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처음으로

불안하지만 설렘

by 유랏차차

로펌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다. 사실 마지막이라기엔 여전히 퇴직일 직전 휴가 기간 내내 써야 하는 초대형 증인신문사항이 남았지만, 회사에 출근하는 것으로는 마지막 일주일이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바빴다.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은 매일매일 서면 초안을 작성했다. 목요일에는 우리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판례 공보 발표를 하고, 오후에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재판을 다녀오고, 저녁에는 내가 주수행이던 형사사건 변호사님들과 회식을 했다. 금요일은 층을 돌면서 변호사님들께 인사를 드렸고, 집무실의 짐을 쌌다. 추석 전날이어서인지 자리에 없는 변호사님들이 많았다.


마지막 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 생각에 뭉클했다. '나는 이곳에서 꽤 많은 사랑과 이쁨, 보살핌을 받았구나'


시니어 변호사님이 ‘00 변호사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참 기대가 커. 00 변호사는 열심히 하니까 결국 기대에 부응할 거야'라는 응원의 말,

1년 차부터 함께 같은 대형 형사사건에서 고생했던 선배 주니어 변호사님이 내 두 손을 잡고 '잘 될 거예요, 행복하게 잘 살아요'라면서 나의 행복을 빌어주던 그 마음,

친해진 선배랑 첫 이별이라면서 울던 순수한 후배 변호사님,

같은 팀이 아닌데도 내 퇴사 소식을 듣고서 연락 준 다른 팀 선배, 후배 변호사님들,

1년 차부터 지금까지 항상 잘 챙겨주셨던 송무스탭 선임님의 작은 선물과 편지까지,


부족함이 많은 나인데 이런 따뜻한 마음을 준 모두에게 고맙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할 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들을 겨우 참았다.


어느 정도 인사를 돌고 와서 방에서 짐을 다 치웠다. 로스쿨 때부터 쓰던 법학 전공책들과 판례집, 법원실무제요, 주석서, 그리고 심란할 때 서점에서 사모은 소설책들이 한가득이었다. 1년 차로 입사하자마자 엄마 아빠가 변호사가 된 것을 축하한다면서 보내준 난, 친구에게 받은 작은 나무도 박스에 잘 담았다. 갑작스러운 회의나 재판에 대비하여 회사에 두었던 기본 검정 재킷, 회사 동기들과 함께 찍은 인생 네컷과 폴라로이드, 스트레스받을 때 하나 둘 샀던 작은 인형들, 하나하나 나의 지난날들이어서 치우는 동안 기분이 이상했다.



마냥 시원한 마음이 아니었다. 선배, 후배 변호사님들과 예전처럼 보지 못하겠구나라는 아쉬움, 내가 나가서 잘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내가 별 거 없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꼈다. '00 변호사가 나가서 결국 잘 해낼 거다'라는 말도 마냥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남들의 기대 뿐만 아니라 내가 나에게 거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그걸 잘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쩌지. 그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짊어지며 살아가야 하겠구나(이제 남 탓도 못한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 그 선택의 무게가 느껴졌다.


방에 인사를 간 다른 팀 시니어 변호사님 한 분은 '다들 00 변호사의 앞으로 계획에 정말 관심이 많다'면서, 누구는 00 변호사가 유투버를 한다고, 누구는 00 변호사가 지방 본가에 내려가서 네트워크펌을 한다고, 누구는 연극에 뛰어든다고 했다면서 '다들 자기들이 더 신난 것 같다'면서 웃으셨다.


사실 다 틀린 말은 아니다(ㅎ0ㅎ). 내가 바로 개업 시장에 뛰어들지, 연극, 여행, 유튜브, 글쓰기 등 내 관심사들에 한동안은 온전히 시간을 쏟고 싶은 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지, 돈을 조금 벌며 유유자적하고 싶은지도 아직 못 정하겠다. 그래서 많은 변호사님들이 내 계획에 대해서 물으실 때마다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게 말한 것 같다. 난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아직 우선순위를 못 정했다. 그래도 지금 드는 생각은 우선 올해는 흘러가는 대로 지내자는 것. 선택들의 무게에 짓눌려서 나에게 올 새로운 가능성들을 줄이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독립영화 배우 오디션을 봤고, 퇴사하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최종 탈락 문자를 받았다.


연극을 시작한 이후, 필름메이커스라는 영화 제작 관련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그 사이트를 통해 매체 오디션을 본다. 나도 간혹 들어가지만 아직 제대로된 프로필도 없고, 경력도 없고, 연기 영상도 없어서 지원을 못했다. 그런데 최근 '변호사를 퇴사한 후 원하는 일을 하는 여자'가 주연인 독립영화 공고가 올라왔다. '아니, 이건 내 이야기인데?' 하면서 놀라서 글을 읽었다. 읽어 보니, 이건 꼭 지원해야겠다 생각했다. 더욱이 자유 대사가 아니라 지정 대사 영상을 보내면 되기 때문에 완전 아마추어인 나도 접근하기 좋았다.


급하게 로펌 프로필 사진과 작년에 찍어둔 뷰티 프로필을 조합해서 조악하게나마 배우프로필을 만들었다. 그리고 퇴사를 3주 앞두고서 일주일 동안 야근을 끝낸 매일 밤 연기 영상을 찍었다. 아니 연극을 할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영상 속의 나는 더 더 더 더 어색했다. 와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연극 선생님인 킹콩과 새벽 영상통화를 하면서 피드백을 받았다(갓킹콩ㅜㅜ). 마감이 다가올수록 '하루만 더 있으면, 하루만 더 제대로 연습하면 다를 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마감 마지막 날 겨우 영상 하나를 건졌고, 제출했다.


다다음 날 선배 변호사님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려는데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2차 줌 오디션을 위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서류와 연기영상을 보냈던 1차 오디션을 합격했다는 문자였다.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니 이런 일이.


2차 줌 오디션은 전체 시나리오가 제공되었고, 바로 이틀 뒤 오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멜로 영화여서 배우의 합을 본다고 남자 배우와 동시에 오디션을 치뤘다. 2차 오디션까지 2일 정도 시간이 있어서 회사에서 야근을 끝내고 집에 가서 시나리오를 읽고, 지정된 씬의 대사를 암기하고 뱉어보기를 반복했다.


당일 아침 6시부터 눈이 떠졌다.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과도한 도파민으로 인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변호사 시험 당일 오전도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오전 10시에 정신 없이 오디션을 봤다. 긴장한 나머지 연기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극중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어서 오디션에서 노래도 불러야 했는데 첫 소절부터 삑사리가 났다. 기관지염이 아직 낫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로도 삑사리가 2~3번 더 났고, 2절에서는 거의 목이 쉬었다. '이렇게 나락 가는 구나' 했지만 끝까지는 부르자는 마음 하나로 노래 중간에 남자가 하는 랩 파트도 눈 질끈 감고 했다.


20분 만에 오디션이 끝났다. 곧장 정신없이 짐을 싸서 회사로 왔다. 삑사리가 나던 순간 줌 화면 너머의 사람들이 동시에 터지던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마음이 괴로웠다. 그날 밤부터 한 며칠은 오디션의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즐거웠다. 괴롭다가도 웃음이 났다. '아, 퇴사를 하니까 내가 이런 것도 다 할 수 있네, 이런 감정 얼마만이지.' 최대 일주일이면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5일차인 주말부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전전긍긍하는 마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다. 드디어 지난 화요일 탈락 문자를 받았다. 결과를 받아들자 비로소 마음이 평안에 이르렀다.


그날 연락 주신 피디님께 오디션 피드백을 요청했더니 감동적일 정도로 상세하고 세심한 피드백을 해주셨다. 내 인물 분석 방향이 다소 달랐다는 것이다. 삑사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자 더 위안이 되었다. '배우로서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는 말에 다시 희망, 용기가 생기고, 약간 오기도 생겼다. 이 오디션 전에는 퇴사 후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독립영화를 배우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빠른 시일 내에 내가 반드시 찍어보고 말리라.' 칼을 뺐으면 뭐라도 썰어야지!


동시에 '새로운 것을 도전하려면 마음 근육이 튼튼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시 런닝과 헬스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년 이맘때는 몸짱이 되어 있었으면! 신체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으니 맘짱도 되어 있길(?!)




나이가 30대에 들어서니 무언가를 처음 하는 감각은 드물다. 일도 공부도 대화도 연애도 어디선가 언젠가 해본 것들이거나, 안 해봤던 거라도 뭔지 알 것 같고 거기서 거기인 느낌에, 느끼는 감정의 폭도 그렇게 크지 않다. 그 와중에 낯선 감각을 주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것이 된다.


그런데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내가 내 삶을 만들어 가자고 생각하자, 처음 투성이다. 적어도 올해 2월말에 쓴 브런치 첫 글에서 '안 해본 짓을 하면서 살겠다'라고 했는데, 그 말만큼은 내가 꽤나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어떤 모양의 삶을 만들어 갈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우선 내 마음이 가는 것들을 따라 가는 중인데, 많은 순간들이 낯설고 특별하다.


조바심 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즐겨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