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서 가격 조정을 해준 끝에 계약금을 보내고 계약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습니다. 잔금일 전에 중도금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라 중도금을 내야 하는 걸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습니다. 변명하자면, 그전까지 매번 월세나 전세를 계약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중도금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계약할 때 계약금 내고, 이사 가는 날 잔금 내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매매는 중간에 돈을 내야 한다는 걸 계약서 쓰는 날짜를 잡는 순간 알게 됐습니다. (완전 부동산 초보였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중도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중도금 소식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 저희는 계약금 할 수 있는 일부의 현금, 대부분은 살고 있던 오피스텔의 전세금, 그리고 나머지는 주택담보대출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중도금을 얼마를 낼 건지 정해야 한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에 일단은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보통은 매매가의 30%, 하지만 합의하에 중도금 없이도 진행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찾았습니다. 다시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중도금 없이도 하는 경우도 있나요?"
부동산 사장님은 요즘 같이 집값이 오를 때는 중도금을 안 걸어두면 매도자가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러면 어떡하지' 주저하던 중에 부동산 사장님은 부동산에서 돈을 빌려줄 수도 있다고 말해주십니다. 여기서 또 한 번 놀랍니다. 은행도 아닌데,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건가? 일단은 '괜찮습니다' 말하고, 중도금을 10%로만 하면 어떨지 여쭤봤습니다.
다행히 매도인과 중도금 10%로 합의가 됐고, 중도금을 낼 때까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해결하기로 합니다. 가지고 있던 약간의 주식도 중도금 낼 때에 맞춰 처분하기로 하고 그때까지는 긴축재정에 들어갔습니다.(잔금일에는 주택담보대출도, 돌려받을 전세금도 있으니까 가능한 계획이었습니다.)
이후에 여러 부동산 카페를 찾아본 결과, 부동산에서 중도금을 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부동산 사장님 입장에서는 계약이 체결돼야 돈을 벌고, 제게 중도금을 빌려주면 그 돈에 대한 이자도 받으니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계약서를 쓰는 건 오래 안 걸렸습니다.
부동산에 마주 앉아 미리 정해놓은 일정에 합의된 금액을 송금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썼습니다. 다만 잔금일이 굉장히 멀었습니다. 계약한 집은 집주인이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계약일로부터 자그마치 네 달 뒤에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대출 알아볼 시간도 늘어났고,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 전세 계약 기간도 반년이 더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알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작년 여름,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파트 계약서를 썼습니다.
처음엔 왜 이분들이 잔금일을 네 달 뒤로 미뤘는지 몰랐습니다. 부동산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이제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집의 등기부등본을 떼보면 매도인 분들은 집을 사고, 4년 동안 전세를 줬습니다. 나중에야 그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실거주 기간이 잔금일까지 하면 딱 2년이 됩니다. 양도세 비과세를 받기 위한 실거주 요건과 딱 일치합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저희가 산 집이 이미 많이 올랐다고 생각했고, 양도세 비과세 요건을 맞춰서 다른 집으로 갈아타기 하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합니다. (나름의 추측입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계약한 단지 구경을 갔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 계약을 하고, 저와 아내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 아파트 단지로 산책을 갔습니다. 평일 퇴근 후에도, 소중한 주말에도, 전세로 살고 있던 오피스텔에서 거리가 꽤 멀었지만 자주 걸어갔습니다. 이제 그 집을 어떻게 꾸밀지, 거기 살면 회사는 어떻게 갈지, 장은 어디서 볼지, 영화 보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딛는 한 걸음마다 우리의 미래를 그렸습니다.
집 사는 법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나름 유튜브도 보고, 카페도 찾아보고, 아파트 단지도 열심히 비교해보고 골랐는데 집을 사면서 모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전세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집을 살 때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돈을 나눠서 낸다든지, 아파트 가격도 흥정이 가능하고 가끔은 부동산에서도 돈을 빌려준다는 사실들을 이번에 처음 배웠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자그마치 16년을 학생으로 살았는데, 살다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시험 잘 보려고 외웠던 원소 주기율표도 친구 따라 들어갔던 서양 미술학 교양 수업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삶에 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집은 살면서 누구나 필요한 건데, 왜 집 사는 법은 학교에서 안 가르쳐줄까요. 직접 부딪혀보기 전까지는 평생 모를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