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km의 가르침
2025. 3. 8. ~ 2025. 3. 10. 나고야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다닌 여행 중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적은 여행이었다. 그 이유는 풀마라톤을 뛰기 위해서 간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이번년도 상반기 목표 중 하나는 풀코스 마라톤 완주.
작년 퇴사를 선언한 무렵, 친한 동생이 나고야 여성 마라톤, 풀코스를 같이 나갈지 물었다. 그 마라톤이 지난 2024. 4. 16. 브런치 "무작정 10km"에서 '회사선배가 나고야까지 마라톤을 하러 간다는 사실이 굉장히 낭만적이라고 느껴서 언젠가는 나가고 싶다'라고 언급했던 바로 그 마라톤이었다. 퇴사 이후 뭐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래, 앞으로 남은 5개월이면 준비해서 충분히 뛰겠지" 하면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10km를 달린 지 1년도 되지 않아 풀코스를 달리기로 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그러다 죽는 수가 있어(?)"라면서 진심으로 걱정했다.
퇴사를 하면서 시간이 많아진 덕에 주기적으로 러닝을 했다. 10-11월 여행을 간 프랑스에서도 주 2-3회 5-10km를 뛰었다. 거기서는 멋진 경관을 보면서 뛰는 것 자체가 관광이고 낭만이었다.
문제는 귀국 후였다. 1월은 그래도 최소 주 2회를 뛰었지만, 파리와는 다르게 달리는 곳곳 눈으로 관광할 것은 없었고, 오롯이 나 혼자 뛰었다. 그러자 러닝은 파리에서보다 더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혼자서 10km를 넘어서 12km, 15km, 18km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던 중 2월에 한파가 닥쳤다. 이건 좋은 핑곗거리였다.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내일 뛰어야겠다"하고 보면 다음날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면 빙판이니까 빙판이 녹으면 뛰어야지" 하며 제대로 뛰어보지도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3월 초에는 30km를 혼자서 뛰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역시 갑작스럽게 등 통증과 목디스크 문제로 물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정형외과의사 선생님께 "이번 주말까지는 꼭 나아야 하니까 물리치료 좀 팍팍해달라"라고 부탁한 것과 불안정한 무릎을 감쌀 비싼 무릎보호대를 산 것 정도가, 3월에 내가 한 마라톤 준비의 전부였다. 그렇게 마라톤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고야 갈 날을 몇 주 앞두고 엄마에게 "마라톤 하러 나고야 좀 다녀올게"라고 했더니, 엄마는 "무슨 풀마라톤을 하러 나고야까지 가냐, 풀마라톤을 뛰어 보긴 했냐"며 놀랐다. 물리치료를 받는 중이니까 그냥 뛰는 데까지만 뛰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엄마의 성화에 목디스크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나고야로 출국하는 날까지도 혼자서 가장 많이 뛴 거리는 하프 정도였기 때문에 42km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너무 쉽게 포기하지만 말자', '완주는 못하더라도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내 최고 기록을 경신해 보자'라고 마음먹었다. 완주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곧바로 나고야 반테린 돔으로 향했다. 길거리와 지하철에 마라톤 포스터가 있는 것을 보면서, 마라톤이 나고야 지역의 큰 행사라는 것이 느껴졌다. 돔에 도착해 보니 후원사인 뉴발란스의 러닝의류부터 시작해서 각종 제조사들의 러닝 용품, 상비약, 음료 등 팝업스토어가 열려 있었다. 그 틈에서 배번표를 받고 나고야 마라톤 티셔츠도 하나 샀다.
엑스포 한가운데 놓인 벽에 참가자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 이름을 찾고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2만 명이 참여하는 마라톤, 빼곡한 참가자들 이름 속에서 내 이름을 찾는 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벽에 쓰인 내 이름을 보면서, 엑스포를 찾은 사람들의 설렘을 느끼면서, 완주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생겼다.
그래도 끝까지 달려볼까 마음을 먹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그날 밤 부랴부랴 근처 스포츠용품 전문몰을 뒤져서 포켓이 등 뒤로 3개나 달린 아식스 러닝쇼츠를 하나 샀다. 그냥 간단한 러닝복만 챙겨 왔는데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나서 보니 풀코스를 뛰기에는 매우 열악한 패션? 러닝복이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늦은 밤부터 애플워치에 음악들을 다운로드하여서 휴대폰 없이 뛸 수 있게끔 준비했다. 친구는 자기는 휴대폰 없이 뛴다고, 휴대폰이 있으면 언제든 그냥 돌아가버릴 수 있다는 마음이 들까 봐 그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휴대폰은 가지고 뛰지 않기로 했다. 러닝 하면서 잘 듣던 '맥그리거 빙의하게 해주는 음악 플레이리스트'의 음악 몇 개와 '싱스트리트 OST' 등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가득 담았다. 5시간짜리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잠들기 전 내일 먹어야 할 음식, 에너지젤, 운동화, 운동복, 용품들을 최종 확인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니 이미 새벽 1시가 넘었다. 친구는 풀코스를 이미 4차례 완주했음에도 나보다 더 두려워했는데, 돌이켜보니 '모르는 게 약'이었다. 풀코스의 무게감에 어렵사리 잠에 들었다.
6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음에도 이미 시간이 빠듯했다. 날씨는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청명했다. 마라톤 시작 20분을 남기고 짐을 맡겼고, 풀마라톤 기록이 있는 친구는 앞쪽 조로, 기록이 없는 나는 뒤쪽 조로 배정되어 서로의 완주를 기원하며 인사했다.
전광판에 초대 선수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A조 앞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9시가 되자 A조가 출발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아나운서의 목소리,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10분 정도 흘러 우리 조 차례가 왔다. 레인의 양옆으로 응원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거리로 나가자 엄마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의 "간바레" 응원소리, 북을 치면서 페이스를 맞춰주는 시민, 웃긴 분장으로 웃음을 주는 사람(피카추 분장을 하고 달릴 때마다 피카! 피카! 추!라고 하던 사람도 있었다), 응원하러 나온 러닝크루, 가족이나 친구의 사진을 들고 응원하는 사람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서서 눈으로 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의 육상에 대한 관심과 응원문화가 보기 좋았다.
응원하는 소리를 듣는 게 좋아서 음악은 듣지 않았다. 첫 10km는 이미 여러 번 달려 본 거리였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응원하는 모습, 반짝이는 나고야의 도심을 보면서 금세 지나갔다. 10km가 지나자 조금 지쳤다. 그래도 그 옆에 나와 뛰는 사람들 중에 걷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뛰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함께 뛰었다. 이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평소 러닝할 때마다 듣던 그 음악, '맥그리거에 빙의하는 음악' 첫 곡이 딱 들려오자 힘이 났다. "그래, 하던 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뛰었다.
15km 이후부터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등 통증은 근육이완제의 효과 덕인지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고, 무릎은 원래 15km 정도 되면 살짝 불안해지는데 무릎보호대가 짱짱하게 잡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즈음에 내 눈앞에 시각장애인 러너가 보였다. 가이드와 이어진 작은 밴드를 잡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연기 수업을 들을 때 시각을 차단하고 누군가에 의지해서 움직여본 적이 있는데 한걸음에 수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을 이기고 이 인파 속을 달리는 그분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10km를 지나면서 조금 약해졌던 의지가 다시 불타올랐다.
여성 풀코스 마라톤("나고야 우먼스 마라톤"이다)의 마지막 조가 출발한 이후, 혼성 하프 마라톤("나고야 시티 마라톤"이다)이 이어졌는데, 20km의 선두그룹이 엄청난 속도로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20대 청년이 기억에 남는데, 적당한 키에 구릿빛 피부와 소년 같은 외모를 가진 그는 뛰는 동안 너무 행복해 보였다. 웃으면서 달리는 소년의 미소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잠깐이지만 청소년 육상 영화 서사가 그려지는 것 같았달까.
무섭게 치고 나가는 그들과 달리, 나는 조금 주눅 들어 있었다. 20km를 넘어서부터는 내가 달려보지 않은 거리였기 때문이다. 하프 코스의 피니쉬라인이 가까워져 오면서 하프코스와 풀코스가 나뉘었다. 하프코스 선두주자들이 하나 둘 완주하는 동안, 그 옆 풀코스 레인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나를 보며 문득 '왜 내가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프 정도가 나한테 맞는 것 같은데.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지금까지 달린 거리만큼을 다시 달려야 한다니... 말이 되는 일일까?
20km 이후부터는 중간중간 쉬어야지만 달릴 수 있었다. 몸이 본격적으로 고장 나기 시작했다. 장요근이 녹아내려 다리가 들어 올려지지 않았고, 다리 앞뒤 근육과 발목 근육들이 모두 경직되었다. 3km마다 있는 퍼스트 에이드 존에서 쿨링스프레이를 듬뿍 뿌려야만 근육이 잠시 진정되었다. 스트레칭을 할 때는 딱딱하게 굳은 근육이 늘어나지 못하고 자잘하게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지는 듯한,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밀려왔다. 많이 달린 것 같아도 고작 2km 남짓 지날 뿐이었고, 다시 한참 달리고 봐도 3km가 겨우 지났다. 약해진 체력만큼 시간은 늘어지고, 다리가 잠기고 계속 걷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언제 가나 하는 마음에 눈을 질끈 감고 그냥 달렸다.
그러던 중 25km를 조금 지나자, 한 남성분(아마 나고야 시민이겠지?)이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크게 "Enjoy Running"이라고 써서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란하지 않은 작은 스케치북의 글씨가, 어떤 응원 문구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ENJOY'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치고 올라왔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계속 마음 안에서 강하게 일었다.
'즐기자'라고 되뇌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을 참으며 달리는 중에,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쨍하게 비치는 해와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엔도르핀이 돌았는지 다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그래, 즐기면서 달려야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니, 'Enjoy'라는 말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동안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진짜 내 마음 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힘들고 버거운 순간에도 아름다운 풍경과 응원은 내 곁에 있었고, 그보다 더 가깝게는 나 자신이 지금 나를 굉장히 응원하고 있음을 느꼈다. '과정을 즐겨라',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그렇게 와닿지 않았는데, 그게 정말 맞구나 깨달았다. "깨닫다"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30km가 다가오자 몸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실감했다. 3km마다 있는 퍼스트에이드존은 절대 지나칠 수 없었다. 스트레칭을 할 때 단축된 근육들이 뜯어지면서 늘어나는 느낌은 이제 익숙해졌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근육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육이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근육은 더 이상 관절을 지탱하지 못하고 관절로만 달렸다. 조금만 잘못 디디면 오른쪽 고관절과 발목이 어긋나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32km 지점 즈음에서 애플워치가 수명을 다했다. 시간과 거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자 제한 시간 내에 완주하지 못할까 걱정이 들었다. 고관절은 계속 아팠고, 이제는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앞으로 두고 무게가 주는 추진력으로 몸을 끌고 가는 것에 불과했다. 이때는 느껴지는 거리의 단위가 달라진 게 실감 났다. 그전에는 달리다 보면 어느새 1km, 2km가 지나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다음 1km가 뛰어도 뛰어도 오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완주를 하자는 마음으로 느리지만 뛰었다. 결과적으로 그전 5km 구간보다 35-40km 구간 기록이 무려 10분이나 단축되었다. 이 부분이 정말 기특하다. 끝부분에서 더 힘을 냈다는 것!!
38km 지점 전광판에 뜬 시간을 보니 걷더라도 컷오프 내에 완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은 걸 참았다. 아직 양 옆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안전한 시간, 거리였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걷지 않고 계속 달렸고, 나도 남은 에너지로 최대한 달렸다.
40km 지점을 넘어섰다는 것, 돔 근처에 가까워졌다는 건 이정표를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응원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간바레"하는 응원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달려졌다. 그리고 그때 마라톤 초반에 마주쳤던 시각장애인 러너분이 앞에 보였다. 저분도 완주를 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자 눈물이 더 났다. 눈물이 참아지지 않았다. 아니 참으려고 했지만 그 틈을 비집고 계속 눈물이 흘렀다.
돔 입구에 들어서자 42km 이정표가 보였다. 응원하는 사람들 속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였다. 이미 완주를 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꾹꾹 눌러 두었던 눈물이 차올라왔다. 다 왔다는 안도감,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돔으로 들어가자 멀리 FINISH 선이 보였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6시간 동안 뛰고 걷고 다시 뛰기를 반복해서 42.195km를 완주했다.
마라톤을 하는 동안 계속 인생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라톤이 인생과 같다고 생각했다. 힘에 부치는 순간에 하늘을 보면 숨통이 트이고, 힘들다고 생각하다가도 주변 사람들 덕분에 웃기도 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행복에 관한 관념이 비로소 내 마음에 탁 박혔다. 즐거움은 발견하는 자의 것이고,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요 근래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도전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래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향해 가는 건지는 모르겠는 막막한 날의 연속. 예전의 삶보다 지금의 삶이 나는 더 좋으면서도, 결과적으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나는 이 인생이라는 긴 풀마라톤의 하프 지점에도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내가 무엇을 만나며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막막한 건 당연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즐기면서, 음미하면서 살아가는 게 그래서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라는 이 긴 마라톤을 "Enjoy Running" 해야지! 그렇다면, 잘 살고 있구나 나 자신!
마라톤을 마치고 며칠 동안 내 몸은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항의하듯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내 마음은 전보다 튼튼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과정을 즐길 줄 안다. 나는 해낸다. 그러니 부디 이 순간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