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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연필 Feb 07. 2024

조의금이 많이 남으면 생기는 일

시외할머니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뒤였다. 시어머니의 형제들은 외할머니가 살던 아파트에 모여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넷째 이모가 조심스럽게 조의금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 엄마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내가 아파트 계약금으로 삼천만 원을 보탰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그 삼천만 원 좀 받을 수 있을까? 조의금이 좀 많이 남았더라고.”     


넷째 이모부의 사업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나도 알고 있었다. 60평대 강남아파트를 급하게 처분하고 도봉구의 구축아파트로 이사할 때까지만 해도, 이모는 이모부의 사업이 곧 재개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예상보다 훨씬 더 길게 이어졌다. 넷째 이모는 결혼할 때 받은 패물부터 아이들 돌반지까지 싹싹 긁어모았다. 시어머니가 소개해준 금은방에서 패물을 정리하던 날, 이모는 시세보다 좋게 팔았다며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딱한 것,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더니……. 대궐 같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얼마나 답답할까. 눈 뜨고는 차마 못 보겠더라.      


시어머니는 넷째 동생네 집에 다녀온 후 혀를 끌끌 찼다. 이모네 아파트는 앞동에 가려 볕이 잘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늘은 이모의 얼굴에도 시나브로 내려앉았다. 이모는 어두운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애들을 생각하면, 목구멍이 막힌 듯 답답했을 것이다.      


-이번에 그 삼천만 원 좀 받을 수 있을까?조의금이 좀 많이 남았더라고.      


그 말을 하기까지, 이모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어두운 거실에 앉아 고민했을까?     


넷째 이모의 조의금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다른 형제들이 저마다 자신의 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기대감으로 들떴다.     


“나도 아버지 병원비 대느라 퇴직금 중간정산했잖아.”

“철진아, 너 기억하지? 내가 너 대학등록금 다 냈다.”

“나도 아파트 계약금으로 돈 천만 원 보탰어.”

“언니들, 해마다 엄마 아버지 해외여행 모시고 다닌 건 나야. 필리핀 여행 다녀온 뒤 아버지가 목에 뱀 두른 채 손목에 박쥐 매달고 찍은 사진을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며 자랑했던 것, 다들 기억하지?”

“저기 안마의자랑 안방 침대, 세탁기, 건조기, 다 내가 마련한 거 잊지 마.”     


시어머니의 형제들은 하나같이 하는 사업이 잘 풀렸고, 직장에서도 승진이 빨랐다. 아이들까지 서울 소재 대학에 척척 붙어,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삶이 윤택하면, 여유가 생긴다. 열 명의 형제들은 없는 일도 만들어 본가에 모이곤 했다. 셋째가 이번에 교장이 됐다고, 넷째가 장기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고, 일곱째네 아이가 제대를 했다고, 둘째가 투자한 아파트가 급등했다고, 아홉째가 부장으로 승진했다고, 다섯째가 치질 수술 후 무사히 퇴원했다고, 막내가 이혼을 했다고, 여섯째네 강아지가 죽었다고, 모였다. 열 명의 형제들에게는 축하할 일도 위로할 일도 많았다. 시외할아버지가 폐암으로 입원하기 전까지, 카카오톡 단톡방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시외할아버지는 1년여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넷째 이모부의 사업도 그즈음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시외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들어갔다. 형제들은 본가 대신 간간이 병원에 모여 안부를 전하곤 했다. 5인 이상 집합이 금지되던 시절이었다. 서넛씩 짝을 지은 형제들은 교대로 할머니를 면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할머니가 자신들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치매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겨울, 권분례 시외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열 명의 형제들은 본가가 아닌, 장례식장에 모두 모여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형제들은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본가에 다시 모여, 할머니가 남기고 간 조의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 아파트 계약금? 너 말 잘했다. 나는 뭐 안 보탰겠니? 나도 이천만 원 보탰어. 엄마 아버지 살아계실 때 용돈 드린 것만 해도 천만 원은 넘겠다. 그리고 조의금은 막내와 일곱째 제부 지인들이 많이 냈어. 그거 다 빚인 거 몰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시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넷째 동생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돌아가신 엄마가 유골함에서 뛰쳐나오겠다.”     


어머니는 벗어놓은 외투도 챙기지 않은 채,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남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모들과 삼촌은 남은 조의금과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똑같이 열 등분해 나눠 가졌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형제들은 이제 명절이 되어도 모이지 않는다. 다만, 부모의 기일에 납골당에 모여 데면데면 안부를 전할 뿐이다.


시어머니는 카카오톡 단톡방을 나왔다. 조의금 얘기를 가장 먼저 꺼냈던 넷째 이모와는 의절했다.      


나는 장례식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문득문득 넷째 이모 생각이 난다. 시외할아버지 장례식날, 이십 명이 넘는 조카들에게 “애썼다”며 십만 원이 든 용돈 봉투를 건넸던 이모. 이모는, 어두운 거실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부디 조의금 생각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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