어 집 한 칸 없이 몇 년 더 떠돌 거라고 뒤에서 수군대며 고소해할걸?


공사가 지체될수록 어머니의 마음은 더 차갑게 변했다.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자식들에게 화도 많이 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순례하듯 다니며 여러 검사를 했지만, 의사들의 소견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다 정상입니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면역도 기력도 떨어졌어요. 좋은 생각 많이 하시고, 식사 잘 챙겨드세요. 그리고 하루 30분이라도 걷기 운동하시고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은 어머니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의사 앞에서 네 네, 했다가도, 차에 오르면, 돌파리라고 욕을 했다. 이렇게 몸이 아픈 이유에는 분명 의사가 찾지 못한 치명적인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게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물론 나는 의사의 생각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즈음 어머니는 바른 이야기를 잔소리로 왜곡해 불같이 화를 냈으므로, 나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바른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     


어머니의 식습관과 생활 패턴은 건강과 거리가 멀었다. 당뇨약을 먹기 위해 물에 만 밥에 김치를 얹어 먹었고, 빵과 떡, 과자, 믹스커피를 달고 살았다. 식사 후에는 눕거나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볼 때도 있었고, 그도 아니면 컴퓨터 앞에 앉아 고스톱 게임을 했다. 운동은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몸에 기력이 없다고, 밤에 잠을 통 못 잔다고, 온몸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어머니는 지인들 모임에 나가는 대신, 절을 자주 드나들었다. 사찰 납골당에는 아버님 유골이 안치돼 있었다. 아버님을 뵈러 가면서, 어머니는 제발 좀 그만 아프게 해달라고 아버님과 부처님께 기도했다. 영적인 기운이 충만하다는 유명 사찰까지 찾아다니며 등을 다는 정성도 쏟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몸의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만 평이면, 그게 얼마니?”

어머니가 물었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닌 듯, 어머니는 이내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시골 땅이라고 해도 평당 삼사만 원은 족히 갈 테지?”

어머니는 좀체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그때까지도 거실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김여사, 잘 지내지? 나야 뭐, 뉴스에서 하도 크게 떠들어 다 알 거 아냐. 말년에 좀 편하게 사나 했더니, 여태 공사도 못 들어갔잖아. 그래, 그래. 그것 때문에 그동안 속 좀 끓였어. 속 끓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죽기 전엔 들어가겠지 뭐. 참, 다른 게 아니고, 주말에 시간 돼? 내가 한턱낼게. 좋은 일? 있지, 좋은 일! 글쎄, 시골에 땅이 발견됐대.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응, 응, 알았어…….”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한다던 어머니는 그 뒤로도 십여 분 넘게 ‘할아버지의 땅’ 이야기를 전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오랜만에 기운이 넘쳤다.      


아무도 고치지 못했던 어머니의 병은, 그렇게 사촌아저씨의 전화 한 통에 씻은 듯이 나았다.      


조상 땅은,

할아버지의 땅은,

만병통치약처럼 매우 힘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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