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범생 Oct 03. 2021

우리 아파트도 리모델링이 될 수 있을까?

생활은 편리해지고 시세차익은 덤 (아파트 단지 리모델링 사업)

퇴근 후, 친구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입구부터 웅장한 그 집은 2019년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입니다.

주차를 하기 위해 입구에 잠시 멈춰 방문 등록을 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살펴봅니다. 레고처럼 반듯한 건물들이 당당하게 서있습니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외관이 어스름한 저녁노을에 비쳐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경비 아저씨에게 방문증을 건네받고 나니 차단기가 열립니다. 지하주차장을 들어가는 길과 지상으로 이어진 길이 있습니다. 지상주차장이 대부분인 구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저는 습관적으로 지상으로 이어진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길이 이상합니다. 지상에는 주차장이 없고 아파트 입구에서 돌아 나오는 길이었네요.


“왜 다시 나오세요?” 경비 아저씨가 제게 묻습니다.

머쓱한 웃음을 보이며 길을 잘못 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이번엔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주차를 하려면 두어 바퀴는 돌아야 했던 우리 집을 생각하며 걱정했는데, 내려가자마자 자리가 보입니다. 퇴근 시간인 만큼 아파트 입구와 가까운 자리는 아니지만 양옆에 이미 차들이 주차된 중간 자리를 바로 찾았습니다. 문콕이 걱정돼서 이런 자리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나마 공동현관에서 제일 가깝습니다. 주차를 하고 차 문을 여는데 평소보다 훨씬 여유롭습니다. 활짝 열어도 옆 차에 닿지 않습니다. 언제인가 주차장 크기 규정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주차도 편하고 내리기도 편하네요.


지하주차장과 이어진 아파트 입구에서 친구네 집 호수를 누르고 문을 열어달라 말합니다. 공동현관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더니 이미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있습니다. ‘오, 누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놨나 봐.’라며 오늘 운수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공동 현관문을 열면 엘리베이터 버튼이 알아서 눌린다는 사실을요.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신축 아파트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24평에서도 4 Bay 구조를 누릴 수 있고,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부를 수 있으며, 인터폰 위치에 붙어있는 태블릿으로 실내 전기 사용량과 콘센트들을 제어할 수 있는 것들은 부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앞선 글에서 소개드렸던 저희 집은 1992년에 지어진 복도식 구축 아파트입니다. 이맘때 지어진 아파트들이 대개 그렇듯 지상엔 차들이 가득하며, 자그마한 지하주차장은 각각의 동과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걸어서 이동해야 합니다. 주차장 칸이 좁아서 문콕 걱정을 하고, 큰 차 옆에 주차를 하려면 아내를 먼저 내리게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이중주차는 일상이고 베란다에서 사람들이 자동차를 미는 모습을 구경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다행히 집 내부는 개별적인 인테리어 공사로 새집처럼 만들었기에 부족함은 없습니다. 하지만 낡은 아파트 외관과 전무한 커뮤니티 시설, 주차장을 생각할 때 신축 아파트가 아른거립니다.


우리는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다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은 주민은 저뿐만은 아닌가 봅니다. 어느 날 아파트 리모델링 단톡방이 생기더니 추진 위원회가 생기고 아파트 곳곳에 건설사 현수막과 조합 설립 현수막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뿐만이 아닙니다. 근처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현수막을 내걸기 시작했습니다. 임장을 갔던 1기 신도시의 다른 곳들에서도 현수막을 볼 수 있었고,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들에도, 수원의 아파트들에도 리모델링 추진이란 문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호갱노노 앱을 켜보면 90년대 지어진 대부분의 수도권 아파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거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리모델링이 뭐길래 이렇게 유행처럼 번져가는 걸까요.


간단하게 살펴보는 리모델링과 재건축

기존에 지어진 아파트가 새 아파트로 되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 다른 하나는 큰 틀은 놔두고 부순 뒤에 다시 짓는 리모델링입니다. 두 방법 모두 기존보다 아파트를 증축하게 되므로 각 세대의 크기가 늘어나고, 그에 따른 분담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 부수고 짓는 재건축은 새로운 도화지를 펴고 그림을 새로 그리는 것처럼 완전한 신축 아파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층수도 전보다 높이 올릴 수 있고, 구조도 유행하는 3 Bay, 4 Bay 등 자유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아파트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2014년 가락시영 아파트 - 파이낸셜뉴스, 이정은 기자 김은희 수습기자
2018년 헬리오시티 - 현대산업개발 홈페이지

9500여 세대 규모의 대단지로 유명한 송파 헬리오시티는 가락시영 아파트를 재건축했고, 큰 규모의 커뮤니티 시설들과 편의 시설들이 생겼습니다. 전부 부수고 새로 지었기에 가락시영 아파트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큰 틀을 남기고 다시 짓는 리모델링은 원래 있던 그림의 밑그림은 유지하고 수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파트의 밑그림 역할을 하는 골조들을 유지하므로 주요 벽을 옮길 수가 없고 층고도 늘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조가 독특하게 나옵니다. 평수를 넓히기 위해 아파트 사방에 덧살을 붙이기에 가운데 있는 집들은 앞뒤로 길어지는 ‘동굴형’ 구조가 됩니다. 좌우 끝집은 기존보다 Bay를 늘릴 수 있어 비교적 선호되는 구조가 나오기도 합니다. 


리모델링도 층고를 올릴 수 있는 수직 증축형 리모델링과 수평으로 사이즈를 키우는 수평 증축형 리모델링으로 구분이 되지만, 수직 증축형의 경우 절차가 복잡하고 지반의 종류와 기존 건축물의 공사 방법 등에 영향을 많이 받아 대부분 수평 증축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2년 대치우성 2차 아파트 - 2012 타경 458 (경매 건 사진)
2014년 대치 래미안하이스트 - 파이낸셜뉴스, 박인옥 기자


대치 래미안하이스트 아파트는 2011년 말 리모델링 착공을 했고, 2014년 초 준공한 350여 세대의 단지입니다. 기존 구조를 유지하며 사방에 덧살을 붙이는 형태라서 건물이 앞뒤로 두꺼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재건축의 경우, 아파트가 현재 안전상 문제점이 있어서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안전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필요한 조건들이 많고 규제가 까다로우며, 절차가 복잡합니다.

리모델링의 경우, 기존 골조를 유지하기 때문에 재건축에 비해서는 필요조건들이 적으며 절차가 비교적 단순합니다.


즉, 재건축은 완전한 새집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구조의 아파트가 될 수 있지만 그만큼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리모델링은 완전한 새집이 아니며 독특하고 선호되지 않는 구조의 아파트가 될 수 있지만 절차가 단순하고 시간이 비교적 적게 걸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업성과 규제 등의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블로그나 뉴스 등을 참고하세요. 정리가 잘 되어있어 가져왔습니다.

https://blog.naver.com/itforgoodlife/222074677313

https://woman.donga.com/3/all/12/2926543/1


리모델링의 역사는 길지만 결과는 적다

새집에 대한 열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뉴스를 찾다 보니 꽤나 오래전부터 리모델링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세 개의 뉴스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0049221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109000125&md=20140112003954_BL

http://www.inews24.com/view/1333307


뉴스들은 모두 리모델링에 대한 기대감과 장점을 소개하며 금방이라도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위에서부터 각각 2000년, 2014년, 2021년 기사입니다.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 2000년도쯤 부상했고 20년 정도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몇 개의 단지가 리모델링 사업 후 준공 완료되었을까요?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763740


2017년도 뉴스입니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14년 동안 리모델링 사업을 완료한 단지가 14곳이라는 내용입니다. 생각보다 그 수가 적습니다.


다행인 점은 전보다 아파트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으며, 경기도를 비롯한 각 시도 내에서 리모델링 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전보다 준공 단지 수가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달인 21년 11월에는 개포우성 9차 아파트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 더샵 마스터클래스라는 이름으로 준공될 예정이고, 오금 아남 아파트의 경우 올해 4월 착공을 시작했습니다. 그 외 5군데 정도의 아파트가 사업 계획 승인 완료를 거쳐 착공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속도가 확실히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은 돈과 시간이 문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전래 동요에서도 알 수 있듯 누구나 헌 집을 새집으로 바꿔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돈과 시간이 문제입니다. 


얼마 전 우리 아파트 리모델링 설명회에서 17~20평 분담금으로 1억 후반~ 2억 정도가 들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일부 금액은 조합 대출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주민들 중 누군가는 금전적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금액이 부담되면 팔고 이사를 가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도 나옵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일맥상통합니다. 돈이 없어서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주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기대 소득이 적은 노인분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충분한 동의율을 얻고 금전적인 부분도 해결이 되었다면 그다음부터 중요한 건 스피드입니다. 위의 뉴스를 통해 우리는 리모델링을 추진한 수많은 단지들 중 14개 정도의 적은 단지만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중간에 엎어지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지역 내 단지들이 한 번에 리모델링을 착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서는 해당 단지 주민들이 전부 이주를 해야 하는데, 그 경우 대부분은 멀지 않은 지역 내에 전세, 월세 집을 구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 아파트와 옆 아파트들이 동시에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서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상상해 보면 전셋집을 구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즉, 지금은 너도나도 단지에 리모델링 추진 현수막을 걸고 있지만 모든 단지가 근 시일 내에 리모델링을 진행하기는 어려우며 그중 빠르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한 소수의 단지만이 이번 부동산 상승기에 힘을 입어 리모델링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축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까요?

기존 주민들의 피해가 최소화되며 빠른 속도로 진행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언젠가 신축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가 그랬지 자동차는 용기로 사는 거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