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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wsunc Jul 12. 2021

#독특한 #어두운 #유머, 토미 웅거러

전쟁이 만든 깊이와 유머, 그리고 어쩔 수 없음

읽고 쓰는 일을 합니다. 휴직 기간 동안 아이와 아이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을 하면서 그림책과 동화책을 몰입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그림책, 동화책 작가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읽고 고민한 김에 리뷰해보기로 했습니다. 




1. 전쟁을 겪은 어린이가 그림책 작가가 됐을 때 벌어지는 일


토미 웅거러의 그림책은 딱 들었을 때 낯선 느낌이 있습니다. 여느 그림책과 달리 어두운 컬러를 과감하게 쓰거든요. 컬러만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림체도 어딘가 모르게 좀 으스스한 느낌이 있습니다. 으스스하게 사실적이고, 으스스하게 우스꽝스럽죠. 밝고 화사한 느낌이 나는 그림책들 사이에 있으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토미 웅거러의 책을 특히 초반엔 그다지 애정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본 느낌을 물어보면 "(그림이)못생겼다" "좀 무섭다" 이런 반응이 돌아왔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몰입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내용이 서정적이기 보다 서사적이서, 읽기 시작하면 몰입하거든요.

(저는 언젠가부터 그림책을 서정적인 책과 서사적인 책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조만간 이 주제로 글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토미 웅거러의 그림책들. 어딘가 모르게 으스스한 느낌이 있다.


그림체만 으스스한 게 아닙니다. 내용도 좀 그런 면이 있죠. 그의 대표작 <곰인형 오토>는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유태인 소년과 독일 소년의 우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태인 소년은 엄마 아빠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고요. 이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은 하나 같이 "이야기가 좀 무서웠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고 말했는데요, 곰인형 오토의 눈으로 전쟁을 상세하게까진 아니어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제랄다와 거인>에는 아이들을 잡아 먹는 거인이 나오는데, 이 거인 때문에 동네 아이들은 모두 숨어서 지내야 합니다. <달사람> 역시 지구인들이 춤 추는 걸 보고 함께 춤을 추고 싶어 지구에 온 달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죠. <못말리는 음악가 트레몰로>는 윗집 점쟁이 할머니의 저주에 걸려서 도시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죠.


이렇게 살펴보면 토미 웅거러의 책에 나오는 갈등이나 위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갈등이나 위기는 일상적이고 어른의 개입이나 아이의 어떤 노력으로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고 실제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 토미 웅거러가 만들어낸 갈등이나 위기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전쟁도 그렇고, 아이를 잡아 먹는 거인도 그렇고(물론 <제랄다와 거인>에서는 제랄다가 이 거인을 교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달사람을 잡기 위해 출동하는 군대와 총사령관도 그렇죠. 그래서 아이들이 무섭다고 표현하는 걸 겁니다.


그의 이야기가 그림책답지 않게 으스스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려고 하는 건 그의 삶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1931년에 독일의 접경 지대에 있는 프랑스의 스트라부르크란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고 8년 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죠. 스트라부르크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점령 당했다고 합니다. 폭격도 잦았고요. 폭격으로 집이 부서지는 바람에 웅거러 역시 지하실에서 3개월 정도 산 적이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10살도 채 되기 전에 전쟁을 직접 겪었으니, 그때 아이였던 웅거러가 얼마나 큰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을지 상상도 잘 가지 않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괴기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그림이나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싸늘하고 냉정하게 그리는 모습 등이 전쟁 경험에서 온 것이겠죠.


2. 유머,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


전쟁에 낙담하고 절망했다면 그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절망 앞에까지 가면, 아니 가야만 희망을 발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일지도요. 토미 웅거러 역시 그렇습니다. 그림책 작가답지 않게 싸늘하고 냉소적인 시선이 곳곳에 뭍어나지만 결코 그는 절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미작엔 늘 희망이 있지요.


<곰인형 오토>는 마침내 다다른 미국 어느 골동품가게에서 미국으로 몸을 피해 온 유태인 소년과 그 옆집 소년을 다시 만납니다. <달사람>은 무사히 달로 돌아가고, <마법사의 제자>의 흄볼트(조수이자 제자)는 마법사의 부재 중 몰래 흉내낸 마법 때문에 온갖 난리를 겪지만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죠. 점쟁이 윗집 할머니의 저주에 걸린 음악가 트레몰로 역시 웅장한 공연장을 짓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원없이 연주합니다. 


트레몰로(오른쪽)는 존재 가체가 유머라 할 정도로 엉뚱하고 재미있는 캐릭터입니다. 생긴 것도 우스꽝스럽죠.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건 유머입니다. <곰인형 오토>에서는 오토가 폭격 와중에 참전한 미국 군인을 구하고(군인이 잔해 속에서 오토를 발견하고 안는 순간 총을 맞았는데, 덕분에 총알이 오토를 뚫고 군인에게 날아와 비껴 맞게 됩니다) '전쟁 영웅'으로 대대적으로 소개됩니다. <제랄다와 거인>에서는 산 속에 아빠와 단 둘이 사는, 6살 때부터 요리의 신인 제랄다가 맛있는 요리로 거인의 식인 습관을 끊게 만들죠. <달사람>에서는 산 속에서 우주선을 만드는 괴짜 과학자(생긴 것도 우스꽝스럽게 생겼습니다!)가 자신이 만든 우주선에 달사람을 태워 달로 되돌려 보내주죠. 이 괴짜 과학자는 인간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고 산에 들어와 사는데, 달사람을 달로 돌려보낸 덕분에 아주 큰 과학자협회의 회장이 되기도 합니다(이것이 바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죠! 괴짜는 늘 괴짜였지만, 시대에 따라 괴짜가 되기도, 천재가 되기도 하는!). <트레몰로>는 주인공 트레몰로가 유머로 무장한 인물입니다.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밤이고 낮이고 연주를 하다 윗집 사는 점쟁이 할머니의 저주(연주를 하면 음표가 나오는 저주)에 걸리고 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산 속에 들어가서 연주를 계속 하다가 음표가 사실은 엄청 맛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가판대에서 그걸 팔다 아예 공장까지 차려서 기업가가 되죠(나중에 배 아픈 윗집 할머니가 다시 찾아와 저주를 풀자 그는 공장을 팔고 공연장을 지어 다시 음악가로 돌아갑니다).

 

그가 동화에서 이야기하듯 인간이 마주하는 역경이라는 건 사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갑자기 큰 병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전쟁을 겪는 것도,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역경 앞에 나약하고도 미약한 존재일 뿐이죠. 하지만 그 어떤 역경이 와도 절대로 삶은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날 해는 아무렇지 않게 뜨고 나는 배가 고프죠. 그때 필요한 건, 그럼에도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저는 단연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토미 웅거러도 그렇게 생각한 듯 합니다. 그의 그림책에서 유머가 빠지지 않는 건 그래서고요. 그 유머는 그의 그림과 이야기 전면에 드러나는(전혀 숨을 생각이 없죠) 어두움을 절망적이지 않게 해줍니다. 


3. 어쩔 수 없는 불편함


여기서 끝나면 좋을텐데, 안타깝게도 그의 이야기에는 불편한 지점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백인 남성이구나 싶은 지점들이 보인다는 겁니다. 제가 가장 거슬렸던 건 <제랄다와 거인>이었습니다. 제랄다는 마을에서 떨어진 숲 속에서 아빠와 사는데요(제랄다가 6살 때부터 요리를 하는 건 아버지 상을 차리기 위해서였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죠), 그래서 아이를 잡아 먹는 거인이 돌아다니는다는 소문도 모른 채 장에 가다가 거인에게 잡히고 말죠(그날 따라 아빠가 아파서 아빠 대신 제랄다가 장에 갑니다). 그리고 거인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요(6살 아이가 말입니다). 만약 주인공이 남아였다면, 분명히 거인을 물리치는 설정이었을 겁니다. 심지어 제랄다는 나중에 거인과 결혼(이게 무슨 말인가요...)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는 게 사는 걸로 이야기가 끝나는데요, 이게 과연 해피엔딩일까요? 작가가 거인에게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에 나온 결말은 아닐까요? 거인에게 잡혀간 여자 아이 입장에서 이 설정은 얼마나 끔찍한지요. 


여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웅거러의 그림책이 드물 뿐 아니라(이건 모든 그림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긴 합니다) 그나마 등장해도 6살부터 요리를 하고, 요리를 거인을 교화시켜, 그 거인과 결혼하고 맙니다. 제가 이런 스토리를 미리 알았다면 이 책은 아이에게 읽히지 않았을텐데요, 제가 책을 읽었을 때는 이미 아이가 책을 읽은 뒤였습니다. 물론 책장에서 퇴출되었고요.

  

저는 <달사람>, <못말리는 음악가 트레몰로>, <곰인형 오토>, <제랄다와 거인>, <마법사와 제자>를 아이와 함께 읽었는데요, 제가 특별히 거슬려했던 <제랄다와 거인>을 제외하면 여자 아이, 여성이 중요한 캐릭터이거나 주인공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여자가 등장하면 주변적이거나 보조적인 경우가 많았죠. 특별히 거슬리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 장면입니다.


트레몰로가 TV쇼에 초대된 장면. 반라의 차림으로 무대 소품처럼 묘사된 여성을 보기 매우 불편했다.

트레몰로가 유명해져서 TV쇼에 초대된 장면입니다. 전국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여성은 반라의 차림으로 마치 무대 소품처럼 등장하죠. 이 페이지를 함께 보면서, 아이들이 여성에 대해 무의식 중에 어떤 식의 편견을 갖게 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곰인형'이 화자인 <곰인형 오토>를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인형' 하면 여자 아이를 떠올리는데(이것도 편견이긴 하지만), 이 책은 화자가 곰인형인데도 주인공들은 남자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2차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특별히 아이와 아이 친구들과 함께 읽었는데요, 책을 읽으며 아이 한 명이 "저 비슷한 책 알아요. 안네의 일기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이도 <안네의 일기>를 떠올리는 스토리 라인인데, 이 책의 주인공은 남자 아이였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 좀 과할 수도 있습니다.


4. 그럼에도 읽을만 한 ★★★☆ 


좀 불편한 지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토미 웅거러의 책은 읽을만 한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이가 "토미 웅거러 책 읽고 싶다"(저는 보통 책을 읽으면 작가가 누구인지 꼭 함께 보거든요)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좀 무섭다" "그림이 못생겼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는 오히려 "다시 읽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피드백은 특히 서정적인 그림책을 읽을 때 많이 나왔습니다. 토미 웅거러의 그림책이 그만큼 서사적이라는 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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